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속풀이에서는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을 살펴보았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우리역사가 기능이나 기술을 천시해 온 악습이 아직도 잔존한다는 점 둘째, 일제의 강점하에 너무도 긴 문화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점 셋째, 혼란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 넷째, 수용의 태세도 갖추지 못한 사이에 밀어닥친 서양 문물의 홍수를 맞게 된 점 다섯째, 전통음악과 관련한 교육정책의 부재 혹은 국악교육의 부재 탓에 전통음악의 독특한 예술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음악문화의 수인(囚人)을 만들어 온 점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은 지난 시대의 정황을 만들게 된 배경이었고 현재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음악을 대하는 일반 국민의 시각이나 인식이 전대(前代)에 비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점은 우리의 경제력이 오름에 따라 국제적 문화교류가 빈번해 지고 있어 우리의 전통음악이 자주 국내무대나 외국무대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국의 위상이 각 분야에 걸쳐 현저한 상승곡선을 그려감에 따라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졌고, 이러한 의식 아래 우리 것에 대한 “뿌리찾기 운동”이 점차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기실 이러한 운동은 벌써 일어나야 했던 민족운동이지만, 늦게라도 국민적 합의로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음악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가 크게 변화되고 있다는 또 다른 사실의 하나는 초ㆍ중등학교의 교육현장에서도 <국적 있는 교육>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근래에 와서 쉽게 감지되고 확인된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문화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가 국민적 자각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며, 국악교육의 당위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 것에 대한 일시적인 향수가 아니라, 우리 음악 속에 담겨 있는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이는 크게 환영할 일이란 말이다.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전통음악과 자주 만나고 있다. 가령, 고궁을 산책할 때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궁정음악의 가락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유명 산사(山寺)를 방문했을 때, 흘러나오는 범패의 가락에 심취할 때도 있으며, 전통문화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가야금 산조 가락이나 판소리, 민요 가락이 마치 나를 저 깊은 심연의 세계로 안내해 줄 때, 우리는 전통음악의 향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중앙이나 지방의 문화회관이나 예술회관에서는 이름있는 유명 단체들의 무대가 연중무휴로 열리고 있는가 하면,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되면서 전문 직업 국악단체가 각 지방에서 새롭게 창단되어 이들의 정례, 비정례 연주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다. 또한, 무형문화재 정책이 활기를 띰에 따라 각종 무형문화재 종목들의 발표회도 줄을 잇는 것이다. 악단이나 문화재 관련 발표회 못지않게 동인(同人)들의 그룹활동이나 개인의 발표회도 연중 계속되고 있다.
특히 80년대 이후에는 전국의 대학에서 국악과를 신설하여 젊은 국악인들을 배출해 내기 시작했다. 서울 경기에는 서울대를 비롯하여 한양대, 이화여대, 추계예대, 서울예대, 중앙대, 단국대, 한국종합예대, 수원대, 용인대 등이 대학의 발표회를 통하여 국악애호가들과 만나고 있고, 충청지역에는 청주대, 서원대, 목원대, 영남권에는 부산대, 경북대, 영남대, 대구예술대, 호남권에는 전북대, 전남대, 우석대, 원광대 등이 각 시도에서 앞을 다투며 새롭고 신선한 연주회들을 열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악만을 전문으로 방송하고 있는 <국악방송>이 생겨나서 전통음악이나 국악의 창작음악을 온 종일 들을 수 있게도 된 것이다.
이처럼 실제공연을 통해서나 또는 방송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음악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음악과 만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 음악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듣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