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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백제 출신 어부 형제의 전설이 서린 도쿄 센소지(淺草寺)

   

 
“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淺草觀音寺)과 아사쿠사신사(淺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이토쿠(臺東區) 관광과에서는 <아사쿠사 일대와 센소지>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을 만들어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628년)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를 구경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와 모찌(떡) 같은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 종류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 뒷골목에는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센소지는 관동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절을 뜻하는 최고(最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로도 최고(最高)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JR 야마노테선(山手線)을 타면 곧바로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관동 제일의 유명한 절이다 보니 절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아사쿠사역에 내려서 절 입구 표시를 보고 걸어 나오면 바로 마주치는 커다란 가미나리몽(雷門)은 센소지의 대문인 셈인데 정식명칭은 후라이몽(風雷門)이지만 통상적으로 가미나리몽이라 불린다. 이 문은 후지산과 함께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풍경으로 각종 여행안내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높이 3.9m, 지름 3.3m, 무게 700kg에 달하는 거대한 등(燈)으로 가미나리몽 앞은 언제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금발의 서양인 모습도 눈에 띄고 흑인들도 있다. 중국어도 들리고 한국어도 예사로 들릴 만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도쿄를 찾는 이들은 한 번쯤 찾게 되는 절 센소지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백제계 어부 형제이야기다. “서기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에서 고기를 잡던 히노구마노 하마나리, 다케나리 형제는 평소처럼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그러나 그날따라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 여러 번 그물을 던진 끝에 어망에 걸려나온 것은 사람모습의 인형(불상인지 모르고 인형으로 알고 있었음)이었다. 형제는 이 이상한 물체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렸으나 몇 번이고 그물에 걸려 나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 건져서 당시 향토문화인(鄕土の文化人)인 하지(土師中知) 씨에게 가지고 가서 내보였다.

그러자 하지 씨는 이것이 성관세음보살상(聖觀世音菩薩像) 이라며 깊은 믿음으로 공양했다. 어부형제도 이 불상이 중생의 모든 소원을 현세에 이뤄주는 현세이익불(現世利益佛)임을 알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열심히 기도한 결과 그 소원을 이루었다. 한편, 하지 씨는 이후 삭발하고 출가하여 자기 집을 절로 고쳐서 이 불상을 모시고 마을주민에게 불법(佛法)을 널리 폈는데 이것이 센소지의 시작이다”

누런 황금불상을 못 알아보고 몇 번인가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말이 재미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히노구마(檜前, 檜熊) 씨는 《신찬성씨록, 新撰姓氏錄)》에 ‘백제계의 고조(高祖)’라고 나와 있으니 이들은 곧 백제의 후손이다. 또한, 마을의 원로인 하지(土師) 씨도 백제계이다. 《속일본기》와 《일본서기》에는 “고구려인 1,799명을 오늘의 관동지방인 무사시국에 이주 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高句麗郡)을 설치했다.” “백제 남녀 2,000명이 동국(東國)에 살았다. 스님과 속인을 가리지 않고 3년 동안 나라로부터 녹읍을 내려받았다.” “귀화한 백제 스님과 속인 23명을 무사시국에 옮겨 살게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 62명을 받아들였다.”라는 기록들이 있다.

순박한 어부형제의 전설이 깃든 센소지를 들를 때마다 나는 1,300여 년 전 지금의 관동지방인 무사시노국에 신도시 개발의 꿈을 안고 옮겨와 정착한 한국인들을 그려 보곤 한다. 도쿄를 방문하는 사람은 백제계 어부형제의 전설이 서린 관동 최고의 절 센소지를 둘러보면서 오늘의 관동지방을 개척한 고대 한국인들의 씩씩한 기상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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