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조음악의 악보화문제, 즉 산조를 위시하여 판소리나 시나위, 무악과 같은 음악은 악보가 필요 없다는 무용론(無用論)과 유용론(有用論)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조음악처럼 유동성이 심한 음과 미묘한 음정의 표기나 음색, 또는 농현의 모양을 악보화 할 수 없다는 무용론의 주장은 자칫 자유분방하고 역동성(力動性)이 생명인 산조음악이 악보로 인해 고착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은 악보라는 매체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 그러므로 유용론의 주장처럼 악보의 장점을 살리면서 악보가 주는 폐단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야기, 산조는 12현 가야금으로 타야 제대로 된 연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 18현, 25현 등의 개량가야금은 기존의 12현 가야금과는 전혀 다른 악기임으로 전공의 세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산조음악에 있어서 장단의 비중은 곧 산조음악 그 자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음악의 개념 속에 기악, 성악, 춤이 포함되어 왔다는 이야기, 나아가 전통춤과 반주음악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한다.
노래와 반주음악, 또는 춤과 반주음악과의 관계는 서로 다른 분야처럼 생각되기 쉬우나 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우리가 반주음악이 없는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또는 리듬악기나 가락악기의 반주 멜로디가 없는 상황에서 춤을 추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경험이 없다고 해도 그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리듬악기나 가락악기와 같은 반주음악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악(樂)의 개념은 기악, 노래, 춤을 포함하는 악가무(樂歌舞) 일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기악과 성악, 춤 등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원래는 한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임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전통음악에서 기악과 노래, 춤은 각기 다른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전국적인 국악경연대회의 종목별 분야를 보면 기악의 관, 현, 성악의 판소리, 병창, 민요, 그리고 무용의 전통춤 등으로 정해져 있다. 국악경연대회인데 무용분야가 왜 들어있나 하는 것을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당연시 할 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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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륵박물관과 가야금을 타는 우륵상 |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 때의 일이다. 가야국이 망하자, 가야금 악사인 우륵(于勒)선생은 신라로 망명하게 되었고, 선생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은 진흥왕이 우륵선생에게 신라에 선생의 음악을 보급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3인 제자를 보내 주었다.
우륵 선생은 3인 모두에게 가야금을 지도해 주면서도 특히 계고(階古)라는 제자에게는 가야금을 집중적으로 가르쳤고, 법지(法知)라는 제자에게는 노래를 가르쳤으며 만덕(萬德)이라는 제자에게는 춤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가야금의 명인이 3제자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우륵 선생은 가야금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도 당연히 지도한 것이다.
이처럼 악(樂)의 개념은 단순한 기악만이 아니라, 시(詩)나 사설에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도 악의 개념이었고, 그리고 몸을 도구로 표현하는 춤도 모두 악의 개념으로 삼아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악가무 일체의 전통은 조선조를 거쳐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왕가의 아악부나 국립국악원의 부설학교로 국악인들을 양성했던 교육기관의 교과 과정을 보면 기악 전공자들에 악장(樂章)이나 가곡과 같은 성악은 물론, 민속성악과 춤까지도 공통과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악기를 다루는 명인급 악사들은 자기 전공의 어느 한 분야에 정통인 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 전공이 아닌 성악이나 춤에도 거의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배경은 간단하다. 스승들로부터 악의 개념이 악, 가, 무 일체라는 점을 분명하게 터득하면서 생활 속에서 함께 익혀왔기 때문이다. 기악 전공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배우는 것처럼 성악 전공자들은 타악기나 선율악기를 부전공으로 배우기도 하고 무용전공자들도 노래나 타악기 연주법을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익혀왔던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 제1호이면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종목이 <종묘제례악>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음악이 기악, 성악, 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표적인 음악인 것이다. 이왕 종묘제례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자 한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들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는 종묘에서 이들을 위한 제례의식 때 제례음악으로 쓰이고 있는 음악이다.
두 종류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데, 하나는 보태평(保太平)이라는 초헌례, 즉 첫째 잔을 올리는 의식에 쓰이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잔과 셋째잔을 올리는 아헌과 종헌에 쓰이는 정대업(定大業)이라는 음악이다. 양곡 모두 11곡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음악들은 악기들의 합주로만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라 노래와 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악, 노래, 춤의 종합 연출인 셈이다.(다음 주에 계속)
▲ 대표적인 악가무의 공연 <종묘제례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