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지존(至尊), 97세의 이은관(李殷官)명창이 살아생전 만나지 못하고 소리로만 대하던 배뱅 아씨를 만나러 떠났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황해도와 평안도의 접경지대인 강원도 이천에서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소리를 좋아했고 10대에 가요 콩쿨대회에서 사설난봉가로 일등을 했다는 이야기, 민요를 좋아하던 자식을 위해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비싼 유성기를 사 줄 정도로 남다른 교육열을 지니고 있었던 이은관의 부모이야기, 유성기 음반을 통해 박춘재의 소리를 많이 들었고, 친구를 따라 황해도 황주 권번을 찾아갔다는 이야기, 그곳에서 이인수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청년 이은관은 이인수 선생 앞에서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부른 민요가 서울지방의 창부타령이었다. 그쪽 지방은 황해도의 전통적인 소리, 즉 지금의 서도소리가 그 지역의 일반적인 소리였지 서울의 명창들이 즐겨 부르던 창부타령과 같은 노래는 잘 부르지도 않았을 뿐더러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창부타령을 흐드러지게 부른 이은관에게 이인수 선생은 목소리도 좋고 재주도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쳐 줄 것을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난 5월 2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젊은 가야금 연주자 조아라 양의 취태평(醉太平)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 양은 어린 시절부터 가야금을 시작하여 수차례 개인 발표회, 해외 연주 경험, 특히 전국가야금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의 실력파 연주자라는 이야기, 젊은 연주자들은 정악보다는 산조, 산조보다는 창작곡이나 퓨젼을 즐겨 발표하는 추세이나 느리고 여유 있는 정악을 무대에 올리는 연주자들은 흔치 않다는 이야기, 영산회상은 원래 성악곡이었던 것이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기악화 되었고, 악곡을 삽입하여 연주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러할 경우에는 별곡이나 또는 가진회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해 있을 때, 관악영산회상을 들으면 생기가 돋고, 주체하기 힘든 욕망이 끓어오를 때, 현악영산회상을 대하면 곧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 정악은 기교보다는 성정에 바탕하여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조절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 오늘의 발표회를 통하여 영산회상이 곧 개인의 수양, 그리고 사회를 교화시켜 온 음악이었음을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부여지방에서 6월에 열리고 있는 시조 강습회와 내포제시조의 김연소 예능보유자의 시조창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시조시는 그 형식이 간결 소박하기 때문에 그 형태상의 특성이 유학자들의 취향과 딱 들어맞기에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크게 발전된 분야가 곧 시조창이라는 이야기, 오늘날의 시조창은 조선조 영조 무렵부터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 당시에는 시절가요라고도 했다는 이야기, 세련 정제된 형식미와 선율선의 유장미, 표현의 절제미, 창법상의 장중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이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나 현대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포제시조의 김연소 예능보유자와 충남통합시우회의 이규환, 김영숙 등 제씨들은 정성을 다해 시조 관련 행사를 추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 부여에서 울려 퍼지는 시조창의 기운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원과 함께 지역의 큰 축제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5월 2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젊은 가야금 연주자 조아라 양의 취태평(醉太平)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무형문화재 전수회관과 6월 8(일) 오후 3시 성동구 소재 소월 아트홀에서 열리게 될 선소리 산타령 보존회의 제22회 정기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선소리 산타령이란 말에서 선소리는 서서 부르는 소리, 즉 입창(立唱)이고, 산타령은 산천경개를 읊는 노래라 하였다. 한국의 산타령은 늦어도 1800년 초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다고 추측되며 1900년대 초에 문을 연 원각사, 광무대, 연흥사, 장안사, 단성사 등의 사설극장들은 낮에 선소리패(일명, 놀량패)를 초빙하여 공연을 벌린 점으로도 당시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특히, 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으며 전문 소리패들인 뚝섬패, 왕십리패 등 10여개 유명 선소리패 등이 있었으나, 전문 소리패에 의한 연창(演唱)은 이미 맥이 끊어진지 오래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경기지방의 산타령은 불규칙 리듬이 많고 서도산타령은 비교적 규칙적이란 점, 서도는 템포가 빠르고 요성이 격렬한데 비해 경기는 비교적 느리고 매끈하다는 차이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설 내용이 비교적 건전하며 리듬형이나 선율선, 활달한 창법, 다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삼성동 소재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열렸던 최창남 경기명창의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건강하게 70을 넘기는 수명도 하늘의 축복일진대, 나이 80 넘어 개인의 소리발표회를 준비한다는 열정은 소리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이야기, 일본의 목각장인이 107세의 나이에도 30년 작업분량의 재료들을 준비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열정이 있다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사실과 열정이 사라지고 할 일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늙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최창남 명창은 타고난 목과 현란한 기교로 민요계의 거목이며 강유(剛柔)와 명암(明暗),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기교가 독보적이어서 그를 일러 소리의 마술사라고도 부른다는 이야기,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 중, 그 앞에 소리를 다듬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나 최창남이 빠지면 지방공연의 흥행이나 계약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도 최창남 명창의 소리는 증명이 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2014년, 5월 30(금)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오후 늦은 8시에 열린 산타령 공연과 또 하나는 6월 8(일) 오후 3시에 성동구 소재 소월 아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창작국악극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이와 같은 국악극이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자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극본의 소재가 건전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점과, 둘째로는 어떤 어법의 성악도 그 뿌리는 전통음악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음악성을 살린 창작이나 창의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칫 뿌리 없는 어법 등을 차용해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예를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세 번째 조건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소리 공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라는 점, 그리고 전문 연출가의 역할이 절대적이란 점을 강조하였다. 음악극은 여러 장르의 협업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란 점에서 최고의 기술력은 배우들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갖추고, 이러한 기술들을 조화롭게 디자인 하는 역할이 전문 연출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경서도 소리극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나 경기도, 또는 인천시에 경서도 소리를 기본창으로 하는 소리극단 하나는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재를 바란다는 점, 대형화보다는 소극장무대나 단막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민간들의 음악극이나 연희물 등이 국가의 지원 없이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 올 수 밖에 없었기에 한 때, 인기 절정에 있었다고 해도 새로운 연주목록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일반 대중들은 다른 오락물을 찾아가게 마련이라는 이야기, 그것이 전통물이든 현대물이든 고민해야 할 숙제라는 이야기와 함께 지난해 말, 창작국악극 시상식 제도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 차제에 창작국악극 활성화를 위해서 어떠한 문제점들이 보완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 등을 짚어 보았다. 국악극의 활성화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이나 단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악 전문가, 정책입안자, 집행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 나가야 될 숙제라는 이야기와 함께, 첫째는 극본의 소재가 건전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점과, 둘째로는 어떤 어법의 성악도 그 뿌리는 전통음악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물론 개인의 음악성을 살린 창작이나 창의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에 바탕하지 아니하고 외래풍을 모방하는 뿌리 없는 어법 등을 빌려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다면 이는 모래위에 화려한 건물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
[그림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국립으로 창극단이 생겨 보다 활발하게 국악극 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성국극의 기세도 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는데, 많은 까닭 가운데 하나가 재미있으면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극본의 부재나 스타의 부재, 때를 같이 해서 영화나 TV 등 다른 대중 오락물의 증가가 주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덧붙여 국립의 국극단이 새로 창단되어 여성국극의 스타 및 중심인물들이 국립단체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여성국극단의 작품제작이나 규모가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1980년대 말부터는 마당극 형태의 공연물이 꾸준히 제작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 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창작 경서도 소리극이나 정가극, 재담극 들도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사명감을 지닌 명창이나 단체들이 단발성 협찬을 받기도 하지만, 자비를 들여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이춘희를 비롯한 경서도 명창들은 이 분야의 초기 활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대동가극단 공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가 창립되면서 각색이나 연출의 개념을 도입한 창극이 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1940년대 말 여성국극단들이 조직되면서 1950년대는 가히 국극의 시대라 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이야기, 1948년에 결성된 여성국악동호회의 주요 인물들로는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유앵, 신숙, 임춘앵, 등 그 외에도 많은 판소리 여류명창들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일본은 1913년부터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있었고 중국도 1927년부터 여성들만의 극단이 존재해 오고 있다는 점, 대표적인 창극단체로는 햇님국극단, 여성국악동지사 낭자국악단 여성국극협회 우리국악단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이들은 흥행이나 인기에 따라 대표자의 명의나 소속 단원들의 변동이 잦아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 임춘앵의 대표작품이었던 목동과 공주를 국도극장에 올렸을 당시 을지로 4가 일대가 교통이 마비되어 기마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50년대 여성국극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회고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금 속풀이는 소리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지난주에는 창극이 1900년대 전후에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광무(光武)초부터 서울 동대문 안에 협률사(協律社)가 자리를 잡고 일반 흥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후 그 자리에 광무대(光武臺)가 세워지면서 이를 속칭 광무대 협률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전의 1인 창극조였던 판소리는 분창의 형식, 즉 대화창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협률사에서 판소리와 경서도 명창 170여명이 1902년 가을로 예정되었던 고종의 칭경식을 준비하였으나 전염병이 돌고, 영친왕(英親王)의 천연두, 농황사정이 여의치 않은 점,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 악화 등으로 다음해에 예식만 간단하게 치루었다는 이야기, 협률사는 원각사로 바뀌었고 동대문 곁에 광무대, 사동에 연흥사(演興社), 낙원동에 장안사(長安社), 종로에 단성사(團成社)등 본격적인 대중 공연장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판소리를 변형시킨 창극의 시도와 함께, 낮에는 뚝섬이나 왕십리의 선소리패나 농악패들을 불러 볼거리를 제공하였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1934년,《조선성악연구회》가 창립되면서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