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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총독부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한 악서(樂書)들

국악속풀이 201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1920년대 초, 조선의 음악관련 현상이나 사회정황 등을 일본인 다나베의 기행문을 통해 소개해 보고 있는 중이다. 경성(京城)에 하나밖에 없던 조선악기 제조 판매점은 <안동상점(安洞商店>으로 종로 견지동에 있었고, 거문고는 35엔, 장구가 15엔이었다. 현재 시세는 장구 10대 값으로도 거문고 1대를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의 대비가 다르다.

또한 단성사에 가서 <승무>, <검무>, 창극 <춘향전>, 판소리 <심청가>, 그리고 평양의 <수심가>와 경기 잡가 여러곡을 들었는데, 특히 나이 어린 소녀가 승무를 잘 추어 갈채를 받았다는 점으로 당시에도 승무는 인기를 끌었다는 점, 성악에는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창극이 또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밖에도 평양의 <수심가>라든가 <경기잡가> 여러 곡을 춤과 율동을 곁들여 부르도록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이들 노래도 일반 대중들이 좋아했던 분야로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음악에 관한 내용과 악보가 실려 있는 《세조실록(世祖實錄)》

단성사에서 일반인들이 즐기는 춤이나 노래를 감상한 그가, 다음날에는 고관대작의 초대를 받아 상류층이 즐기는 음악과 춤을 접하기도 한다.  

그의 기행문 중 1921년 4월 11일자에는 총독부에 보관되어 있는 국악관련 악서들을 살펴 본 다음, 삼청동에 있던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어 전통가곡과 궁중무용 등을 감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로 축음기회사 지점에 가서 조선음악 레코드를 조사하여 몇 장 구입했다. 오후에는 총독부의 참사관 분실을 방문, 거기에 보관된 고악서를 보았다. 상당히 좋은 참고서가 있었다.(목록은 별지에) 그리고 오후 3시 반에 삼청동에 있는 백작 송병준(宋秉畯)씨의 별저에 초대되었다. 백작 이완용(李完用)씨는 병중으로 참석을 못했지만, 유명한 후작 박영효(朴泳孝)씨는 참석했다. (현재 이 3씨는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일한병합(日韓倂合)의 역적이라고 한국민의 증오 대상이 되어 있으나 당시는 귀족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이 별채는 산 위에 있으며 예전에 장악원(이조가 성할 때의 아악소)의 건물이어서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장소이다. 이곳에서 다수의 관기(官妓)와 아악사 등을 모아 나를 위해 <초수대엽>이나 <소용>, 등 가곡 여러 곡과 <춘앵전>을 비롯하여 <장생보연지무>, <검무>, <사고무> 등과 같은 악무를 연주해 주었다.”

위의 기록에서 그가 오후에 총독부를 방문해서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고악서를 살펴보았는데, 고악서는 전날 이왕가 도서관 자료와 그 외에 조선에서 편찬되었거나 간행된 자료들을 별도로 망라하고 있어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별지 목록에 보이는 그 대표적인 자료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 음악총서, 《악학궤범(樂學軌範, 왼쪽)》과 정약용의 《악서고존(樂書孤存)》

우선 《세조실록(世祖實錄)》이다. 이 실록은 궁중음악의 악제개혁에 노력한 세조 임금의 실록으로 제 48권과 49권이 음악에 관한 내용과 악보가 실려 있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또한 조선조 성종 때 편찬된 이론, 악기, 정재 등을 정리한 음악총서, 《악학궤범(樂學軌範)》이 있고, 정조 때 흐트러진 궁중음악을 고악에 맞도록 되돌리기 위해서 중국의 악서 등을 근원으로 하여 편찬한 《악통(樂通)》도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성율(聲律)의 제작 및 연혁, 그리고 악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정약용의 《악서고존(樂書孤存)》이나 인조 15(1637)년부터 숙종 때까지 장악원의 음악행정에 관한 일을 기록한 《악장등록(樂掌騰錄)》도 있는데, 특히 이 책은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뒷수습을 한 당시의 악원의 기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문헌이다.
그런가하면 숙종 때 장악원 이세필이 태묘악장에 관한 의견을 적은 《악원고사(樂院故事)》나 세종 때 박연(朴堧)의 시문집으로 음악에 관한 상소문이 많이 들어있는 《난계유고(蘭溪遺稿)》 그리고 영조 때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고종 때 이를 증보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태조의 위업을 125장의 가사로 만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도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도 영조 때 서명응 등이 지은 《국조악장(國朝樂章)》도 있고 《해동역사(海東繹史)》, 《춘관통고(春官通考)》,그리고 각종 《의궤(儀軌)》 등이 있어 과거 한국음악의 역사를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도서들을 열람한 후에는 삼청동에 있는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었는데, 이완용은 병중이서 불참이고, 박영효(朴泳孝)등은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 삼청동 별채가 예전 장악원 건물이었는데, 어떻게 이 국가의 건물이 송병준의 개인 별저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튼 그곳에서 다나베를 위한 최고의 연향인 가곡과 궁중무용이 베풀어졌던 것이다.(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