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은 일본의‘성인의 날(成人の日)’이었다. 올해 스무 살을 맞이하는 젊은이들에게 성인이 됨을 축하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도록 인식 시켜주는 날이 성인의 날인데 갓 성인이 된 사람을 일컬어 일본에서는 신성인(新成人)이라고 부른다. 성인의 날을 맞아 다이아몬드온라인(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회사에서는 이들 신성인들이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는가에 대한 이른바 2013년 신성인에 관한 설문조사 (2013年 新成人に關する調査)를 했는데 결과는 77%가 어둡다고 답했다. 어둡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속되는 불경기, 수출로 먹고 사는 일본의 엔고현상 지속, 고령화사회를 우려하는 남성들의 답과 젊은 세대를 키울 만한 일본 사회의 에너지 고갈, 자녀 양육의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등의 여성들의 답이 주류를 이뤘다. 여기서 미래가 어둡다고 답한 여성들의 답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젊은이를 키워낼 기력이 없는 사회, 그러한 정치판, 저자녀 출산임에도 지원이 부족한 현실, 몰상식한 사회인의 증가”같은 이유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웃 일본만의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 만 스무 살을 먹는 젊은이들의 잔치인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는 1월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지난 한주 동안 오세치요리(お節料理)라는 설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엊그제 1월 7일은 그동안 설음식으로 빵빵해진 배를 편안하게 하는 나나쿠사죽(七草粥)을 먹음으로써 설날 먹거리를 통한 새해의식을 다졌다. 한국인들이 설날에 해먹는 음식이 있듯이 일본도 설날을 맞아 먹는 음식이 있는데 이를 오세치요리(お節料理)라고 한다. 요즈음은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집 보다 편리하게 큰 백화점이나 인터넷 등에서 주문해서 먹는 가정도 늘고 있다. 3~4인분을 기준으로 21,000엔부터 84,000엔짜리 오세치요리를 선보인 오식스주식회사(オイシックス株式社) 누리집(홈페이지)은 보는 것만으로 화려한 오세치요리(설음식)가 가격별로 준비되어있다. 십여 년 전 양력설에 일본친구 집에서 설날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친구의 시어머니가 한국인 손님을 위해 오세치요리를 먹음직스럽게 해서 보내준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세치요리에 쓰는 재료는 대부분 연기(緣起)라고 해서 음식 자체보다는 장수, 부자, 자손번영 같은 것을 의미하는 재료가 쓰인다. 새우는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장수하라고 쓰며, 검은콩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 밤조림은 황금색이 의미하듯 부자를, 청
단소는 짧은 취악기(吹樂器, 입으로 불어서 관 안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는 40여 cm정도, 내경의 지름이 1.2~1.3cm 정도여서 그 이름처럼 작은 악기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세로 부는 악기인 퉁소가 있는데, 퉁소는 단소보다 굵고 긴 형태이며 단소는 퉁소에 비해 작은 소(簫)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소의 재료는 검은 색깔의 대나무인 오죽(烏竹)이나 오래된 황죽(黃竹), 또는 소상(瀟湘)의 반죽(半竹)이라 하여 유명 강가에서 자라고 있는 얼룩무늬의 대나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는 황죽이다. 그런데 마디가 촘촘하지 않은 일반 대나무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질 경우, 또는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갈라지기 쉽게 때문에 비교적 단단한 재질의 쌍골죽이 악기의 재료로 좋다. 이러한 쌍골죽은 대밭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종의 비정상적인 대나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제품을 위한 재료로 적합하지 않기에 일찍 베어 버리기 일쑤다. 때문에 주인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쌍골죽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단소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윗부분에 U 자 형태의 취구
한국의 관악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큰 소리를 내는 악기가 곧 태평소(太平簫)이다. 소리가 크고 높아서 실내음악에는 적합지 않고 야외 음악에 주로 쓰인다. 그래서 종묘제례악의 헌가음악이나 옛 군악인 대취타에 편성되고, 풍물이나 절에서 재를 올리거나 작법(춤)에 또는 시나위 음악에도 쓰이고 있다. 태평소를 호적, 쇠납, 소이나, 쇄나, 날라리 등으로도 불렀다. 태평소 역시 소리를 내는 서(舌, reed)와 관으로 구분되는데, 소리를 내는 서의 크기는 피리에 비해 매우 작아서 2cm정도이며, 관은 윗부분은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며 나무 관 끝부분에 나팔꽃 모양의 동팔랑을 달아서 소리가 널리 퍼지도록 하였다. 전체 길이는 35cm 정도로 세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이며 관은 오메, 산유자, 화류 등 성질이 강한 나무 관에 구멍은 뒤에 1공, 앞에 7공이 있어 모두 8공이다. 연주법은 피리와 거의 같으나, 피리에 비해 서가 작기 때문에 서가 모두 입 속으로 들어가는 점과 같은 음자리에서 한 음계 위아래 음을 피리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점은 다르다고 하겠다. ≪악학궤범≫에 당악기로 소개되어 있고, 율은 향피리와 같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음공
밝아 돋은 첫 아침에 새해 옷 챙겨 입어 한배검 계신 곳 갈쪽 하늘 우러러 큰절을 삼가 드리고 올해를 품에 안네. * 한배검 : 단군님 * 갈쪽 : 서쪽
어디선지 들려오는 첫 홰에 깃 여며서 겨레를 슴을코 나라를 굳게 안아 나느들 덩울 바라며 한배검께 빈다네. * 슴을코 : 생각하고 * 나느 : 손자 * 덩울 : 무럭무럭 잘 자라나감
“사이비 가족계획단체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상담비 등을 요구하는 등 엉터리사업을 벌이고 있어 이들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 (중략) 이들은 ‘피임 및 임신을 마음대로 조절한다든지, 아들딸을 마음대로 조절한다, 임신을 촉진시켜준다’는 등 허무맹랑한 사실을 선전할 뿐만 아니라 루프 등 자궁 내 피임장치를 하면 암을 일으키고 정관수술을 받으면 불구자가 된다는 등 엉터리 상담을 하고 있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가족계획사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는 경향신문 1974년 5월 17일 치 기사입니다. 당시는 “가족계획”이 정부가 추진하는 큰 사업이었는데 이를 기회로 보고 사이비 단체가 생겨 상담비를 터무니없이 요구할 뿐 아니라 피임기재와 안내책자를 고가로 판매하여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정부 사업에 지장을 준다는 내용이지요. 아들딸을 낳는데 3명에서 두 명으로 급기야는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로 갔던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은 당시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도 빼줄 정도로 큰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정부가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을 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도 (老松靈芝圖)는 화폭을 가득 채운 휘굽어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담분홍빛 영지버섯이 그려진 그림으로 가로 103cm, 세로 147cm라는 초대형 크기입니다. 이는 장수를 비는 십장생도(十長生圖) 계통의 작품으로 그림 오른쪽 아래에 적힌 '을해추일 겸재팔십세작(乙亥秋日 謙齋八十歲作)' 이라는 기록을 통해 겸재가 80살에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소나무만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경우는 드물기에 과감하게 소나무 한 그루만 화폭 전면에 그린 이 노송영지도 (老松靈芝圖)는 파격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만년의 화가 겸재의 원숙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겸재의 묵법이 잘 표현된 “노송영지도”는 2000년 경매사상 최고가인 7억 원에 OIC 그룹 이회림 명예회장이 낙찰 받은 그림이지요. 그는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평소 지론대로 자신이 소유한 송암미술관과 함께 이 노송영지도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포함하여 50여 년 모아온 4,800여 점의 문화재를 2005년 인천시에 기증했습니다. 기증하면서 “아쉽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회에 돌려줘야죠. 인천에서 동양화학 공장을 운영하면서 인천 분들에게 빚진 게 많은데 개
우리가 밥반찬이나 군것질로 즐겨먹는 오징어의 한자말은 오적어(烏賊魚) 또는 묵어(墨魚)입니다. 오적어는 까마귀 오(烏)와 도둑 적(賊), 고기 어(魚)가 합쳐 생긴 말로 여기에는 재미난 유래가 있습니다. 오징어란 녀석은 물 위에 죽은 듯이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려고 할 때 발로 감아 잡아서 재빨리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고 해서 오적어(烏賊魚)입니다. 그래서 오징어는 까마귀 도둑이 된 것이지요. 또 다른 별명 묵어는 먹물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징어와 관련된 말에는 오징어묵계라는 것도 있습니다. 조선후기에 쓰인 요리서 ≪소문사설≫에 보면 바로 오징어묵계 얘기가 나옵니다. 이 책에 보면 “오징어는 뱃속에 먹물이 있어 그것으로 글씨를 쓸 수 있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 글씨 흔적이 사라져 종이 위에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예전에 간사한 백성이 이것으로 문서를 만들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