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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산조(散調)음악은 가락과 장단의 2중주이다

[국악속풀이 190]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조의 전수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종래에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법이 유일하였는데, 이는 선생과 제자가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갖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배우는 사람의 기억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학습 분량이 제한적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근래에는 악보를 통한 전수방법이 일반적이나 이 역시 악보 자체가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악보와 실제 음악의 괴리를 어떻게 좁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농현이나 시김새를 표현하는 공통적인 기호나 부호의 약속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 산조음악이 전라도, 혹은 충남 일부지역에서 연주되기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어느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의 구분 따위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 장차 산조음악의 세계화가 도래할 경우, 어느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욱 더 산조음악을 잘 연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 상상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이미 시작이 되고 있는 분위기여서 더욱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조음악의 전수, 특히 한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악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악보 자체가 곧 산조음악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논란이지만 산조음악의 악보화 문제는 국악계 일각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다시 말해  산조음악을 위시하여 판소리나 시나위, 무악과 같은 음악은 악보가 필요 없다는 무용론(無用論)과 이러한 음악도 악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유용론(有用論)의 주장인 것이다.

악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악보가 있어야 배우는 사람들이 산조 음악의 전체적, 또는 부분적인 선율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악보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학습 분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미 학습한 내용도 혼자서의 복습이 쉽다는 점을 내세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특히, 구전심수의 방법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차시학습 내용에 대한 독자적인 예습도 가능한 것이다. 그 밖에도 악보를 통해 가락이나 박자를 이해한다면 배움을 일시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후일 연결이나 재생이 쉬워 학습할 때 암기 때문에 제한을 받았던 학습량이나 앞으로의 학습량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복잡하고 미묘한 산조음악의 중요한 표현법들, 예를 들면 산조음악의 색채를 분명하게 들어내는 왼손의 농현법이나 오른손의 탄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표현의 시김새 등을 표기하여 스스로 반복학습이 용이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배운 사람들은 그 악보자료를 활용하여 후일 그들의 제자들에게 교수할 수 있어서 악보의 필요성이나 그 존재는 충분히 공감이 된다.

 

   
▲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하는 김영길 명인

그런가 하면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산조음악처럼 유동성이 심한 음이나 미묘한 음정의 표기 및 음색, 그 위에 농현의 다양성을 제대로 정확하게 악보화 하지 못할 경우, 산조 음악의 고유한 맛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자유분방하고 역동성(力動性)이 생명인 산조음악이 악보로 인해 고착될 위험도 클 뿐 아니라, 악보가 음악의 창조적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는 점도 큰 이유로 꼽힌다.    

기실, 산조음악에 악보가 등장하면서부터 새로운 산조음악의 출현이 중지되고 있는 점으로 보면 악보로 인해 음악이 고착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양측의 주장은 동일한 목적, 즉 산조음악의 올바른 전승과 발전이라는 대전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다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조음악의 전수과정이나 방법에 있어 악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악보가 주는 폐단을 최소화하고 악보자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법보다는 악보는 하나의 참고자료로 삼고 마음과 귀로 교수자의 음악을 전수할 수 있는 지혜와 슬기가 필요하리라 믿는다.

산조 음악의 올바른 전승을 위해서는 문화재 제도를 강화해서 산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야금 전공의 세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한사람의 연주자가 정악, 산조, 신곡 등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지만, 기실 세 장르의 음악은 성격이 각각 다른 음악들이어서 농현을 비롯한 표현력이나 기교에 있어 전혀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18현이나 25현 등으로 창작곡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는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써야 하는데, 이들 악기를 연주하다가 산조를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최상의 연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혀 다른 음악이므로 기법이나 음악적 성격에 있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2현으로 산조를 타는 경우와 25현으로 창작곡을 연주하는 것은 마음의 준비에서부터 악기의 조율, 연주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가야금 전공도 세분화 내지 특성화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산조를 더 잘 타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제시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장단을 익히고 연주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국악의 각 장르에서 장단의 중요성은 기본이 되고 있지만, 특히 산조음악에 있어 장단의 이해, 장단의 비중은 곧 산조음악 그 자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가야금산조는 곧 선율을 진행시키는 가야금과 장단을 짚어주는 장구와의 2중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조의 가락이 장단을 타고 운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산조 연주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단을 알고 타는 사람과 장단을 모르고 타는 사람의 연주는 마치, 장애물 경기에 있어 두 눈을 뜨고 뛰느냐, 아니면 감고 뛰느냐 의 경우와 같다. 그 차이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장단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 이생강 대금산조(왼쪽), 김남순 가야금산조(오른쪽 위), 김준희 해금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