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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무엇인가?

[국악속풀이 205]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충남 서천이 낳은 판소리 이동백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근대 판소리사에서 큰 이름을 떨친 이동백(李東伯,1867-1950)은 충청남도 서천 태생이다. 84세로 작고하기 전까지 평생을 소리꾼으로, 창극운동과 후진 양성 등 판소리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란 점, 일제 강점기,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가 위축될 시기에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등과 함께, 판소리를 지켜가며 창극운동에 공이 큰 5명창 중에 한 사람임을 얘기했다.

또 그의 성음은 매우 미려하면서도 다양해서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일을 자유자재로 했으며 특히 하청(下淸)이 웅장했다는 점, 그는 심청가와 적벽가에 능했고 <새타령>은 이날치 명창 이후 당대 독보였다는 점, 그의 판소리제는 충청지역의 중고제로 분류된다는 점, 최근에 미국 빅터 음반사에서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백 명창의 100년 전 음반, 춘향가 SP(유성기 음반) 희귀본 2장이 발견되었다는 점, 이동백을 기리는 전국판소리 경연대회가 충남 서천에서 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엊그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던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음악에 관해 속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하겠다.  

민간 기악합주의 주류는 사랑방 음악이라고 하는 줄풍류와 옥외의 음악인 대풍류이다. 줄풍류란 글자 그대로 현악기, 즉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이 중심되고, 거기에 세피리, 대금, 해금과 같은 악기들이 합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대풍류는 옥외의 음악인데 이를 달리 삼현육각이라고도 부른다. 대풍류는 육각의 편성으로  피리2인, 대금1인, 해금1인, 북1인, 장고 1인 등 6인이다. 그러니까 5종의 악기를 6인의 연주자가 합주하는 음악형태로 이해해도 틀리지는 않는 답이나 삼현이란 무슨 말인가 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울, 경기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삼현육각(三絃六角) 음악은 작년에 서울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되었고, 그 예능보유자로 피리의 최경만, 대금의 이철주, 해금의 김무경 등이 인정된 것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연주되어 오던 음악을 서울시에서 문화재로 지정을 하고 제도권에서 보존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니 국악인의 한사람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며 앞으로 자주 이들의 연주를 듣게 되었으니 더욱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들 보유자들도 후배나 제자들과 함께 보존회를 만들고 삼현육각의 음악을 더욱 충실하게 지켜갈 것을 천명하고 나섰기에 기대가 크다.

   
▲ 삼현육각보존회의 삼현육각 공연 모습(왼쪽), 단원 김홍도의 "무동"

그 첫 번째 발표회가 지난 3월 31일에 최경만이 중심이 되어 열리게 된 피리위주의 삼현육각 발표회였던 것이다. 삼현육각 연주자들의 대부분은 지영희(池瑛熙1909~1979) 선생의 제자들이다. 선생은 민속음악의 대가로 국악예술학교를 중심으로 대풍류와 산조, 시나위 음악 등을 지도했으며 특히 피리와 해금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 그의 수제자가 바로 민속피리의 정통파 명인, 최경만이다.

최경만 명인은 한때 이민생활도 했으나 피리와 태평소를 못 잊어 다시 되돌아 온 국악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악장으로 재임하기도 했는데, 2006년 11월에는 흩어져 있던 악사들을 규합하고 연주가 단절되어 잊혀진 가락들을 녹음자료나 악보 자료를 참고해서 대풍류 전곡을 재구성하였고, 이를 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발표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민속음악의 원로 연주자 장덕화 명인은 “1960년 5,16 직후에 민간 관악영산회상 대령산(大靈山)1~2장은 지영희 선생의 지휘로 연주된 적이 있었다. 약 100여명의 재야 음악인들이 연주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발표된 적이 없다가 지난 2006년에 국립국악원 민속단원들에 의해 전곡이 발표되었고, 이번에 다시 삼현육간 피리보존회장 최경만에 의해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감격해 하였다.

그러니까 60년도 초에는 지영희에 의해 <대령산> 앞부분만 연주된 적은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단절되었다가 10년 전에 한번, 그리고 이번에 연주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어렵게 2회에 걸쳐 무대에 오르게 된 민간관악영산회상 연주회도 하나는 최경만이 국립국악원 악장으로 있으면서 국가기관의 후원으로 연주회를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서울시 문화재로 인정을 받은 후, 서울시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나 지방정부가 잊혀 가거나 묻혀 있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이를 되찾아 후손들에게 전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지 않는다면 상당부분 우리의 유산은 사라질 위기를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삼현육각의 경우에서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령산>과 같은 음악은 매우 느린 박자로 연주되기 때문에 호흡이 길어야 하며 피리, 대금, 해금의 가락이 어렵고, 장단이 불규칙한 악곡이다. 국립국악원의 경우는 공무원 신분의 악사들이 매일 출근하여 연습하고 공연하기 때문에 <관악영산회상>을 충실하게 전승하고 있으나, 민속 음악인들의 경우는 매일 의무적으로 모여 연습할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러한 음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용처가 없기 때문에 활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잊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상당히 뒤늦은 결정이긴 해도 서울시가 삼현육각 음악을 시 지정 문화재로 선정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인 것이다. 그 보다는 서울시가 지정하기 이전 이미 국가가 지정했어야 옳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