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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풀 한포기도 사랑했던 고전 속의 일본인들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를 보면 12달을 상징하는 것들이 거의 꽃과 나무 그림이다. 1월을 나타내는 것은 소나무고, 2월 매화, 3월 벚꽃, 4월 흑싸리, 5월 난초, 6월 모란,7월 홍싸리, 8월 달, 9월 국화, 10월 단풍, 11월 오동, 12월 수양버들을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화투에는 식물들이 그려져 있을까? 서양의 카드에는 다이아몬드나 왕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답은 일본의 고전 속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나팔꽃으로 불리는 아사가오는 일본의 평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이후 문학작품 속에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무상함이요, 다른 하나는 남자에 대한 사랑이다.

“아침에 일어나 꽃을 보려하니 벌써 시들어 버리는구나”(新古今集), “믿음직한 그대 얼굴을 보는 듯 피어난 꽃”<大和物語>과 같이 나팔꽃에 대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일본 고전수필의 백미라고 하는 <즈레즈레구사(徒然草, 139단)>에는 봄과 여름의 꽃으로 제비붓꽃(杜若), 패랭이꽃(撫子), 등나무(藤), 황매화(山吹)를 꼽고 있다.

특히 등나무는 일본 최고의 시집인 <만엽집>에서 ‘가난한 어부가 해 입는 등나무 옷’이라는 표현이 있으나 <고킨슈(古今集)>에서는 ‘눈물의 옷’으로서 상을 당했을 때 등나무로 옷을 해 입다고 표현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나리, 냉이, 죽순, 무 같은 식용으로 쓰이는 나물류나 매화, 벚꽃, 복숭아꽃, 배꽃, 해당화, 철쭉 같은 꽃들을 읊은 노래가 많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과 나무, 풀 한포기까지 시어(詩語)로 끌어 들여 노래를 부르던 고전 속의 사람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1185)가 세워지면서 오다노부나가, 도요도미히데요시, 도쿠가와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싸움으로 얼룩진 시대(戰國時代)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순박했다. 왕위 쟁탈을 주도한 몇몇 사람을 빼고는 말이다.

가녀린 풀 한포기를 놓고 몇 세기 동안이나 질리지 않고 노래하던 사람들! 들꽃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남을 해치지 않고 더불어 살던 사람들!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던 그 손으로 칼과 창을 들고 상대방을 죽이고 성(城)을 빼앗고 뺏기더니 급기야는 이웃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고 국토를 무단으로 점령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일본을 나는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다. 일본고전을 읽으며 풀 한포기 조차도 사랑했던 고대 일본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