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2017년은 《백범일지》 발간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우리나라 최초 덕률풍[전화의 음역] 개통일은 《백범일지》에 근거하여 1896년 10월 2일(음력 8월 26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일지에 ‘전화 친칙[직접 명령]’으로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는 기록 때문인데 왕조시대 이 사건에 대하여 사실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전화 친칙’이 허구이거나 아니면 ‘전보 통보’라는 추정 때문이다. 1897년 12월 14일 독립신문에 ‘궐외[闕外] 전화 가설’ 기록이 새롭게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1898년 1월24일 인천 해관과 궁내부 사이의 전화사용 기록을 최초라고 보아 왔으나 어디까지나 사용 기록이지 개통 기록은 아니다 이로서 일지의 기록과 실제 개통일 사이에는 1년의 차이로 좁혀졌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서 개통일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백범일지》의 전화 친칙[親勅]에 관한 기록 일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 대군주 폐하[陛下]께옵서 대청[집무실]에서 감리 영감을 불러 가지고 ‘김창수(金昌洙, 김구) 사형을 정지하라’는 친칙「親勅」을 받고 ‘밤이라도 옥에 내려가 창수에게 전지(
[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병신년에 삼천만을 살처분하고서도 털끝만큼 양심가책 느끼지도 못하는 이 대한국인 남성ㆍ여성 젊은이와 늙은이 들 위령제를 지내면서 조ㆍ위문을 쓰노매라 (唯歲次 丁酉年 正月 朔望 대 보름날 龍仁市 星福洞600년 神木庭 大韓國人 술봉 敢召告于 丙’申年 殺’處分 三千萬 鷄公 靈位) 3천만 살처분 계공을 위령하는 조문 옛날옛적 옥황상제 여러 짐승 뜀박질에 조류로는 유일신12지신 되었다네 원성대왕 괘릉에서 서쪽을 지켰는데 어쩌다가 조류독감 살처분 신세라니 닭볶음탕 백숙탕 계삼탕을 울겨 먹고 치맥에다 바베큐 구워먹고 튀겨먹고 공수해온 달걀로 반숙 찜에 달걀말이 지지고 볶아져서 우공 돈공 앞서 갔다 닭장에다 가두고 대낮 같은 등불 켜고 운동을 할까 봐 턱밑에다 먹이 주고 알 품고 세끼 깔 까봐 똥꾸에서 가져가고 헤집고 지네 쪼던 옛날은 어디 가고 우공 아들 송아지 마공 자손 망아지 개오지는 호랑 새끼 싸가지는 삵의 자손 뀡의 세끼 꺼벙이 숭어 세끼 모챙이 달구 세끼 병아리 봄나들이 쫑쫑쫑쫑 오골계는 흰 닭이고 검은 닭은 오계이다 다리와 벼슬조차 온통 검은 까마귀 닭 신경통에 좋다 하고 진상품
[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고종의 전화 봉심(奉審- 능 참배) 《고종실록》 고종 37년(1900년) 3월 14일에 함흥과 영흥의 본궁으로 떠나는 윤용선과 이용직을 소견하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기록이 나온다 [전략] 상이 이르기를, 마땅히 전화과 주사(電話課主事)가 기계를 가지고 동행하여야 할 것이니, 전화로 먼저 아뢰면 필경 빠를 것이다.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그렇게 하면 이보다 더 편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북도(北道)의 능침(陵寢)을 봉심(奉審)하는 것은 원래 연한이 있는데 갑오년(1894) 변란 이후로 오랫동안 예를 행하지 못하여 항상 송구스러웠다. 경이 어진(御眞)을 배종(陪從)하는 일로 북도에 내려 가거든 예조(禮曹)의 당상(堂上) 함께 각릉(各陵)에 봉심하고 만약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편의대로 잘 처리하라. 해도의 도신(道臣)과 겸장례(兼掌禮)에게 분부하여 일체 봉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고종과 순종이 문상 또는 봉심을 전화로 했다는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오기는 했으나 기록으로 처음 확인되었다. 능침 봉심에 전화과 주사가 기계를 가지고 동행한다는 것이다. 봉심이란 왕명을 받들어 찾아본다는 뜻인데 참배
[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북에서의 소월에 대한 평가 북에서 소월은 민족주의애국주의 시인으로 추앙되었으나 1967년에는 돌연 봉건유교 사상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풍부한 시흥(詩興)과 고운 리듬과 절제 있는 표현으로 사실주의적으로 노래했지만 그의 문학활동은 민족해방투쟁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31운동 이후의 시대적 변천에 따라오지 못했다.(조선문학사, 1956년) 그리고 김정은 시절 복권되었다. 그런 사실을 검색하면서 나는 한국의 인문학자 문학자들에게 절망한다. 그들에게 인문학은 있을지 몰라도 인문과학이 없기 때문이다. 세기적 천재 시인 소월의 사인에 대하여 작가적 상상력이 도를 지나치고 분단을 띄어 넘은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다. 다만 이런 단편적 정보를 짜깁기 하면서 안 사실은 소월시인은 북에서도 존경하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안중근 이후 동시에 존경 받는 인사는 내가 찾은 두 번째 인사이다. 《진달래꽃》초판본 등록문화재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시집은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발간한 초간본으로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 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같은 토속적인 정서를 잘 절제된 가락 속에 담은 127작품이 수록돼 있다
[우리문화신문=진용옥 교수]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일제항쟁기를 처절하게 살았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는 소월이며,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 민족고유의 정서에 기반을 둔 시를 쓴 민족 시인이요, 저항 시인이었다. 저서는 시집 진달래꽃이 유일하다. 이 시집에 나오는 영변의 약산은 아사돌곳[한반도] 최고의 명승지요, 그곳에 핀 진달래는 전국 최고의 진달래일 것이다. 또 시어에 나오는 진달래는 님일 수도 있지만 조국임이 분명하다. 마치 만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이듯이. 이는 이흥렬의 가곡 바우고개에서도 10여 년 동안 머슴살이에 왜 하필 진달래를 안고서 눈물짓겠는가? 시인의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일명 남산동) 569번지이며 평안북도 구성군 구성면 왕인동 외가에서 9월 7일(음력 1902년 8월 6일) 태어났다. 바다가 있는 영주군 곽산면 남단동에서 자랐으며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묻혔다. 영변의 약산은 인근 고을 명산이다. ▲ 청북[청천강 이북] 지역지도 일본말을 쓰지 않고 늘 한복을 입었던 소월 그는 민족의식이 강했던 오산학교를
[한국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요즘 한자병기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한자말은 우리말로 순화시키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한글로만 쓰면 동음이어가 많아 뜻을 구분하기 어렵고 2000년 동안 써온 민족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 한자어는 419음절어에 불과하지만 4성으로 구분하여 1677음절어로 확대하고 4자성어나 오언 절구를 활용하여 27,000여 자의 의미차이를 변별해 나간다. 이에 견주어 한글은 11,172 음절이다 이를 4단계로 구분하면 44,688음절이 되어 의미로 중복되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양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지난 70년 동안 합의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논쟁의 근거는 무엇일까? ▲ 지난 8월 12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초등교과서 장례식 가운데 노제를 마친 참여자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언어교육을 겪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일본어를 국어라 했으며 한자어를 일본말로 발음하면서 공부했다. 한글을 사수한 분들은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처 준비되지 못한 광복이 이루어지자 한자어는 기계적으로 일본말에서 한말글로 바뀌었다. 80% 이상은 운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2015년 8월 13일 중국 연길에서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중국 에서 이를 계기로 지난 20년간 성과를 바탕으로 이도-안중근 평화도시 [DPZ] 설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600년전 이도[세종, 1397년(태조 6년)~ 1450년] 큰 임금[대왕]께서는 막힘없는 소통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민연(憫然) 정신으로 정음을 창제하였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선생은 1909년 할빈에서 이등박문을 총살하고 동양 평화를 외쳤다. 내가 이등을 포살[砲殺=총살]한 것은 대한 독립전쟁 하얼빈 전투 현장에서 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니 만국 공법에 의해 포로로 예우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양 3국이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며 평화유지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리고 추앙 받는 위대한 선각자요 위인이다. 유지를 따라 평화 품앗 품이라는 화폐를 발행한다. 위대한 이 두 선현을 받들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헛개[사이버]공간에 평화 지대를 조성을 제안 한다 그 명칭을 이도-안 중근 평화도시(피스토피아) 라 하였다. 이 지대에서는 아래와 같은 활동을 할 것이다. 01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이후 중국을 경유해서 남북 간에는 여러 차례 전송 우편의 교신이 있었다 이중에서 08년 7월 9일 북으로부터 온 내용을 싣는다 북에서 온 전송우편 중국조선어정보처리학회 현룡운 선생 앞 안녕하십니까.7월22일부 메일을 받았습니다. 선생이 요구하는 우리측의 기초 안건들에 대한 구체적 내용들을 첨부 화일로 보내드립니다. 우리측이 제기하는 문제 토의의 성격에 맞게 대표단을 구성하여 파견하려고 합니다. 선생이 사업조직을 잘하여 남측과 해외에서도 적중한 인물들이 참가하여 협의회가 성과를 거두도록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측에서 참가하게 될 성원들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기 바라며 우리의 제안에 다른 의견이 없다면 전번 메일에서 이야기한대로 우리 대표단의 협의회 참가와 관련한 초청장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경의를 보냅니다. 민족과학기술협회 사무국/주체 97(2008)년 7월 25일 그리고 아래와 같은 첨부 파일이 전송되어 왔다 △지역화설정과 관련한 사항 현재 세계적으로국제화(internationalization-I18N), 지역화(Localization-L10N), 전역화(Globalization-G11N), 다국어화(Multiling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첫머리 분단 70년, 남북 간에는 숱한 우여 곡절이 있어왔다. 1950년에 일어난 6,25동란은 동족 사이에 씻을 수 깊은 상채기[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치열한 체제 우월의 경쟁을 지속하면서도 남에서는 산업화를 이룩하고 80년대에는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편 북에서는 90년대에 들면서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경제력과 재래식 무기에서도 남에 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때부터 북에서는 주체를 강조하면서 핵 개발에 주력하게 된다. 사실 핵무기는 사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는 위협적 존재이며 상대는 가질 수 없는 최상의 비대칭 전략 수단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으로 하여금 핵 포기를 유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에 상응한 당근을 준다 해도 생존과 직결되므로 포기 시킬 수가 없다. 1997년 8월 분단 52년 만에 남북이 협력하는 첫 대역사는 시작됐다. 하지만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 이후 이 사업이 중단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핵 공갈에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핵 이외도 북에서 주장하는 비대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지금까지 현대판 1자 눈섶에 흑관홍적의 살꽂이 솔의 도상학적 검토를 했다. 그러나 솔포나 솔판이 오래기간 동안의 역사적 산물이므로 이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살펴야 한다. 동양에서는 활과 살꽂이에는 난생설화와 조류 토템 설화가 내재되어있다. 삼족오작[三足烏雀]과 주모대왕[주몽]의 전설 고구려 무덤의 씨름 벽화와 5호분 5호묘 벽화에는 세발 달린 검은 새가 나온다. 보통 까마귀로 보아 삼족오라 하지만 머리에 공작처럼 둥글게 말린 볏이 있고 목과 부리가 3가지로 뻗어 나가 있으며 날개가 셋 달린 검은 새이므로. 이런 모습은 까마귀로 보기가 어렵고 주작이나 봉황의 모습에 더 가깝다. 볏은 국가 통치 조직에서 나랏일을 담당하는 직위나 직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까마귀보다는 삼족오작이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살받이 솔의 단적홍심은 일장기보다는 태양의 문양이고 이는 동원 동이족의 태양숭배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삼족오작이 들어 있는 태양이 다른 지역과 다른 게 특이한 구조의 표상을 하고 있다. 대륙과 반도의 동원에 살고 있던 민족 신화에는 삼족오작이 태양의 흑점 구도와 연계되고 동원동이족 신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