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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살꽂이에 삼족오작을 그려넣으면 삼태극이 표상된다

국궁 살꽂이[과녁-貫革-的] 솔의 근원에 대한 검토 4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지금까지 현대판 1자 눈섶에 흑관홍적의 살꽂이 솔의 도상학적 검토를 했다. 그러나 솔포나 솔판이 오래기간 동안의 역사적 산물이므로 이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살펴야 한다. 동양에서는 활과 살꽂이에는 난생설화와 조류 토템 설화가 내재되어있다.  

 

삼족오작[三足烏雀]과 주모대왕[주몽]의 전설  

고구려 무덤의 씨름 벽화와 5호분 5호묘 벽화에는 세발 달린 검은 새가 나온다. 보통 까마귀로 보아 삼족오라 하지만 머리에 공작처럼 둥글게 말린 볏이 있고 목과 부리가 3가지로 뻗어 나가 있으며 날개가 셋 달린 검은 새이므로. 이런 모습은 까마귀로 보기가 어렵고 주작이나 봉황의 모습에 더 가깝다.  

볏은 국가 통치 조직에서 나랏일을 담당하는 직위나 직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까마귀보다는 삼족오작이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살받이 솔의 단적홍심은 일장기보다는 태양의 문양이고 이는 동원 동이족의 태양숭배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삼족오작이 들어 있는 태양이 다른 지역과 다른 게 특이한 구조의 표상을 하고 있다.  

대륙과 반도의 동원에 살고 있던 민족 신화에는 삼족오작이 태양의 흑점 구도와 연계되고 동원동이족 신궁의 전설과 연계해 있다. 청나라에서도 까마귀를 국조로 삼았으며 일본 건국 신화에서는 3본족(三本足)으로 나타나고, 중원에서도 세발 달린 까마귀가 등장하고 있다. 삼족오작과 삼족오가 다른 점은 외형과 그 기능이다. 일본과 중국의 그리고 청나라의 삼족오는 영락없는 까마귀 모습이고 세발이 달린 길조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 삼족오작은 까마귀보다는 보다 진보적 상징적 신화적 모습이다. 남 주작에서 보듯 남쪽방향이며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 이기도 하다  


   
▲ 삼족오와 삼족오작의 차이점 – 까마귀와 공작의 차이와 같다

동아시아에서 삼족오작이나 삼족오는 미래를 예견하는 길조로 보기도 한다. 신라 488년 소지왕이 음력 115일에 경주 남산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이때에 까마귀가 날아와 임금이 신하들에 의해서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임금은 역모를 꾀하려던 신하와 궁주(宮主)를 활로 쏘아 죽여 위기를 모면했다. [일연 1281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 만주족 청나라 국조 설화의 주인공도 비슷한 구도이다. 

 

고구려 시조 추모 대왕과 건국신화 

화백은 물을 다스리는 지신이다. 그의 딸 유화[柳花]는 천신 해모수와 결혼하고 동부여로 가 고구려의 시조 주모[주몽]을 낳았다. 주모 또한 신궁이었다. 아버지 해모수는 하늘 신이고, 어머니 유화는 지신의 딸이니 사람[]을 표상하는 구도이다. 천지인 3재 합일의 결과임을 뜻한다. 당시 화살은 유엽전[柳葉箭]이었는데 이는 버들로 만든 화살이며. 하백이 다스리는 물가 지역에서는 생산되는 귀물이다. 여진족들도 버들을 귀하게 여겼으며 대나무가 없는 고구려 지역에서는 활이나 화살과 관련이 깊다.  

 

만주족 청인[淸人]들의 까마귀 숭배사상, 토템 사상과 난생-조류 설화의 공유  

심양고궁과 북경고궁에는 모두 소룬(索倫)이 있다.(왼쪽 그림) 겨울에, 이 소론의 꼭대기에 음식물을 놓아서 까마귀들이 먹게 조치하였다. 만주 여진족의 까마귀에 대한 숭배 사상과 토템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물론 만주족의 전신은 여진족이며 고구려 지배하의 소수 민족이므로 토템사상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한나라 제후로 둔갑하였지만 동원 동이족의 예()10마리의 삼족오를 쏘아 떨어뜨리고 한 마리를 남겨 정상화 시켰다는 동원 동이족 설화가 있다. 중원이나 동원의 구분보다 동아시아 공통의 새의 토템 사상으로 보아야 하며 난생-조류 설화가 혼성된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맺음  

지금까지 고구려 기사의 살꽂이 솔에서 근대의 살꽂이 솔까지의 문헌과 설화 그리고 도상적 변천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무과 시험용으로 쓰인 1자 정곡흑관은 숫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이는 구분용 기호임을 탐라순력도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습사(習射)용 태극이괘 정곡흑관과 백색 동심 표적이 양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정곡흑관으로 정리되다가 광복이후 홍적단심[紅的丹心]이 부가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다사례에서는 곰이나 순록 또는 돼지 그림을 그린 전통이 있다.  

이런 전통에 근거한다면 일자 눈섶은 태극이괘 정곡흑관에다 홍적단심에 삼족오작에 표상할 것을 제안해 본다. 태극 이괘(離卦)는 헛개[사이버] 태양을 의미한다고 보면 홍적단심을 태양으로 상징한다면 그 안에 삼족오작도 그려 넣으면 전체적으로 3태극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양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다양한 점수를 구분하면 한층 더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살꽂이 솔을 설계한다면 이래와 같다.

 

   
▲ 새로운 살꽂이 솔ⓒ솔봉 2015

 

후기, 항홰 해저 원시 시원 문명과의 연관성  

활쏘기의 살받이[과녁] 기원은 동원 동이족 신궁 예가 삼족오작을 활로 떨어뜨린다는 전설에서 기원한다. 까마귀와 인간의 관계는 수렵시대 사냥에서 공생 관계를 형성하였던 시기에 토템으로 정착했을 것이다. 사냥감이 있는 곳에 까마귀가 몰려오고 서로 정보와 먹이를 공유한대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이는 빙하기 전후 황해 해저에서 시작 발원하여 발해 연안과 한반도와 황해 서쪽 대륙 동원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보고 싶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후술을 기약한다. 개연성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