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제69주년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17층 강당에는 제93회 인문학 강좌로 열린 “국어사전에 남아 있는 일본말 잔재”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100여 명의 청중으로 강당 안은 열기가 뜨거웠다.
일제 침략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광복절은 우리 겨레에게 더 없는 기쁨의 날이요, 감격의 날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말 속에는 식민 잔재인 일본말이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사로 초청된 사람은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이날 강연 주제는 인물과 사상사를 통해서 펴낸 이 소장의 책 《오염된 국어사전》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 《오염된 국어사전》,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 “국어사전에 남아 있는 일본말 잔재”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 이윤옥 소장
이날 강연에서 이 소장은 우리 삶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을 잉꼬부부, 야끼만두, 자부동 같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과 국민의례, 국위선양, 부락과 같은 민족의 자존심을 해치는 말로 구분하여 2시간 동안 휴식도 없이 열강을 해서 청중으로부터 큰 손뼉을 받았다.
이윤옥 소장은 요즈음 인기 있는 영화 “명량” 얘기를 하면서 흔히 이순신 장군을 말할 때 “멸사봉공 (滅私奉公) ”이라는 말을 들먹이지만 사실 이 말은 일본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뛰라는 말이라며 말의 유래를 모르고 쓰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 했다.
이 소장은 <조선총독부 관보>에 나오는 “모든 관공리(官公吏)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열을 불태우면 관민이 원활함은 물론, 지성(至誠)이 감천하여 지주와 소작인, 혹은 기업자와 노무자와 사이가 좋아지고 국가(일본)에 대한 총친화(總親和), 총노력(總努力)에도 큰 실리(實理)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지사회의에서 총독 미나미 지로의 훈시’, <조선총독부 관보>, 1939년 4월 19일- 라는 예문을 들어 ‘멸사봉공’이란 말을 오늘날 한국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음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례" 란 말도 일본기독교단이 “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를 하는 것으로 쓰던 말인데 이를 국립국어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의 유래를 밝히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살짝 바꿔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말로는 ‘국위선양’, ‘서정쇄신’ 같은 것도 있다면서 이러한 말은 일본이 조선인을 ‘황국신민화’ 하기 위해 쓰던 말이라고 밝혔다.
▲ <국민의례>는 궁성요배, 기미가요 제창, 신사참배를 말한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미나미 지로 총독이 강조했던 <멸사봉공>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또한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번지고 있는 ‘간지난다’와 같은 말은 일본말 ‘간지(感じ)’에서 온 말이고, ‘진격의 짜장면’에서 진격이란 ‘크고 대단하다’라는 뜻으로 빗대어 쓰고 있는데 이러한 말은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와리바시(나무젓가락) 같은 말은 많이 사라졌지만 하나의 말이 사라지면 또 다시 그 자리에 다른 일본말이 대신 들어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스(서랍장)’의 예를 들어 “‘단스’는 에도(1604-1868) 말기에 들어서서 겨우 서민들이 쓰게 된 단순한 장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장롱문화는 그 역사가 매우 깊고 대단한 것인데도 무심코 ‘단스’라는 말을 쓴다.”며 “단순히 일본말을 한국말로 바꿔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글생활에도 민족성, 역사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충 설명에서 한국의 장롱문화는 재료에 따라서 오동나무 장, 지장(紙欌), 자개장, 비단장, 화각장, 삿자리장, 주칠장(朱漆欌), 죽장(竹欌), 용목장, 화초장, 화류장, 먹감나무장 등이 있었고 용도에 따라서는 버선장, 반닫이, 머릿장, 의걸이장, 문갑, 경상, 궤안, 뒤주, 고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뛰어난 가구를 쓰던 겨레였음을 강조했다.
▲ 아름다운 한국의 "화초장"(왼쪽), 단순한 일본의 "단스"
또한, 이 소장은 우리 말글살이의 이러한 잘못은 나라 예산을 써서 만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잘못에서 온다고 지적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표준국어대사전》이 “국민의례” 같은 민족자존심을 해치는 말들에 대한 분명한 풀이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식물의 경우 꽃이 피는 모습을 “총상화서, 육수화서, 원추화서”처럼 풀이했는데 이러한 풀이는 일본식 풀이이므로 한국인의 시각에서 풀어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강연을 들은 김용안(아동문학가, 49) 씨는 “국어국문학과을 전공했고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교실에도 참여했지만 우리말 속에 이렇게 일본말 찌꺼기가 많이 남아 있는 줄은 몰랐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반성하고 좀 더 우리말을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강연을 주최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사람들의 모임”은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모임으로 8년전에 만들어 이번에 제 93회 강좌를 열만큼 직장인이면서 인문학의 소양을 넓히는 일에 적극적인 활동을 해 왔다.
이 모임의 특징은 인문학에 관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좌를 활짝 열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도 입원환자 보호자로 병원에 마침 와 있던 이안섭(의정부, 63살) 씨는 “한중일이 한자 문화권이라고 생각되어 한자는 당연히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왜 우리가 우리말 속의 일본말을 걸러내야 하는지 오늘 강연을 통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서 병원에서 이러한 좋은 강연회를 열어 뜻 깊은 광복절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했다.
▲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17층 강당에서 제93회 인문학 강좌로 열린 “국어사전에 남아 있는 일본말 잔재” 강연장 모습
한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지만 정작 우리말 쪽에서는 일제 쓰레기 청산작업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사란들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국립국어원이 하루속히 일본사전을 베껴 놓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거나 다시 펴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2007년 서울에 온 중국 조선족자치주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은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타는 말[馬]에서도 내렸지만 하는 말 곧 언어도 포기한 탓에 나라와 민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 총장의 이 말을 되새겨보고 일제강점기 고통 속에서 벗어난 지 69년째 되는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말글살이가 어때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