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우리가 흔히 경기소리의 계보를 이야기 할 때, <추, 조, 박>을 화두로 삼는다. <추>는 추교신(秋敎信), <조>는 조기준(曹基俊), <박>은 박춘경(朴春景)이라는 명창이다. 추교신의 소리는 장계춘을 거쳐 최경식에게 전해졌고, 최경식의 소리는 최정식을 비롯하여 이창배,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정득만, 김순태 등으로 이어졌다. 이창배의 문하에서 최창남을 비롯한 황용주, 박상옥, 백영춘, 임정란, 이춘희, 김금숙, 김혜란, 김국진, 김영임, 이호연, 최영숙 등 현존 한국의 유명 경기명창들이 대거 배출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목청이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예능보유자(세칭-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전승과정이 충실하고 원형에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점이 관건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연주자에겐 악기가 좋아야 하듯, 특히 <경서도> 소리는 아름다운 목청이 기본인데, 묵계월의 목청은 시원시원하고 힘차며 맑고 아름다워 하늘이 낸 목이라 하였다. 목청뿐이 아니라 넓은 음폭(音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위에 끊임없는 훈련과 반복 연습의 생활화가 묵계월을 명창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주수봉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고 있던 묵계월은 어린 시절에도 그날 배운 소리는 그날로 완전히 암기하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직 소리공부를 하던 골방에서 하루 종일 연습에 몰두 했다는 그의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남들보다 좋은 목청을 타고 났다고 해서 노래가 저절로 되고 연습하지 않아도 암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연습이 생활이고, 또한 생활이 곧 연습이었던 것이 그가 좋은 목을 구사하게 된 배경인 셈이다.
다행히 묵계월은 소리를 좋아했고 오랜 시간 소리를 하며 지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하니 진정 소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기본적인 조건을 타고 난 위에 뼈를 깎는 아픔과 노력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의 이름은 점차 세상에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매사 결과가 그러할 것이다. 오늘의 묵계월 역시 목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선생을 잘 만나서 명창이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의 결과라 하는 편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 묵계월 선생(앞줄 가운데)과 임정란 명창 등 제자들이 함께
그녀는 20살 이전에 방송을 통해서 애호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방송을 통해서 그의 소리를 들었거나 또는 무대나 사랑방에서 직접 들은 사람들은 “젊은 명창 묵계월”, “소리 잘하는 묵계월” 등으로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였다. 특별한 광고가 필요 없었다. 서울 장안은 물론, 묵계월이라는 소리꾼의 이름은 점차 온 나라에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래뿐이 아니다. 그는 송서(誦書)잘 하기로 소문난 이문원(李文源)에게 “삼설기(三說記)”를 착실하게 배웠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삼설기를 다 외워 부르던 김동수(金東洙)라는 사람도 있었으나 목이 지나치게 탁성이어서 잘 부르지 않았고, 묵계월 만이 구성진 목으로 송서를 불렀기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묵계월 명창은 작고하기 2~3년 전만해도 유창이나 박윤정의 송서 발표회에 찬조 출연하여 특유의 송서를 불러주곤 하였다. 거의 단절 위기를 맞았던 송서를 오늘에 이어준 고마운 존재가 또한 묵계월 명창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송서는 고저(高低)와 억양을 넣어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구절절이 어려운 문자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암기가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고저나 억양, 그리고 악절(樂節)이나 악구(樂句)의 길고 짧음이 명확하게 짜여 있지 않아서 혼자서는 물론이고 여러 명이 합창으로 부르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송서인 것이다.
그래서 음악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가곡이나 시조, 긴소리나 일반 민요 등 다른 노래를 배우지 않고는 잘 부르기가 어려운 소리가 또한 송서인 것이다.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럴듯하게 글을 읽는다 해서 듣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묵계월은 가곡이며 시조를 비롯하여 경서도 긴소리나 일반 민요 따위 폭넓은 소리를 익혀왔기에 송서도 잘 전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탕 없이 송서를 제대로 전승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다른 명창들과의 차이점이자 그녀만의 장점을 꼽는다면 이러한 소리들을 장시간 불러도 지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체력을 타고났다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려서부터 연습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고 소리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편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구성진 목청으로 부르는 적벽가(赤壁歌)를 듣고 있노라면, 적벽대전의 형상이 그대로 그려질 정도로 목구성이 대단한 명창이다.
묵계월의 소리속을 제대로 맛보려면 1968년도에 성음사에서 제작한 <민요삼천리>라는 음반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은 <국립국악원> 악사장이었던 죽헌 김기수(金琪洙)선생이 민요 반주를 위한 관현악을 편곡하였으며 직접 지휘까지 담당하였는데, 녹음을 위한 연습장소는 당시 비원(秘苑) 앞에 있던 운이동 소재 <국립국악원> 연습실이었다. 이 연습에 참가했던 명창들로는 경기소리에 묵계월과 김옥심(金玉心), 남도민요창에는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오정숙, 남해성 등이었고 합창에는 국립국악원의 연주원들과 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이 음반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약 100 여곡을 취입한 음반으로 우리민요의 멋과 특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