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절기의 14번째인 처서(處暑)입니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부르지만 낱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서 때는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아직 남아있는 따가운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쬘 폭·포, :쬘 쇄)’를 합니다. 또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듭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지는이야기입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
나라밖에 나가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7만6,143점이며, 이 가운데 환수된 문화재는 7,466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특히 나라밖의 문화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만4,369점이 동경국립박물관 같은 일본에 있는데 상당수가 임진왜란과 알제강점 기간 중에 약탈이나 불법 매매에 의해 일본으로 나간 것들입니다. 그밖에 6.25전쟁을 전후해서는 미국으로도 많은 문화재가 나갔는데 8월 말 현재 1만8,635점의 우리 문화재가 미국에 있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캐나다, 러시아 등 모두 20개 나라에 우리 문화재들이 약탈이나 불법 거래 같은 경로를 통해 나가 있습니다. 나라밖 특히 미국의 우리 문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보스턴미술관의 은제 금도금주전자입니다. 이 주전자는 은으로 만든 다음 금도금을 한 것으로 마치 금주전자처럼 보이는데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지요. 이 주전자의 몸체는 대통모양으로 품위는 물론 우아함이 돋보입니다. 목은 연꽃봉우리로 꾸몄으며, 뚜껑 위에는 봉황이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고려시대는 청자만 연상하기 쉽지요
경북 예천에서 작은 주막집인 을 꾸려가던 유옥련 할머니가 노환으로 숨지자 세상에서는 할머니를 “라스트 주모”라고 부르며 관심을 보였고 언론에서도 이를 크게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5,6년 전 일로 유옥련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이 깃든 애환의 삼강주막이 사라지자 그 지자체에서는 할머니의 주막을 복원해 민속자료로 보존키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예부터 한국인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길 좋아합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도 노동요를 부르며 했고 한사발의 막걸리로 노동의 고단함을 이웃과 나눌 줄 알았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선비들도 심오한 학문을 닦으면서도 시와 음악을 곁들일 줄 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음주가무라는 말은 요즈음 약간 변용된 말로 쓰이고 있으나 조선시대만 해도 술은 귀천을 막론하고 백성들이 가까이하던 삶의 동반자였습니다. 그만큼 곳곳에는 술을 파는 집들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 했었지요. 술집으로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 곧 목로에 안주를 늘어놓고 술을 파는“목로술집”이 있었으며 좀 독특한 술집으로 내외술집도 있었지요. 내외술집은 중인 이상 집안의 아낙네가
용(龍)은 전설 속의 동물로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몸통은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닮았다고 합니다. 또 양수(陽數)인 9에 9를 곱한 81개의 비늘이 있는 용은 토박이말로는 “미르”입니다. 그리고 용이 하늘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무기”인데 다른 말로는 “이시미·영노·꽝철이·바리”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용은 몇 개의 발가락을 가졌을까요? 먼저 경복궁 근정전 천장에 보면 발가락이 7개인 칠조룡이 있고, 근정전 뒤의 사정전에는 발가락이 넷 달린 용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이아트옥션 경매에 나왔던 “백자청화구름용무늬항아리”의 용은 발가락이 3개입니다. 왜 용의 발가락 숫자가 이렇게 다를까요? 먼저 중국 황제는 발가락 5개를 썼고, 제후는 4개를 썼으며, 3개는 세자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은 중국 황제의 제후로 생각하여 사정전 일월오봉도 위의 용 그림에 발가락이 4개인 사조룡(四爪龍)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고종 때 중건한 근정전에는 발
후지와라마사코 씨 가족을 만난 것은 시화전 이틀째였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문화쉼터전시실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전시장을 기웃거리는 일본인을 만났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전시실 앞에 세워두고 전시된 시화에 눈길을 두고 있는 것이 관심 있어 말을 붙여 보니 한국에 여행 온 가족이었다. 한국말은 “안녕하세요?” 밖에 모르는 이들이지만 전시된 내용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에 관한 시화전이라고 하니 두 눈이 동그래진다. 후지와라 씨는 60대 중반의 여성으로 일본에서는 기모노 관련 일을 하면서 일본에 유학 온 외국인들에게 기모노를 소개하며 직접 입혀주고 사진도 찍게 하는 등 일본 전통문화 보급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후덕한 이웃집 아주머니 인상의 후지와라 씨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한국에는 처음 왔는데 사실은 가까운 나라라 일찍 와보고 싶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를 알고 있어 늘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커 보였다. 나는 후지와라 씨 가족에게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비행사가 되어 일본왕이 사는 황거(皇居)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만세운동을 부
-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Ⅳ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행사가 연변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전화자 교수가 어렵게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그를 통하여 연변대학과 연결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1990년 한ㆍ중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던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민족의 전통소리를 배우고자 한국《국립국악원》으로 유학을 온 전 교수를 만나게 된 배경을 잠시 이야기 하였다. 거문고의 명인 고 황득주로부터 전 교수를 소개받고 우리 3인은 반포 삼거리 식당에 가서 불고기와 냉면으로 늦은 저녁을 함께 했다. 맥주도 한잔 곁들였다. 그 당시의 우리와 중국의 화폐가치를 기억나게 하는 일이 하나 생각난다. 3인이 식사를 끝내고 75.000원을 계산 했는데, 전교수가 영수증을 자꾸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무심코 주었더니 그의 말이 “야, 내 3달 치 신봉을 한자리에서 먹어 치웠습네다”라고 놀래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참 대학교수의 1개월 급여가 우리돈으로 25,000원이었음을 알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젊은 교수들은 2만원 미만이었을 것이고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전문 연주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들
아버님 남겨 가신 빛바랜 밀짚갓은 예순 해 옛날 돋워 목소리 쟁쟁하니 일흔된 이 못된 놈은 머리만 파뿌리네 * 밀짚갓 : 밀짚모자 우리 아버님은 살아 계실 때 여름이면 줄곧 밀짚갓을 쓰고 다니셨다. 또 한국에서 들어 온 밀짚갓이야 말로 참된 갓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었고 그때면 우리 자식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하시었다.
“『여봅시오. 이것 얼마에 잡으시겟슴닛가?』 동경만 가터도 최소로 이원은 줄 터인데 아마 서울이닛간 일원쯤은 주겟지 하고 경성 안에서도 덩덩그러케 붉은 벽돌 새집을 지어놋고 잇는 화동 어느 전당포를 드러서서 그러케 물어 보앗겟다. 그 안에 게신 사무원 한 분 아침 변또를 자시다가 끼우-시 내다보고, 『그런 건 잘 안 잡슴니다. 잡어도 얼마 드리지 안흐나 주인이 안 게시니 자세히 모르겟슴니다. 』” 위 글은 잡지 제5호(1927년 03월 01일 발행)에 있는 “貧民銀行 典當鋪 이약이, 典當物로 본 北村의 生活相, 손님은 누구, 물건은 무엇?”이란 제목의 니야기로 기자가 전당포를 취재하는 내용입니다. “전당포(典當鋪)”란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 주어 이익을 취하는 곳으로 일종의 사금융업이지요. 전당이라는 말은 ≪고려사≫ 식화편 차대조(借貸條)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은 인질에서 발달되었는데 사람을 빚의 담보로 한 것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살길이 막막할 때 아내나 자식을 저당잡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신매매와 더불어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적으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광복절.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는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2012 만해축전”이 열렸습니다. 지난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만해축전은 “일생을 조국독립과 겨레사랑으로 일관한 만해 한용운 선사의 민족사상ㆍ자유사상을 선양함으로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불교적 평화실천과 문학정신을 기려 민족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는 취지로 여는 것입니다. 만해(萬海, 卍海) 한용운(韓龍雲)은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로 저서는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흑풍≫, ≪후회≫ 같은 것들이 있지요. 그러나 만해는 삼일독립선언 33인 가운데 변절하지 않은 지사로 존경받습니다. 만해는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라면서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으며 "일본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라면서 집에서 손수 어린 딸을 공부시켰음은 물론 총독부 청사를 마주 보기 싫어 집(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선생을 향해 벽초 홍명희는 “만해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오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예악당에서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중요무형문화재 공연을 합니다. 이 공연은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오른 14개 종목 가운데 판소리, 처용무, 강강술래, 영산재가 무대에 오릅니다. 24일 공연은 판소리로 성창순, 안숙선 명창이 판소리 눈대목(주요 대목)을 펼치고, 이어서 현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사를 풍자하는 소재로 창작 판소리가 꾸며지지요. 또 25일 공연에서는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 處容說話>에서 비롯된 가면무용인 처용무, 영혼천도를 위하여 행하는 불교의식 영산재인 바라춤과 나비춤 그리고 강강술래가 펼쳐집니다. 관객들이 전통예술을 좀 더 친근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동화속의 인물들이 등장해 춤과 연기로 공연을 이끌어가며, 전통 춤과 관련된 설화를 영상극으로 올립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