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3 (목)

  • 구름조금동두천 15.9℃
  • 맑음강릉 11.8℃
  • 맑음서울 16.8℃
  • 구름조금대전 17.7℃
  • 구름조금대구 15.3℃
  • 맑음울산 11.6℃
  • 구름많음광주 15.0℃
  • 구름조금부산 13.8℃
  • 구름조금고창 11.8℃
  • 흐림제주 11.6℃
  • 맑음강화 12.8℃
  • 맑음보은 15.1℃
  • 구름많음금산 14.8℃
  • 구름조금강진군 14.9℃
  • 맑음경주시 13.1℃
  • 구름조금거제 13.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종묘제례악은 600년 동안 계속 연주된 음악

[국악속풀이 193]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조의 역대 임금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종묘에서 이분들을 위한 제례를 할 대 연주하는 음악의 총칭이 종묘제례악이고, 실제로 연주되고 있는 악곡의 이름은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이야기, 보태평은 첫잔, 정대업은 둘째잔과 셋째잔을 올릴 때 연주된다는 이야기, 종묘제례악은 관현타악기들의 합주음악이면서 성악과 의식무를 포함하고 있어서 악가무의 종합연출이란 이야기를 했다.

또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종17년(1435)에 지어졌으나 그 뒤 세조시대에 와서 개작을 한 후, 종묘의 제례음악으로 채택이 되었다는 이야기, 고쳐진 음악은 세종 때에 비하여 음계가 높아졌다는 점, 악곡의 수를 줄였다다는 점, 악곡의 길이를 원래의 악곡보다 짧게 줄였다는 점, 악장가사의 자구를 줄인 점 등이지만, 가사의 원 뜻은 그대로 살리고 있다는 점, 종묘제례악으로 채용이 된 후, 선조임금까지는 충실하게 쓰였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참고로 세조이후 종묘제례에 연주되고 있는 보태평 11곡의 이름은 1, 희문(熙文) 2,기명(基命) 3, 귀인(歸仁) 4, 형가(亨嘉) 5, 집녕(輯寧) 6, 융화(隆化) 7, 현미(顯美) 8, 용광정명(龍光貞明) 9, 중광(重光) 10, 대유(大猶) 11, 역성(繹成) 등이며, 첫곡 희문은 제관들을 사당 안으로 안내하는 음악이며, 마지막 곡 역성은 헌관들이 나올 때 연주하는 악곡이다.  

조선조 선조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악기를 온전히 보존 할 수 없었던 상황이 되었고, 또한 악사들은 흩어져버린 상태에서 비단 종묘뿐만 아니라, 국가 조정에서 행해지던 일체의 의식음악은 어쩔 수 없이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쟁이야말로 침략을 한 쪽이나 받은 쪽, 모두가 피해자라고 하지만, 준비 없이 당한 우리의 손실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인명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재산의 피해, 주권의 침해 등 그 손실의 막대함은 이전의 상태로 보상이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상태였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배운 바와 같다.  

그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의 피해는 비단 눈에 보이는 인명이나 재산의 손실뿐이 아니다. 나라의 주권도 빼앗기게 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공백, 예술의 퇴영을 가져오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인조임금 때에는 흩어진 악인을 모으고, 악기를 보수하거나 또는 제작하기 시작하여 25년 봄 제사부터 다시 종묘에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규모는 예전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 된 것이다.

 

   

                   ▲ 종묘제례악에서 일무를 추는 모습(문화재청 제공)


 종묘제례악은 두 악대에 의해 연주가 된다. 보태평은 등가(登歌)라 하여 돌층계 윗자리에서 연주하며 정대업은 층계 아래의 넓은 뜰에서 연주하는데, 이를 헌가(軒架)라 부른다. 그런데 성종 때는 헌가악대의 악사 수가 70여명이었으나 인조 때에는 절반도 못되는 23명뿐이었다. 이렇듯 임진란 이후에 악인수가 감소되었다고 하는 점은 이전에 편성되었던 여러 악기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특히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와 같은 향악기들이 빠지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을 끈다.

조선조를 거치면서 부분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 전승과정은 충실한 편이었음을 많은 고악보들은 증명하고 있다.

세종대왕 시절에 처음으로 보태평과 정대업이 창작되었고, 세조 때에 개작되어 종묘에 제사음악으로 채택된 이래, 오늘날까지 550년을 넘도록 이어오고 있는 이 음악이야말로 그 역사성만으로도 가치는 큰 것이려니와 나아가 음악자체가 지니고 있는 예술성을 인정한다면 이 음악의 가치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1964년 12월, 국가는 종묘제례악을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로 지정하였고 이 음악의 예능보유자로 성경린 외 19명을 인정한 바 있다.

참고로 지정 당시의 보유자들을 소개해 본다. 성경린, 김기수, 김성진, 김영윤, 김태섭, 김종희, 이강덕, 김만흥, 박영복, 조창훈, 구윤국, 김중섭, 최충웅, 조재선, 박종길, 이태준, 이희명, 손봉삼, 조운조, 서한범(이상 20명, 1964년 9월 20일 제출된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자료인 <종묘 제례악>에 의함)
 (다음주에 계속)  


   

          ▲ 국립국악원에서 연주하는 종묘제레악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