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살이 일흔에 무엇이 남았는지 낭떠러지 바라보니 눈물만 쏟아나고 가슴 속 깊깊은 곳에 외솔은 섰고니 * 죽살이 : 인생 * 외솔 : 국어학자. 최현배(1894~1970) 선생의 호 * 한밝 김리박 선생은 일본에 살면서도 늘 가슴 속에 외솔 최현배 선생을 모시고 산다. 일본살이 70여 년 동안 우리도 잊은 토박이말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면서…. 믿나라(조국) 사람들이 간판을 영어로 도배하는 동안에도 선생은 명함에 적는 휴대폰이란 말 대신 "손말틀"을 고집한다.(편집자)
길없는 길따라 피는 봄내음꽃 가는 때새 오는 때새 그 사이를 또 때새 흐르는 가람소리는 꽃들의 젓꼭지니 * 봄내움꽃 : 매화꽃 * 때새 : 시간 * 가람소리 : 강물 흐르는 소리
오르느냐 비탈길 내리느냐 재넘잇길 치오르면 꼭대기냐 잦으면 바닥이냐 눈앞에 트인 길이언만 망설이는 빈 속이니 * 재넘잇길 : 산에서 내리는 바람의 길 * 젊었을 땐 겁 없이 뛰어올랐지만나이가 들어보니 빈속일 뿐이었다.
"어린애들의 군것질은 집에서 만들어 먹이고 사주지는 말아야 합니다. 애들이 밖에서 놀다가 더러운 손으로 불량식품을 사 먹는 것은 배탈이 나기 쉬우며 한 고뿌(1컵)에 1전 씩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사이다 같은 것도 좋지 않으니 돈은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뛰고 놀면 금방 배고 고파지니까 나가서 노는 아이들을 제때에 불러들여 밀전병 같은 것을 해먹이고 보리차를 끓여 시원하게 해서 먹이면 건강에 좋습니다." 이는 1930년 5월 14일 자 중외일보 기사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기사치고는 제법 흥미로운 기사지만 1950년대에도 여전히 생활이 어려워 돈 주고 군것질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노릇이었지요. 그때 달콤한 군것질거리로는 엿장수의 엿이 최고였는데 동네에 찾아오는 엿장수 아저씨의 가윗소리가 들리면 떨어진 고무신짝을 들고나가 엿으로 바꿔먹기도 하고 더러는 아버지의 멀쩡한 고무신을 내다 주어 혼난 적도 있습니다. 그 한참 뒤에 묽은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만든 풀빵이 등장하여 애어른 할 것 없이 인기를 끌었는데 주로 국화모양이어서 국화빵이라는 이름을 불렀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머리맡에 놓고 쓴다고 하여 “머릿장”이라고도 부르는 “버선장”을 아시나요? 물론 버선장은 버선을 넣어두는 장입니다만 버선만 넣어두는 것은 아니지요. 특히 버선장이라 하면 안방에 두는 것으로 장농을 작게 만든 것 같은 귀엽고 아름다운 형태인데 무늬가 고운 물푸레나무나 채색이 아름다운 화각(華角)·수(繡)·자개 따위로 치장하지요. 애기장이라고 부르는 버선장은 안주인의 일상용품 곧 이불 ·요 ·베개를 얹거나 반짇고리를 얹어두기도 합니다. 또 버선장 서랍에는 가위 ·실패 ·골무 ·실 따위도 넣어두고 썼지요. 대신 사랑방에 있는 머릿장은 안방의 버선장과 달리 몸체가 단아하며, 단층 정사각형에 문짝이 하나 혹은 두 개가 위아래로 있고 서랍이 윗부분에 두세 개가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밖에 장 위에 두루마리 개판(蓋板) 곧 양끝이 번쩍 들려 마치 두루마리를 편 것 같이 보이는 널빤지를 댄 경축장(經竺欌)이라는 것도 있지요. 경축장은 호족형(호랑이 다리 모양) 다리가 대 마디[竹節形] 조각과 풍혈장식(風穴裝飾, 가장자리를 돌
우리 겨레는 전통 민요 아리랑으로 세계 어디에 있어도 하나가 됩니다. 특히 ‘독립군아리랑’, ‘연변아리랑’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지요. 아리랑은 그냥 노래가 아니라 한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인 노래로 아리랑 속에는 겨레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용서와 화해, 강력한 저항과 울분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천 년의 정서가 녹아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대표 민요곡임을 증명하듯 《본조아리랑》을 중심으로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긴아리랑》, 《별조아리랑》, 《아리랑세상》과 같이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유래 또한 구구절절합니다. 이를 중명하듯 유네스코에서 세계토속전승민요를 기리는 “아리랑상”을 만들었으며,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아리랑이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조선족농악무, 그네·널뛰기, 장고춤, 조선족회갑, 전통결혼, 전통복장 등과
청자오리모양연적은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으로 물 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의 연적입니다. 연잎과 봉오리가 오리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오리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리의 깃털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세련된 조각기법과 비색(翡色)의 은은함이 고려 귀족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골동품상 이희섭은 청자오리모양연적을 가져온 손님에게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을 준다며 이 연적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는 이 연적이 시중에 흔한 물건이라며 실제와는 다른 이야기로 속이기까지 하지요. 사실 연적을 가져온 손님은 청자연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친구의 것을 한 번만 보고 돌려주겠다고 하고 골동품상에 가져 와 본 것이지요. 그런데 기와집 한 채 값을 준다고 하는 말에 홀려서 그만 넘겨 버리고 마는데 이때 이희섭은 손님에게 1,600원을 건네줍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 청자연적을 즉시 군산에 살던 일본인 갑부에게 2만 원이란 큰돈을 받고 넘겨버리고 말지요. 앉은자리에서 열 배도 넘는
오늘은 조선시대 4대명절(설날, 한식, 단오, 한가위)의 하나였던 한식(寒食)입니다. 한식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개자추 이야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풍습인 “사화(賜火)” 이야기도 있지요. 먼저 개자추 이야기를 볼까요? 중국 춘추시대 개자추(介子推)란 사람은 진나라 임금이 된 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때 그를 19년 동안이나 극진히 모셨습니다. 특히 문공이“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고기를 구할 수 없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구워줄 정도였지요. 뒷날 문공이 임금에 오른 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벼슬을 주었으나 개자추는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그는 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문공이 나중에야 잘못을 깨닫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러 타죽게 되자 이 날만은 개자추를 기려 불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 해서 한식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한식 풍습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쳤는데 임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위 노래는 우리 겨레가 청명 즈음 불렀던 “나무타령”이라는 민요이지요. 오늘은 24절기 다섯째 청명(淸明)입니다. 청명이란 이날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이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무슨 나무를 심어도 그만큼 잘 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내 나무”라고 부르지요. 또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청명 무렵에는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로 한해의 농사를 시작합니다. 곳에 따라서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 자락에는 운주사(雲住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하는데 이 절은 도선(道詵)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1481년에 펴낸 ≪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씩 있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운주사에서 가장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수많은 석불과 석탑 가운데 누워있는 부처님 모습입니다. 운주사 “와불(臥佛)”은 길이 12m, 너비 10m의 크기로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누운 부처님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친견할 수 있습니다. 대관절 이 부처님은 왜 이렇게 누워계실까요?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늘나라의 석공들을 동원하여 하루낮 하루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만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천불천탑을 만드는 도중 국사를 모시던 동자승 하나가 밤새도록 노스님을 모시다가 쉬고 싶은 생각에 그만 닭울음 소리를 흉내 내어 날이 샌 것처럼 했다고 합니다. 이때 모든 불상과 탑이 완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와불의 완성만을 남겨 놓았는데 그만 닭 우는소리에 하늘나라 석공들이 일을 멈추고 모두 하늘로 가버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