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곡우(穀雨)다. 곡우란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속담이 전한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었다.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다. 볍씨를 담그면 항아리에 금줄을 쳐놓고 고사를 올린다. 이는 개구리나 새가 와서 모판을 망칠 우려가 있으므로, 볍씨 담근 날 밤에 밥을 해놓고 간단히 고사를 올리는 것이다. 또 이날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데 땅의 신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카세트테이프나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듣는 것도 옛일이 되었고, 요즘은 컴퓨터로 즐기는 것은 물론 음악가들이 직접 연주하는 공연장도 많지요. 그러나 예전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와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라는 것이 들어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蓄音機)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이 축음기를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고 합니다.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에 소리를 녹음해 즉석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887년에는 미국의 빅터레코드사로 건너가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였지요. 그 뒤 1930년대 이후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하자 덩달아 축음기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축음기를 사려면 회사원이 몇 달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기에 축음기를 “방탕한 자의 사치품”이라 하였고 그 탓에 축음기를 가진 총각에게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다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규중원(閨中怨) - 이매창(李梅窓) 瓊苑梨花杜宇啼 옥 같은 동산에 배꽃 피고 두견새 우는 밤 滿庭蟾影更悽悽 뜰 가득한 달빛은 더욱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 꿈에서나 만날까 해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起倚梅窓聽五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어 새벽의 닭소리 듣네 이 한시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인 매창(李梅窓, 조선 선조 때의 여류시인 본명은 이향금 - 李香今, 1573-1610)이 지은 "규중원(閨中怨)" 곧 <안방에서의 원망>이라는 시다. 옥처럼 아름다운 동산에 배꽃이 피고 밤에는 두견새가 구슬피 우는 밤, 뜰에 가득 채우는 달빛을 보니 오히려 임을 만나지 못한 서러운 마음뿐이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어 꿈에나 만나려고 잠을 자려는데, 임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저 잠자리에서 일어나 매화가 핀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 새벽녘이 되자 닭이 우는 소리는 처량하기만 하다. 시인 유희경과의 가슴 시린 사랑이 매창의 시 한 편에 잘 표현되고 있다. 매창은 전북 부안의 명기(名妓)로 한시 70여 수와 시조 1수를 남겼으며 시와 가무에도 능했을 뿐 아니라 정절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19년 오늘(4월 11일)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나라안팎 애국지사들 사이에선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는 수립 과정과 주체가 명확히 알려진 대표적인 임시정부들이었지요. 그 가운데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하게 우리 겨레의 임시정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날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지요. 얼마 전까지 한국 정부는 4월 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해왔지만, 4월 13일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공문을 뿌린 날이고, 실제 결성일은 4월 11일이기 때문에 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금낭화의 꿈 - 이승룡 산사 가는 길목 도란도란 붉게 핀 사연 뉘 묻거든 부처님오신날 연등 못 단 이를 위해 기꺼이 한 몸 불살라 연등이 돼 줄게라 그리 답해주시게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꽃인 금낭화는 봄이 무르익은 4~5월 무릎 정도까지 키가 크고, 꽃대가 활처럼 휘면서 붉은빛 꽃이 여러 송이 피어난다. 꽃은 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데, 작은 크기로 끝이 양쪽으로 살짝 올라가 하트 모양을 이룬다. 그래서 영어로 ‘bleeding heart’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는 ‘피가 흐르는 심장’이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이 하트 속에 하얀색이 붙어 있는데, 마치 작은 주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름다운 주머니 꽃이라는 의미로 금낭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밖에 다른 이름으로는 옛날 여인들이 갖고 다니던 주머니와 비슷하다고 해서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부르며, 입술에 밥풀이 붙어 있는 듯하다고 해서 ‘밥풀꽃’이라고도 하는데 모란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등모란'이나 '덩굴모란'이란 이름도 있다. 처음에는 중국을 원산지로 생각했지만, 우리나라의 천마산, 가평, 설악산, 전북 완주 등지의 중부지역 산지에서 자생하는 것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입니다. 삼짇날에는 별명도 많은데 강남 갔던 제비오는날, 삼질(삼짇날의준말), 삼샛날, 여자(女子)의날, 삼중일(三重日), 삼진일(三辰日), 상사일(上巳日), 상제(上除), 원사일(元巳日), 중삼일(重三日), 답청절(踏靑節), 계음일(禊飮日) 따위가 그것이지요. 고려시대에는 9대 속절(俗節)의 하나였던 삼짇날은 양의 수가 겹치는 날로 파릇파릇한 풀이 돋고 꽃들이 피어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삼짇날에는 화전(花煎), 화면(花麵), 수면(水麵), 산떡(餠, 꼽장떡), 고리떡(環餠) 같은 명절음식을 해서 먹습니다. 화전(花煎)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가면서 둥글게 지져 먹는 것이고, 화면(花麵)은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혀서 가늘게 썰어 오미자(五味子) 물에 넣고, 또 꿀을 타고 잣을 넣어 먹는 것입니다. 더러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녹두가루와 반죽하여 만들기도 하며, 붉은색으로 물을 들이고 꿀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수면(水麵)이라고 하여 제사상에도 올립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강릉 풍속에 삼짇날 무렵 70살 넘는 노인들을 명승지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부끄러운 봄 - 이하재 조상 탓이라고 환경 탓이라고 남의 탓이라고 한평생 탓만 하고 살았구나 돌 틈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워 아니 본 듯 발길을 돌린다. 민들레는 양지바른 풀밭이나 들판, 길가, 공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없으며 잎은 밑동에서 뭉쳐나와 가운데서 바큇살 모양으로 퍼져 지면을 따라 납작하게 붙어 자라는데 잎몸은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큰 톱니가 있다. 꽃은 봄에 노란색으로 피고 여러 개의 낱꽃이 모여 피는 겹꽃인데 씨앗은 긴 타원형으로 털이 붙어있고, 이 씨앗들이 모여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열매가 된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이 씨앗들은 털에 의해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져 싹을 트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씨앗들이 멀리 날아가 다른 곳에서 싹 트는 것을 두고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먼 옛날 비가 몹시 많이 내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민들레도 꼼짝없이 물에 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민들레는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어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물이 턱밑에까지 차오르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너무 무서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이나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보게 됩니다. 그때 취타대의 연주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취타대의 악기 가운데는 ‘운라(雲鑼)’라는 것도 있습니다. ‘구운라(九雲鑼)’ 또는 ‘운오(雲璈)’라고도 하며, 둥근 접시 모양의 작은 징[小鑼] 10개를 나무틀에 달아매고 작은 나무망치로 치는 악기입니다. 행악(行樂, 행진할 때 연주하는 풍류) 때에는 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치며, 고정된 자리에서 연주할 때는 대받침(방대)에 이를 꽂아놓고 치게 되어 있습니다. 징의 지름은 10개가 모두 같으나 그 두꺼움과 얇음으로 높낮이가 달라서, 얇으면 낮은음이 나고 두꺼워질수록 높은음이 나는 것은 편종ㆍ편경ㆍ방향의 경우와 같지요. 악기의 전래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사》 악지나 《악학궤범(樂學軌範)〉 등의 조선 전기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조선 후기 순조 때의 《진연의궤(進宴儀軌)》에야 나옵니다. 또 조선 후기 풍속화인 평안감사가 임지에 도착하는 것을 그린 병풍에서 취타 편성에 운라가 보여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듯하지요. 주로 취타와 당악 계통의 음악에 사용되며, 맑고 영롱한 음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된 장 국 - 김태영 뚝배기에 쌀뜨물 받아 넣고 된장 한 숟갈 풀어 넣고 멀리서 온 멸치 한 움큼 보태고 보글보글 뜨겁게 끓인다 봄 손님 냉이도 한 움큼 파릇한 풋고추 숭숭 수웅 마늘 한 쪽을 쿡 찍어 넣으면 코끝으로 전해지는 구수한 맛 잃었던 입맛은 봄으로 가득하다 이젠 봄, 여기저기 들판에는 냉이, 달래를 캐고 쑥을 캐는 아낙들이 분주하다. 겨우내 김장김치와 장아찌로 버텼던 우리네 밥상에 드디어 푸릇푸릇 봄내음이 향긋하다. 유용우 한의사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은 새싹이며 실제로 봄에 새순이 나는 모든 식품은 모두 약동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고 기운을 차려 봄을 극복하려 하였다.”라면서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봄나물로 냉이와 달래를 꼽는다. 이렇게 한겨울 엄동설한을 견뎌내고 싹이 튼 나물에 오랜 기다림의 미학이 꽃핀 된장이 더해지면 우리 겨레 고유한 천상의 맛이 된다. 우리 겨레의 먹거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된장은 메주로 들지만, 예전 서양인들은 메주에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이 있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메주로 만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온봄날’ 곧 ‘춘분(春分)’으로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추분점(春分點)에 왔을 때입니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고 봅니다. 음양이 서로 반이란 더함도 덜 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지요. 이렇게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세계를 함께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춘분 무렵엔 논밭에 뿌릴 씨앗을 골라 씨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에서는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하지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으며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가 고프다.’ 하였습니다. 또 농사의 시작인 논이나 밭을 첫 번째 가는 애벌갈이 곧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지요. 음력 2월 중 춘분 무렵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