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중 추분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가을도 그만큼 깊어가지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추분의 의미는 이것이 다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 <철종 10년 (1859)> 기록에 보면 “(임금께서) ‘성문의 자물쇠를 여는 데 대해 의견을 모으라고 하시면서 종 치는 시각은 예부터 전해오는 관례에 따라 정하여 행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추분 뒤에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 기록처럼 추분날 종 치는 일조차 중도의 균형감각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날이 추분인 것으로 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곳에 덕(德)이 있다는 뜻이며 이를 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추분엔 향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합니다. 벼 화(禾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해에 이어 두해째 '코로나19' 때문에 한가위를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올해로 '코로나19'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방역을 지키면서 겨레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았다. ≪열양세시기≫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들이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가위의 유래와 말밑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린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음력 열엿새 날인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고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편에서 술과 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71년 7월 5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구 송산리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에 우연히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덤 입구에 놓인 지석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부흥시킨 제25대 무령왕 부부임을 알려주었고, 무령왕릉의 발견으로 백제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지요. 국립공주박물관은 2021년 무령왕릉 발굴 50돌을 기려 특별전시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특별전을 오는 9월 14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엽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전체를 공개하는데 1971년 발견 이후 무령왕릉 출토유물 모두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가운데 임금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시하였음은 물론 도입부에는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받침 있는 은잔을 전시하고 그 안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임금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무령왕릉 석수 등 주요 유물은 진열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乍晴乍雨)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리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은 상관하지 않으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이득이 되느니라 김시습은 이 한시에서 “누군가가 나를 치켜세우는가 했더니 어느새 나를 헐뜯고 있고, 명성을 피한다고 하더니 어느덧 명성을 구하곤 한다.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은 상관하지 않고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산은 다투지 않는다.”라고 깨우쳐주고 있다. 그러니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건 즐거운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평생의 득이 될 것이라고 속삭여준다. 매월당(梅月堂)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총독은 문무관의 어느 쪽에서도 임명할 수 있는 길을 열고, 헌병에 의한 경찰제도를 보통 경찰관에 의한 경찰제도로 바꾸며, 다시 복제를 개정하여 일반 관리ㆍ교원 등의 제복을 입고 칼을 차는 것을 폐지하는 것은 물론 조선인의 임용ㆍ대우 등에 고려를 하고자 한다. 요컨대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에 따라 정치상ㆍ사회상의 대우에도 내지인(內地人, 일본인)과 동일한 취급을 할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란다.“ 이는 1919년 8월 서울로 부임한 조선총독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시정방침훈시」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3.1만세 운동 이후 무력만을 앞세운 통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일본은 일단 당시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3.1만세운동의 책임을 물어 해임한 뒤, 해군 퇴역 장성인 사이토 마코토를 3대 총독으로 보냈습니다. 사이토 마코토는 부임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文化統治)‘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통치(文化統治)‘라고 내세운 것과는 달리 신문은 모두 검열을 거쳐야 했으며, 치안에 관한 법이 가장 우선으로 제정되어 감시는 오히려 더 심해졌지요. 그리고 이후 총독부는 1930년대 민족말살정책을 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화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괴짜 화원은 아마 최북(崔北, 1720~죽은 해 모름)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북(北) 자를 반으로 잘라서 ‘칠칠(七七)’을 자(字, 어른이 되어 붙이는 또 다른 이름)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여보게, 칠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자로 삼았다니 괴짜 화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최북한테는 ‘최메추라기', '최산수' 등의 별명이 있지요. '최메추라기'는 그의 메추라기를 그림에는 따라올 사람이 없어서 붙은 별명이고, 역시 '최산수'라는 별명은 그가 산수화를 잘 그렸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인 〈메추라기> 그림은 유명한 작품입니다. 최북은 어떤 힘 있는 이가가 와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윽박지르자 차라리 나 자신을 자해할지언정 남에게 구속받아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며 필통에서 송곳을 꺼내 자기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습니다. 또 그는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는 술에 취해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라고 외치며 물에 몸을 던지는 등 괴짜 삶을 살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여기 최북 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작가 계용묵(桂鎔默, 1904~1961)은 1935년 돈에 의해 왜곡되는 인간 심리를 파헤친 작품 <백치(白痴) 아다다>를 발표합니다. <백치(白痴) 아다다>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웬만큼 확산한 1930년대를 배경으로, 물신숭배 하는 세태에 깊이 빠진 황금 만능주의를 비판한 소설입니다. 순수한 백치 여인 아다다는 ‘돈’을 물신화하는 타락한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흠이 나지 않은 영혼의 표상이지요. 초기작품을 발표한 이후 한동안 고향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내놓은 이 <백치 아다다>로 계용묵은 재출발과 동시에, 작가로서의 확고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장벽(障壁)>(1935)ㆍ<병풍에 그린 닭이>(1939)ㆍ<청춘도(靑春圖)>(1938)ㆍ<신기루(蜃氣樓)>(1940) 등을 발표하면서 세련된 기교로써 그의 문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광복 뒤 격동과 혼란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별을 헨다>(1946)ㆍ<바람은 그냥 불고>(1947) 등을 선보여가지만 현실인식의 소극성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다섯째 절기인 ‘백로(白露’)입니다. 이때쯤이면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지요. 원래 이 무렵은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때지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에 쌀이 12만 섬(1998년 기준)이나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을장마 탓으로 농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이때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지요.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의미이고, 조선백자에 포도 무늬가 많은 것도 역시 같은 뜻입니다. 어떤 어른들은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지요.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합니다.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일제강점기인 1937년 오늘(9월 6일) 치 동아일보를 보면 “오늘 아침 초중등학생 일제히 국위선양을 기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9월 6일 ‘애국일’에 경성부 내 공사립 중등 초등학교 직원 1,600명은 오전 7시 일제히 조선신궁(朝鮮神宮)으로 참배하고, 국위선양 기원을 한 다음 경기도지사의 시국에 관한 훈시가 있을 것이라 한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학교에 돌아가서는 국기 게양, 국가 봉창, 시국강연, 동방요배(東方遙拜)를 하고, 하학(수업을 마침) 후에는 초등학교는 5학년 이상의 2만 명, 중등학교는 전부 2만 명 생도가 오전 오후에 나누어서 조선신궁을 참배하기로 하고 경성 이외의 각지에서도 각기 적당히 행할 터라고 한다.”라고 알리고 있지요. 여기서 조선신궁(朝鮮神宮)은 일왕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와 1912년에 죽은 명치왕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남산에 세웠으며 기존에 남산 마루에 있던 국사당(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인왕산으로 이전하여 개인 사당으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이 조선신궁 참배와 함께 일장기를 게양하게 하고, 일본 국가를 부르게 하는 것과 함께 ‘동방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를 보았다 - 김상현 죽도록 일만 하는 당신 분노를 사랑으로 되새김질 한 당신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 당신 일상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당신 누추한 곳에서 평안을 취하는 당신 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걷는 당신 모두가 잠든 사이 혼자 우는 당신 무거운 짐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 멍에까지도 운명으로 사랑하는 당신 죽어 가죽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당신 이 땅의 아버지들이여. 요즘에는 한우(韓牛)라 하면 한국에서 기르는 소로 육우(肉牛) 곧 주로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는 소를 말하지만, 원래는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일소’였다. 그 한우를 우리는 먼저 황우(黃牛, 누렁소)로 떠올리는데, 1399년 권중화, 한상경, 조준 등이 쓴 수의학책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보면 누렁소에 더하여 검정소(흑우), 흰소(백우), 칡소 등 다양한 품종이 있었다. 칡소란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를 말한다. 조선 중기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곧 영모도(翎毛圖)를 잘 그렸던 화가 퇴촌(退村) 김식(金埴)의 그림 가운데는 어미소와 젖을 빠는 송아지의 모습을 그린 소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