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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1.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 <Ⅰ>

   
     
2012년, 6월 14(목요일) 오전 10부터 성동구 왕십리에 있는 소월 아트홀(성동문화원)에서는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을 조명해 보는 학술모임과 기념공연이 한국전통음악학회 주최로 개최된다. 이 대회에서 발표될 필자의 기조강연 내용을 몇 회로 나누어서 매주 얼레빗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좌장으로부터 소개받은 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입니다. 이 행사를 주최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또한 보람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 국가를 경영하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전통음악은 소수의 특수 계층이 그 명맥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전직 국회의원 한 분과 00감독원장, 기업체 회장을 지낸 분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거 서 교수가 쓴 책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 있잖아,” 하니까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 “추임새요? 무슨 새의 이름입니까?” 하고 되물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국악이란 이름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이 포함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의 경서도 민요가 일반인들의 몰이해로 냉대를 받아왔고 겨우 최근에야 학문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현상입니다.

경서도 소리를 제대로 전승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분이 바로 벽파 이창배 선생입니다. 선생은 단순히 ‘우리 것’이라는 외형상의 가치만을 앞세우는 국수주의적 사고나 주장이 아니라, 우리의 민요 속에는 한국인의 혼(魂)이 담겨있고 사상과 감정, 생활철학이 가장 한국적으로 녹아있는 노래라는 내적 이유가 더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서도 민요의 새 지평을 연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임에도 선생으로부터 직접 소리를 배웠거나 또는 나이가 지긋하거나 하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벽파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1970년대 말, 모 일간지에 ‘국악 한 세대 어디까지 왔나?’란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경서도소리>의 원고 구성 차, 종로3가에 자리 잡은 <청구고전성악학원>을 방문하여 선생과 인터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벽파 선생님 “민요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계십니까?” 선생은 잠깐의 생각할 시간도 없이 “민요란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대중의 노래지. 누가 언제 곡조를 짓고 가사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입과 입,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시대의 생활상과 감정들을 반영하고 있는 전통적 가요”라고 명쾌한 정의를 내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대중의 노래” 조금이라도 가리거나 감추지 않고 가슴속에 담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박한 노래가 곧 벽파가 생각하는 민요였던 것입니다.

벽파 이창배 선생은 1916년. 9월 26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강제로 합방된 해가 1910년이니까 일제의 간악한 행태가 극에 달해 있을 무렵 벽파는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희망도 잃었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무렵(1916-1917년)에 태어난 명인 명창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들은 정악 대금의 <김성진>, 국악 창작의 선봉 <김기수>, 국악이론의 대가 <장사훈>, 정악피리에 <김준현>, 판소리에 <박동진>, <김소희>, <박초월>, 가사의 <정경태> 등이 있습니다.

벽파는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태생입니다. 성동구 옥수동은 옛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 일대를 말하며 일본강점기에는 경성부 옥수정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23세 때 하왕십리로 옮겨서 50세까지 살았고, 1966년에 종로구 봉익동으로 옮겼는데, 50여 년 이상을 성동구에서 살면서 전통 소리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자랑스러운 성동인이라 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