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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송춘희 <수덕사의 여승> (상) ‘완전한 사랑’ 위한 오디세이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18]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송춘희 음반 표지
“스님, 웬 남학생이 스님을 찾습니다.” 

일엽스님은 웬일인지 새벽부터 마음이 뒤숭숭하여 면벽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있었다. 

행자승의 전언을 듣고 요사채를 나와 섬돌을 내려서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중학생이 하나 서 있었다. 일엽스님은 한 눈에 그 학생이 핏덩이 때 버린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아 차렸다. 귀족풍의 자태와 이목구비가 아버지 오다 세이조를 쏙 빼닮아 있었다. 그 학생은 목멘 소리로 “어머니!”하고 외치며 품으로 달려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 그리고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 품에 안겨보는 게 소원이었던 소년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품에 안기기는커녕 잠도 절 아래 여관에서 자야했다. 

비구니계의 큰 별 일엽 김원주. 그녀는 1896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한 탓에 어렵사리 이화학당을 마쳤다. 졸업은 하였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친척의 중매로 스물세 살에 연희전문 교수인 이노익과 결혼하였다. 돈이 많은 이노익은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와 의족을 찬 불구의 처지인지라 아내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이혼당하고 말았다. 

김원주는 남편과 결별하자마자 일본유학길에 오른다. 

동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석한 한 청년이 첫눈에 김원주에게 반하고 말았는데, 그가 바로 일본 최고명문가의 종손인 오다 세이조였다. 거기서 둘 사이의 가여운 열매 오다 마사오가 태어난다. 

세이조의 끈질긴 구애에 그를 만나주긴 하였으나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없던 김원주는, 며칠 산후조리를 마치자마자 달랑 편지 한 장만 남겨 놓고 현해탄을 건넜다. 김원주가 떠나자 세이조는 집안과 절연을 선언하고 조선총독부 근무를 자원하여 아들을 안고 김원주를 찾았으나, 얼음장 같은 그녀의 마음만 확인할 뿐이었다. 세이조는 쓰린 마음을 달래며 아들을 중학교 동창인 송기수의 양자로 맡기고 독일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김원주를 그리워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자유연애를 주창하며 1920년대 여성계를 대표했던 김원주! 그녀는 완전한 사랑을 찾기 위한 오디세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악마파 시인으로 이름 난 임장화와 동거하였으나, 그는 이미 아이가 셋이나 딸린 유부남이었기에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임장화는 김원주 없이는 못살겠노라며 동반자살을 제의하지만 극약을 소다로 바꿔치기한 김원주의 기지로 실패하고 만다. 

임장화와 헤어진 김원주는 그녀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훗날 내무부장관과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백성욱이다. 둘은 만나자 마자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이인양 불같은 사랑에 빠져든다. 김원주는 “드디어 완전한 사랑을 찾았노라”고 자신 있게 떠들고 다녔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은 백성욱의 잠적으로 세상의 놀림감만 되고 만다. 

백성욱이 떠난 뒤 백방으로 그의 소식을 알아보고 애타게 기다렸으나 수행 길에 나선 백성욱은 간간이 서신만 전해올 뿐 끝내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