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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4.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 <Ⅳ>

   

        
지난주까지 벽파가 어떤 분인가 하는 점을 정리하면서 벽파는 민속음악, 그중에서도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이었다는 점을 피력하였고, 둘째로 선생은 학문을 즐겨 한 학자였다는 점을 말했고, 셋째로는 앞서가는 국악교육자였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으로, 벽파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선생은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많은 분으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 대 사범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름난 명인 명창 중에는 스스로 자기의 음악성을 자랑하거나 목자랑, 소리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지요. 오호의 결과나 평가는 듣는 사람들이 하는 법인데 스스로 자기 소리에 도취해 품위를 잃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같은 소리를 듣더라도 A가 부르면 천박해 보이고 B가 부르면 고상해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실기인이라 해서 소리만을 앞세워서는 훌륭한 음악인으로 대접받기 어렵다는 진리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예술인인가, 아니면 쟁이인가? 하는 점이 본인의 인격이나 교양과 직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벽파 선생은 여타 명창과는 다른 품격을 지니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필자는 국악고등학교 시절, 산타령이나 제비가를 비롯하여 경서도 민요를 벽파 선생께 배운 바 있습니다. 때로는 사설의 내용을 칠판에 한문으로 꽉 채워 판서를 하시는데, 어떤 책이나 참고문헌을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가 입을 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한, 판서한 그 글씨들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우는 것을 아까워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각자가 카메라나 폰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기만 합니다.

선생과 인터뷰하며 들었던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어느 늦은 저녁시간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원생 4~5명을 지도하고 있는데, 웬 중년 남자 한 사람이 약간 술에 취해 학원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남자; 선생이 누구요?
벽파: 제가 지도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남자; 지나가다가 노래소리가 좋아서 들어왔는데, 이 소리 몇 달이면 다 배울 수 있소?
벽파: 선생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남자; 나는 대학교수요. 그건 왜 물으시오?
벽파: 그러시군요. 그런데 대학교수 되려면 몇 달만 공부하면 됩니까?
남자: ???

그리고는 벽파가 말없이 칠판에 써 내려가는 한문 가사를 보더니 말없이 꽁무니를 뺐다고 합니다. 그 다음 날 저녁, 그 중년의 대학교수는 다시 찾아와 전날의 무례를 정중히 사과하였다는 이야기를 벽파 선생에게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국악인을 무시하고 소리꾼을 우습게 알던 당시의 풍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벽파, 누구인가?
정리해 본다면 선생은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이었으며, 학자요, 국악교육자인 동시에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 국악인이었으며, 오늘의 경서도 민요가 있기까지의 체계적 전승과 확대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대 사범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문화재급 명인명창 제자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하는 말이 있습니다.

타 분야는 명인 명창들의 이름을 앞에 새겨 놓고 전국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구례의 송만갑 대회를 비롯하여, 익산의 정정렬 대회, 광주의 임방울 대회, 구미의 박녹주 대회, 고흥의 김연수 대회, 공주의 박동진 대회, 평택의 지영희 대회, 경주의 장월중선 대회, 광양의 남해성 대회 등등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생을 위한 기념행사를 하면서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경서도 소리 쪽에서도 대 사범이었던 벽파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구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벽파 선생의 흉상 건립이나 기념관의 건립도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후배와 제자들이 무릎을 맞대고 고민을 시작한다면 주위의 뜻을 같이하려는 분들이 동조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이 행사가 개최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성동구청과, 문화원 관계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후원금을 마련해 주신 산타령보존회 황용주 이사장, 한국전통민요협회 이춘희 명창에게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될 수 있도록 주제발표를 해주신 이상만, 권오성, 이보형, 송은주, 김문성 선생과 김영운 외 11분의 패널 여러분, 이은관, 묵계월, 이은주 외 원로 국악인과 제자 여러분에게 학회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기념 공연을 준비해 주신 벽파선생의 여러 제자분, 황용주, 최창남 외 선소리산타령보존회 여러분, 경기민요의 임정란 김금숙 외, 재담의 백영춘, 최영숙 외, 휘몰이잡가의 박상옥 외, 서도소리의 박준영, 이문주, 한명순, 유지숙 외, 송서의 유창 외 경서도 창악인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의 이 벽파 학술대회와 기념공연이 선생을 위한 기념사업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2. 6. 14                                         
                                 전국국악학학술대회   대회장 서 한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