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한국인에게 붉은색은 공산주의를 떠올리는 색깔로 그다지 유쾌한 이미지는 아니다. 하물며 소련 국기에 그려진 낫과 망치, 그리고 바탕색의 붉은 빛은 섬뜩할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 때는 1989년 1월 12일 정주영 회장은 소련으로 날아가 소련 최고 권력자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10시 무렵 일행은 크렘린궁의 맞은편 소련연방 상공회의소 뒤편 고르바초프가 업무를 보는 왼쪽 건물로 갔다. 그곳에서 정주영이 이날 만날 사람은 동방학연구소 소장 프리마코프였다. 그는 소련 KGB의 대외 총책과 러시아 외무장관과 총리를 지낸 사람이었다.
“저는 한국에서 온 프롤레타리아 정주영입니다.”
간단히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앉자마자 상기된 얼굴의 정 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말이었다. 이때 통역은 작가인 겐나지 리였는데 정주영의 첫말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가장 부자인 것으로 알려진 정 회장이 프롤레타리아라니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경제학사전에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찾아보면 “생산수단의 소유⋅비소유의 관점에서 유산계급에 대비하여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권력을 소유하지 못한 무산계급을 말한다”라고 되어있지 않은가? 통역인 겐나지 리는 순간 정주영의 말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정주영은 분명히 말해 프롤레타리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겐나지 리는 조용히 정 회장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회장님은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가 아니고 유산계급 부르주아(bourgeoisie)입니다. 회장님은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으시니까 부르주아 가운데서도 상층 부르주아이십니다.”
순간 정 회장은 역정을 냈다.
“내가 지금 당신과 이야기 중이야? 당신은 그저 통역이야. 통역은 그저 충실하게 통역만 하면 된다는 거 몰라? 내가 그걸 몰라서 프롤레타리아라고 한 줄 알아?”
이렇게 호통을 들은 겐나지 리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통역을 하자 이번엔 프리마코프가 역정을 내 통역만 곤욕을 치르고 말았다. 프리마코프는 프리마코프대로 통역이란 사람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가 싶어 야단친 것이었다. 순간 통역의 등줄기엔 진땀이 흘렀다. 장내는 잠시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다. 자칫 회담이 시작도 못하고 파탄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정주영은 조금은 당당하면서도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왜 프롤레타리아인지 그 증거를 말씀드리지요. 먼저 나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동창생이 없습니다.”
“아니 동창생이 없다는 것이 프롤레타리아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통역은 답답한 나머지 또 끼어들었다.
“없긴 왜 없어. 나는 가난해서 소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으니까 동창생이 없고 프롤레타리아일 수밖에 없잖아? 당신은 통역이나 제대로 하란 말이야.”
겐나지 리는 얼굴이 벌개졌고, 정 회장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노동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 같은 내가 프롤레타리아지 누가 프롤레타리아입니까?”
그러자 프리마코프가 반박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돈이 많은 유산계급이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돈이 많다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우리 자본주의도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목적은 세계가 평화롭게 살고 인류가 행복하게 사는 데 있습니다. 단지 방법만 다를 뿐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저는 소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5학년으로 끝을 냈지만 명예박사학위는 한국과 미국에서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과 문학으로 5개나 받았습니다. 이런 나는 절대 프롤레타리아지 부르주아일 리가 없습니다.”
이러니 프리마코프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동감입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정 회장님은 태어날 때부터 그저 평범한 돌이 아닌 빛나는 보석으로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신 듯합니다. 그러나 보석으로서의 자질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으로 갈고 닦아 더욱 빛나는 보석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박사학위를 다섯 개나 받으신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말씀을 듣고 나니 정 회장님은 프롤레타리아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을 받은 프리마코프의 입에서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
“소련과 한국이 합작사업을 합시다.”
정주영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사실 정주영은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왔고, 프롤레타리아란 말도 그 말을 하기 위한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경제제도부터가 다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프리마코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때 정주영은 프리마코프를 설득했다.
“그래서 합작을 하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 자본주의도 장점은 많지만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공산주의도 그럴 것입니다. 서로 욕심을 조금씩 접고 한 발짝씩만 앞으로 나와서 합작을 한다면 쌍방에게 모두 커다란 이익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자 프리마코프는 크게 반겼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지요. 사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 연구도 많이 했고, 특히 한국의 경제개발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현대가 눈에 띄었고, 함께 사업하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주영 회장님까지 연구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연구소에서 현대와 정 회장 관련 연구서가 한권 나왔지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 연구원들이 울산 현대공업단지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만남으로 역시 우리 판단은 정확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무얼 함께 할까요?”
이미 프리마코프는 결론을 내린 뒤 정주영을 만나고 있었다. 이날 두 사람의 대담은 큰 성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렇게 흡족한 상태에서 배웅하는 프리마코프에게 정주영은 또 한 번 긴장할 만한 말을 던졌다.
“귀국하면 우리 대통령께 오늘의 회담을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그 당시 현대와 정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가지로 압력을 받고 있을 때였기에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이었고, 자칫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말이었다. 통역도 눈치를 채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순간 이명박 회장이 끼어들었다.
“통역하지 마시오.”
그러나 정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왜 자네는 쓸데없이 통역을 막아. 그대로 통역하시오.”
그러자 프리마코프는 이심전심이었는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크렘린궁으로 갑니다. 사실 고르바초프 대통령께서 이 회담의 결과보고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연히 양측의 대통령께서 아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명박 회장은 계면쩍은 듯 혼잣말을 했다.
“역시 나보다 몇 수 위시네.”
그 누구도 부르주아라고 여길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되었고, 돈 많은 프롤레타리아 정주영은 프리마코프와의 회담에서 큰 성과를 내고 마무리 지었다. 경제학 개념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란 용어마저도 나름대로의 잣대로 정의하고 이용할 줄 아는 정주영은 분명 남달랐고 그런 그의 번득이는 재치와 지혜는 타고난 천성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합작사업을 할 사람을 만나 그저 통성명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밋밋한 상황을 정주영은 자신의 인간됨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로 잡을 줄 아는 하이에나 같은 민첩함을 지녔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민첩함은 상대방에게 깊고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사업 파트너가 정주영을 다시 보는 계기로 삼는 일석이조 효과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