지난주까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감정을 세계의 유명음악인들에게 들어 보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표현만 다를 뿐, 한결같이 “매우 훌륭한 음악미와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세계적인 음악”임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우리 전통음악에 대하여 한국인로서의 자긍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을까? 아니면 변화없이 그대로일까 하는 점이 궁금하다.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많이 늘어난 듯하지만, 아직도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듯하고 그렇기에 특수 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상황이다.
필요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입으로는 ‘민족문화의 창달’을 외치면서도 행동은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고금을 나무토막으로 내버려두는 문화적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김씨가 백자를 방치해 두었다가 남의 충고로 그 가치를 확인했던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이 음악미와 예술성을 인정했음에도 아직도 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어서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 더는 남의 것에만 눈과 마음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벗고 마음의 눈을 안으로 돌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우리 스스로 재인식하는 슬기를 모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외형상의 가치만을 앞세우는 국수주의적 사고나 주장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전통음악 속에는 우리의 혼이 있고 사상이 있으며 감정과 생활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해온 표출방법이 내재하여 있어 궁극적으로는 음악 자체의 아름 다음과 예술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훌륭한 음악유산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음에도 왜 우리는 이 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했을까? 이 점에 대해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우리 스스로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한 배경이나 이유를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또는 문화적 상황과 연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문제를 알아야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우리음악에 대한 계승 방법이나 지도방법, 그리고 확대방안이나 애호하는 방법 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긍심을 갖지 못한 이유나 시대적인 배경을 짚어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과거 우리 역사가 기능이나 기술을 천시해 온 악습이 아직도 잔존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우리사회는 양반, 중인, 천민계급으로 신분의 구분이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던 계급사회였다.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등, 예능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천민계급에 속해 있었다. 그러한 탓에 아무리 글공부가 뛰어나다 해도 과거에 응시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게 되면 무식을 면키 어렵고, 무식하면 경쟁사회에서 버티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천민들은 살아가려고 재주와 기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술이나 기능 자체는 천시해 왔기 때문에 이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천시를 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순 구조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사회구조가 만들어 놓은 천시 풍조 속에 음악과 음악인이 포함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시대가 바뀐 현재까지도 말끔히 가시지 않고 있다. 기능과 재주를 무시하던 사회 분위기 탓에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일제 강점하에서 오랜 문화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점이다. 주권을 잃은 국민이 제한받아야 하는 언어의 표현이나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법이다. 우리의 말로 된 노래를 우리가 만들어 놓고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상상해 본다면 가히 짐작이 될 것이다.
음악이 없는 1년 세월, 아니 1년이 아니라, 1개월, 아니 단 하루라도 음악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3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긴 음악의 공백기였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고 긴 기간동안 문화의 퇴영이 가져온 몸과 마음의 황폐화는 가히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 원인으로 남고도 남는다 하겠다.
문화의 암흑기가 길었다는 점은 곧 우리음악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던 기간이 길었다는 점이고, 이러한 긴 암흑기가 곧 우리음악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