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에 대한 세계인들의 격찬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이전에 견주어 달라진 인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점이다. 겉으로는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나무토막으로 내버려두는 문화적 상황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중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첫째 원인으로 과거 우리 역사가 기능이나 기술을 천시해 온 악습이 아직도 잔존한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둘째 원인으로는 일제의 강점하에 너무도 긴 문화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 세 번째로는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945년 8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을 맞았으나, 미(美) 군정하의 어수선한 정국이 당분간 이어졌고, 1948년 남한 단독의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곧이어 남북한 동족 사이 6·25전쟁을 겪게 되었다.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되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전쟁 후 폐허의 강산을 복구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50년대를 보냈고, 60년대에 들어서면서 4·19학생의거, 5·16 군사혁명 등의 격변이라든가 군정, 민정의 혼란기를 맞이한 우리의 최근세사는 우리로 하여금 전통문화나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던 상황의 연속이었다.
격변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만 했던 대다수 국민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닐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수용의 태세도 갖추지 못한 사이에 밀어닥친 서양 문물의 홍수를 맞게 된 점 또한 네 번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전통예술에 관한 깊은 관심이나 애정을 지니고 있지 못한 사이에 밀어닥친 서양문물의 홍수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던 것이다. 비판적인 안목을 지니고 여유 있게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겨를도 없이 안방을 차지한 서양문물의 위용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압도당해야 했고,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것보다는 외국문화를 선호했고 서양을 흉내 내는 것이 마치 선진화하는 것인 양, 어른도 어린이도 서양문물 흉내 내기에 바빴던 것이다.
파리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패션은 그 다음 날 아침, 동경에 들어오고, 당일 밤에는 서울의 쇼윈도에 진열된다는 말이 있다. 선악을 따지지 않고 서양에서 유행되고 있는 모든 것을 따라가기에 바빴던 시절이 있었다. 마지널 문화권, 즉 변방 국가의 속성을 여지없이 들어내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이러한 원인은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변모되면서부터 개발도상국들이 홍역처럼 치르게 되는 전통문화의 경시 풍조를 제공하게 된 실마리기도 했던 것이다.
서양문물의 홍수 앞에 비판적인 안목없이 압도당하고, 비판 없이 이를 수용해 온 혼란기의 상황도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한 배경이 되었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는 전통음악과 관련한 교육정책의 부재, 국악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초중, 고등학교의 교육 현장에서 국악교육이 철저히 외면당해온 것은 씻을 수 없는 잘못 중의 잘못이었다.
교과서에는 마치 구색을 갖추는 정도로 국악내용이 게재되어 있으나 교사들은 모른다는 이유로 지도하지 않았고, 학생들 역시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쯤으로 알고 있었다. 국악을 배우지 않은 교사는 모르니까 지도할 수 없었고, 학생들은 교사가 지도하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악순환이 얼마 동안 지속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서양음악의 가락들을 가슴에 담고 성장하게 되었으며 남의 리듬에 어설픈 몸짓을 익혀 오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전통음악의 독특한 예술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국적을 잃어버린 음악문화의 수인(囚人)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서 우리의 전통음악은 그 음악 자체가 지닌 독특한 음악미나 고유한 예술성을 이 땅의 주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국민으로부터 무관심과 푸대접 속에 방치됐던 것이 그간의 정황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한 결과는 이러한 과거의 상황은 현재 많이 바뀌었고, 또한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