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에서 노래합니다. 여기서 나태주 시인이 말한“너”는 바로 이 “쥐꼬리망초”를 보고 한 말이 아닐까요? 쥐꼬리망초라고 불린 것은 꽃이 쥐꼬리처럼 생겼다거나 열매가 쥐꼬리처럼 길게 늘어져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만 실제는 꽃이 작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쥐꼬리만 하다.”라고 말하지요. 우리 들꽃에는 쥐꼬리망초와 같이 “쥐~”라는 말이 붙은 꽃이 더러 있습니다. 열매가 쥐방울처럼 생겼다는 쥐방울덩굴, 꽃잎이 작은 손처럼 생긴 쥐손이풀 따위는 작은 것을 뜻하는 것이고, 뿌리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쥐자가 붙은 쥐오줌풀은 작다는 뜻보다는 쥐오줌 냄새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일 것입니다. 쥐꼬리망초는 꽃의 크기가 2~3m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꽃이어서 앙증맞고 귀여운 꽃입니다. 이 꽃은 한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고 한 개나 두 개씩 차례로 천천히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단번에 터뜨리는 것이 두려워서 조심스럽게 꽃을 피는 겁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아주 작은 꽃이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쥐꼬리망초는 낮은
“이달 19일부터 20일까지 폭우가 억수 같이 내리고 태풍이 심하게 불어 사람이 서있지 못하였고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갔으며, 모래가 날리고 나무가 뽑혔으며, 낮인데도 어두컴컴하였다. 논의 올벼와 늦벼는 이삭이 패었다가 모두 떨어졌으며 논밭의 각종 곡식도 모두 손상되었다. 이는 근고에 없던 변으로 가을에 추수할 가망이 없어졌다. 부의 아래쪽 들판 1천여 섬지기나 되는 논밭이 매몰되었고 크고 작은 민가가 전부 떠내려가 사람들이 의지할 데가 없게 되었다. 대관령 아래서부터 해변에 이르기까지 논밭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흰모래만 가득히 널려 있으며 익사한 소와 말도 부지기수이다.” 위 내용은 선조실록 38년(1605년) 8월 8일 강릉지방의 태풍 피해 기록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조 17년(1741)에는 "호남에 큰 홍수가 져서 7백 78호가 표류(漂流)하였으며,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어지고 가옥이 무너졌다. 관서(關西)에는 크게 역질(疫疾)이 돌아 사망한 자가 무릇 3천 7백여 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을 포함하여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큰바람(大風) 707건, 큰비(大雨)
단아한 모습으로 툇마루에 앉아 엄니 재봉틀 돌리던 날 매앰매앰 시샘하며 울던 매미소리 벗하며 턱 고이고 앉은 순이의 푸른 눈동자에 어리던 풀빛 원피스. -윤지순 '엄니와 재봉틀'- 흔히 미싱이라고 했던 재봉틀은 영어로 소잉머신(sewing machine)을 일본사람들이 소잉을 떼고 머신만 쓴다는 게 발음이 안되어 '미싱'으로 쓰던 말입니다. 이 말이 들어와 "재봉틀→미싱"으로 굳어진 것이지요. 예전에 어머니들은 들들들 소리가 나던 재봉틀에 앉아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 주었지만 재봉틀이 일반 가정에 까지 확산되기 전에는 부잣집에서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발틀 재봉틀이 일반적이었는데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발틀을 굴러보다가 바늘을 부러뜨린 적이 있어 야단도 맞았던 추억의 물건이지요. 요즈음 “재봉틀의 화려한 귀환”, “불황의 전령사 재봉틀 인기”라는 뉴스 제목이 등장하는 걸 보니 경제가 어려워진 탓에 다시 재봉틀을 잡아 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나 봅니다. 하기야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시는 예쁜 옷이 백화점의 겉만 화려한 옷과 비교가 될 일이겠는지요?
오늘은 암울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 따르면 제67주년 광복절 개관 2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독립운동가를 조사한 결과 3473표(16.3%), 인터넷에서 914표(18.7%)를 얻은 김구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습니다. 지난 8월 26일(일요일) KBS 1TV에서 방영된 진품명품에는 김구 선생이 쓰신 “예의염치(禮義廉恥)”란 붓글씨 작품이 선보였지요. 이 “예의염치(禮義廉恥)”란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라는 뜻으로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이 한 말입니다. 선생의 이 글씨는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지기전 해인 1948년에 쓴 것으로 정치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 끝의 날짜에는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는데 이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운 1919년을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선생의 필체는 흔히 “총알체”라 하는데 이는 중국 장사에서 이운한이 쏜 총
김옥숙 명창이 이끌고 있는《경상도소리 보존회》가 2012년 9월 12일, 제11회 정기발표회를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국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전통의 소리를 부르고 전승해 가는 과정도 벅찬 일인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을 넘도록 지속적인 발표무대를 열어 오면서 전통소리의 고정 애호가를 확보해 왔다는 사실은 김옥숙 개인은 물론, 창원시의 자랑이오, 경남 예술계의 자랑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국악계의 자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쌍수를 들어 크게 격려하고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바이다. 얼핏 발표할 곡목들을 일별해 보니‘달거리’와 같은 좌창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과 경상도 지방의 민요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불가의 노래인‘회심곡’도 부르고, 판굿이나 춤도 들어 있으며, 가야금병창이나 판소리와 같은 남도의 소리도 포함하고 있어서 다양한 장르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재미있고 다채로운 구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무대를 준비한《경상도소리 보존회》의 김옥숙 회장은 경남 고성군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불러주는 전통의 소리를 생
-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Ⅴ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전화자 교수를 만나 연변예술대학이나 조선족 예술단, 연변의 음악인들에 관한 정보도 듣고 황득주 명인과 의기가 투합되어 연변땅을 직접 방문해 보기로 마음을 통하고 동행할 연주자들 20여명이 홍콩-북경을 경유하여 연변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이야기 했다. 북경에서 연변행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약 2시간 후에 몹시 흔들리던 비행기는 드디어 우리를 연변 공항에 내려 주었다. 늦은 밤이었다. 마중 나온 정준갑 일행을 따라 백산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말이 호텔이지 헌 수건 2장이 서로 모양이 다를 정도로 초라한 형태의 여관이었다. 아침에 일찍 찾아준 정준갑 교수를 따라 우리 일행은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원의 원로 교수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건물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사람씩 내리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연변예술학원의 김삼진 원장, 무용, 미술, 서양음악과의 부원장, 민악과의 김진,
내려 온 백두 삼동 치오르는 고향 생각 깊어가는 개마고원 겨울 찾는 가야산 그 날이 오느니 앉아만 있을건가 * 백두 삼동 : 白頭 三冬
어마닌 온 여름을 미르님 모셔서 물놀이 가자마라 가까이 하지마라 그래서 다 늙으셨고 덜된 놈만 남았구나 * 미르님: 용왕 우리 어머님은 젊으셨을 때 3일 사이에 큰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을 다 잃으셨다. 내 형 셋은 다 못에 빠져서 죽었다 한다. 그래서 큰딸인 누님만 살아남았기에 어머님은 나에게 늘 못이나 가람가에 절대로 가지 말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타이르시었다. 그 어머님도 지금은 저승 분이되셨다. 이국살이란 이런 슬픔이다.
“청어는 한 자 남짓, 물 밖에 오래 있으면 대가리가 붉어지며 척추가 53마디이다.” “나주 사람들은 분어(홍어)를 삭혀 먹는다. 국은 복결병과 숙취를 내리고 껍질은 뱀에 물린 상처에 붙인다.” 이 글은 1814년(순조 14)에 정약전(丁若銓)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있는 내용입니다. ≪자산어보≫에는 물고기의 이름과 생김새, 습성뿐 아니라 상세한 쓰임새까지 기록된 책으로 종류만 자그마치 226종이나 되며, 해부를 통해 미세한 뼈까지 세어 기록한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은 "지금 잠수부들이 면밀하게 며칠 동안 잠수를 해야 알 수 있는 것들까지 기록되어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해양생물학 지식을 정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이 책은 결코 문헌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내용의 충실을 기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지요.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후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정자가 있습니다. 가히 정자의 나라라 할 만하지요. 그 정자란 무엇하는 곳일까요? 정(亭)은 머물러 모이는 곳입니다. 곧 사람들이 여행하거나 이동하는 가운데 쉬기 위해 모이는 곳을 말하지요. 이곳에서는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재충전하여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자에서는 선비들의 시 짓기와 거문고 연주가 어울려 인문학과 예술이 꽃핀 곳이기도 하지요. 궁궐에도 정자는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 가면 부용지라는 연못에 아(亞)자 모양의 부용정(芙蓉亭)이 있으며, 애련지라는 연못에는 애련정(愛蓮亭)이 있지요. 또 반도지에는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과 존덕정, 승재정이 있고, 옥류천에는 소박한 초가지붕의 청의정, 태극정, 소요정, 농산정도 있지요. 지방에 있는 정자로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에 불탔던 파주의 화석정, 신라 헌안왕(857∼860) 때 최치원(崔致遠)이 지었다는 정읍의 피향정(披香亭, 보물 제289호), 정송강유적으로 불리는 담양 식영정(息影亭)과 송강정(松江亭), 영남 최고의 정자라는 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