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득하다 - 정용국 “모롱이 개암 열매 제풀에 떨어지고 상강도 주춤주춤 잰걸음을 치는 저녁 부뚜막 개다리소반엔 시래깃국 두 그릇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홍적세(洪績世)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왔다“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이다.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라는 뜻으로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이때는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의 계절이다. 1961년 10월 24일 치 동아일보에 보면 “누렇게 시든 가로수 잎들이 포장한 길 위에 뒹굴고, 온기 없는 석양이 빌딩 창문에 길게 비치면 가을도 고비를 넘긴다.”라며 상강을 이야기한다. 예전 농부들은 다 익은 호박을 거둘 때 아무리 급해도 반드시 상강을 지나 첫서리를 한 번 맞히고 나서 땄다고 한다. 그것은 서리를 맞혀야 겨우내 썩지 않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또 국화차는 서리를 맞힌 꽃잎이어야 향이 진하다. 여기 정용국 시인은 그의 시 <아득하다>에서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 홍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극장은 <완창판소리-유영애의 흥보가>를 11월 12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고희를 넘긴 관록의 유영애 명창이 동편제 ‘흥보가’를 묵직한 소리로 들려준다. 유영애 명창은 1948년 전라남도 장흥 출생으로, 어린 시절 여성국극단 공연에 감명받아 소리세계로 뛰어들었다. 목포의 김상용 명창을 찾아 ‘심청가’를 배우며 판소리에 입문했고, 한농선 명창에게 ‘흥보가’를, 성우향ㆍ조상현 명창에게는 ‘춘향가’와 ‘심청가’를 각각 배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명창에게서 두루 배운 유영애 명창은 목이 실하고 소리가 구성지며 중하성에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1970년 호남예술제와 1986년 경주 신라문화제 판소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데 이어 1988년 남원 춘향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쥐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유 명창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심청가’와 ‘흥보가’ 등 50여 회가 넘는 완창 무대를 펼쳐왔다. 이 밖에도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지도위원ㆍ악장ㆍ예술감독과 광주시립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혁’은 한자로 ‘改革’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개(改)’는 고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가죽을 나타냅니다. 고대에 가죽은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죽옷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계급이나 신분이 바뀐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고 지금은 ‘개혁’이라 하면 낡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을 말하지요. 지금으로부터 352년 전인 1670년 조선 중기의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완성하고 1770년 경상감영에서 펴낸 《반계수록(磻溪隨錄)》은 그야말로 개혁교과서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이 일어나고 삼정(三政) 곧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흉년ㆍ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ㆍ추수기에 되받는 진휼제도에 관한 일)의 문란까지 겹쳐 농민들의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유형원은 그 폐단을 바로잡고자 노력했으며, 22년에 걸쳐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합니다. 그는 사회개혁가이기도 했지만, 이익이 쓴 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월 15일 낮 3시 한국의 양금을 세계에 알린 한국양금협회 대표 윤은화, 그녀가 ‘수림뉴웨이브상’ 수상자 공연한다고 해서 홍릉 <김희수아트센터>에 발걸음을 했다. 지난해 ‘뉴웨이브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해서 수상자 공연을 하지 못하다가 올 ‘수림뉴웨이브 2022’ 시상식 직전 공연을 열게 되었다. 수림뉴웨이브’는 한국음악 중심 창작콘텐츠 발표 마당을 마련해 창의적이고 실력 있는 음악가를 발굴ㆍ지원하는 우리음악 잔치다. ‘수림뉴웨이브’는 해마다 새로운 주제를 꼽아 잔치의 메시지와 맥락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수림문화재단(이사장 최규학)에서는 2021년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수림뉴웨이브 2021> 잔치를 온라인 영상 제작으로 진행하였다. 이때 <수림뉴웨이브 2021>이 주목한 음악가 5인은 '강지은(해금), 김보라(민요ㆍ정가), 방지원(타악), 송지윤(대금), 윤은화(양금)' 등이었으며, 이들은 전통음악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진위원단을 통해 <수림뉴웨이브 2021>의 음악가로 뽑혀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놈 말뚝이가 / 스스로 마당 펴고, 스스로 노래하며 / 징치하고 등 두드릴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 / 욕하고 싶은 이는 맘껏 욕들 해도 좋소 (가운데 줄임) 고성오광대 구경을 한 십년 다녀본께 / 놀이치고는 참 재미지고 / 춤사위가 독특하니 그 감칠맛이 진국입디다” 이는 우리문화신문에 매주 금요일 이어싣기(연재)를 하는 이달균의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가운데 <왜 ‘오광대놀이’인고 하니> 부분입니다. 탈을 쓴 광대가 세상사 희로애락을 춤사위에 실어 탈 많은 세상을 향해 벌이는 신명 나는 춤판인 탈놀이 곧 탈춤은 황해도 지방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영남지방의 오광대ㆍ들놀음[野遊], 동해안지역의 ‘별신굿놀이’ 등을 아울러서 말합니다. 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는 경상남도 고성 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탈놀이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지요. <고성오광대>에는 다섯과장이 있는데 먼저 문둥광대가 병마의 고통을 춤으로 승화시킨 문둥북춤 과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말뚝이를 내세워 신랄하게 양반을 조롱하는 오광대놀이 과장, 괴물 비비가 갖은 횡포를 일삼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 러 기 - 메리 올리버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지난주 우리는 24절기의 열일곱째 ‘한로(寒露)’를 보냈다. ‘한로’는 이름처럼 찬 이슬이 내리는 날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름새 대신 기러기 등 겨울새가 날아오는 때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혼례에는 신랑이 목기러기를 받아 상 위에 놓고 절을 두 번 하는 ‘전안례(奠雁禮)’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맞아 기러기처럼 백년해로하고 살기를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기러기가 암컷과 수컷이 한번 만나면 평생 다른 것에 눈을 주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 죽는다고 믿었기에 전통혼례에 기러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아빠’라는 사람들이 있다. 조기유학 열풍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주 KBS1 텔레비전 ’다큐인사이트‘ 프로그램에서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왕제색도>가 방영되었습니다. 국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겸재 정선이 76살 때인 1751년(영조 27) 자기가 살던 지금의 효자동 쪽에서 보고 비 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것을 유족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인데 올해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수집가의 초대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는 특징 있게 생긴 인왕산의 바위를 하나하나 그려 넣었습니다. 그 아래에 안개와 나무들을 그려 넣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구도를 이룹니다. 특히 나무와 집들이 있는 가까운 곳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으며, 멀리 바라보이는 원경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고원법(高遠法)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안개와 산등성이는 엷게, 바위와 나무들은 짙게 처리하였지요. 그리고 먹색의 강렬한 흑백 대비로 굴곡진 산의 골짜기를 생생하게 그려 화폭에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작품이 그려지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주변 사람들을 보면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국어를 배우고, 대학국어까지 공부한 사람들 모두 글쓰기는 참 어려워합니다. 그 까닭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가 그저 입시에 맞춰서 공부했을 뿐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여기에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모두 잘난 체에 급급한 나머지 어려운 말을 마구 써대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글쓰기가 두려워진 것입니다. 576년 전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그 목표를 어려운 한문이 아닌 글자로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하려 함이었습니다. 곧 글쓰기는 쉽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되도록 짧은 글이어야 하지요. 어떤 이는 한 글월(문장)을 5줄이 넘게 이어 쓰는데 그러면 분명히 임자씨(주어)와 풀이씨(술어) 관계가 명확해지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 낱말을 빼도 말이 통하면 그 말은 과감히 빼버려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에서 ‘불구하고’는 일본말로 쓸데없는 군더더기입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병(病)> - 허홍구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까? 이름은 병이지만 여러 형제가 있어요 앞뒤가 꽉 막혀 소통되지 않는 곳을 찾아들어요. 막힌 공간에 병이 든다는 것은 다 알잖아요 소통이 없으면 몸도 맘도 괴롭고 답답해요 공기도 통해야 하지만 피도 잘 통해야 하고 마음도 잘 통해야 서로 사랑하게 되잖아요 고집불통 불평불만 욕심 많고 질투하는 맘은 스스로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 갇히게 되지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건강하게 살다 가야겠지요 마음 활짝 열어놓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세요. 조선시대는 기록의 나라였는데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따위가 그 증거다. 그런데 그건 나랏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들도 기록하고 또 기록하면서 살았다. 그 가운데 노인병 다스림의 기록 《정청일기(政廳日記)》도 그 하나다. 《정청일기》는 영의정이면서 영중추부사인 75살 노수신의 병을 다스리는 상세한 기록이다. 1588년(선조 21년)부터 시작해서 1590년 3월 11일까지 병색이 깊은 노수신의 건강상태와 음식 그리고 약 수발 상황이 자세히 쓰여 있다. 기록을 보면 날마다 먹은 식사는 밥을 위주로 탕국, 구이, 마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며칠 뒤면 576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이때만 되면 반짝하는 행사들이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그러나 이때만 반짝할 뿐 진정 한글을 사랑하는 모습은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한글날을 그저 넘길 수 없다는 듯한 마지못한 행사들 뿐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정말 종요로운 일은 우리말과 한글을 진정 자랑하는 일입니다. 세종이 579년 전에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가장 종요롭게 생각한 것은 ‘백성 사랑’이었습니다. 한문에 능통한 절대군주였던 세종이 자기의 권위는 내려놓고 백성과 소통하려 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 있는 창제의 목적에는 분명히 한자를 몰라 억울한 일이 생겨도 호소하지 못하는 백성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 28자를 만들었는데 이는 세상 어떤 글자보다 많은 11,172자를 만들 수 있어 그 어떤 나라 말이나 소리나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세종보다도 한문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지식인들이 온통 어려운 한자말을 섞어 쓰며 잘난 체하고 외국어를 써야만 지식인인 체 마구 영어를 씁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