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작업실로 가셔서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하시지요. 이 매실차는 제가 집 텃밭에 심어 가꾼 매실로 담근 차입니다.” 은은한 노란빛 매실차를 손수 찻잔에 따라 준 이는 서양화가 김명식 화백이다. 작업실 큰 유리창이 액자처럼 보이는 5월의 정원이 아름답다. 김명식 화백은 용인시 처인구에 작업실과 아담한 미술관인 ‘김명식 아트센터’ (관장 김희종)를 마련하여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칠순의 현역 작가다. 사흘 전 (4일, 토요일) 낮 1시, ‘김명식 아트센터’를 함께 찾은 이는 미국 LA에서 잠시 고국을 방문 중인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을 지낸 배국희 (81) 씨였다. “이 선생님, 사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함께 가 주실 수 있는지요? 숙소에서 좀 먼 곳입니다만...” 사실 서울에서 용인은 그렇게 먼 곳이 아닌데도 이날은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주말이라 길이 막혀 아침 10시, 인사동 호텔을 출발한 지 무려 3시간 이상을 승용차로 달려 ‘김명식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김명식 화백의 그림 가운데 저는 ‘집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김 화백의 ‘집 시리즈’들은 무어라 할까? 그림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평창이란 땅이름의 옛말은 우오(于烏)입니다. 우오(于烏)란 오!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평창의 문화예술을 알리기 위한 예술단체 이름을 ‘우오아트’라고 지은 것이지요. 회원들은 판소리 등 국악을 비롯하여 대중가요 가수, 오카리나, 섹소폰 연주자들로 모두 14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니다. 이번 공연은 ‘2024년 우오아트 정기 봄 연주회’입니다. 멀리서 이번 공연을 보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는 어제(2일) 낮 2시,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KTX 평창역에서 가까운 <카페921 및 류경갤러리: 대표 류경희>에서 열린 ‘2024년 우오아트 정기 봄 연주회’를 주최한 ‘우오아트’ 엄기종 대표의 말이다. 서울은 이미 져 버린 화사한 철쭉과 연초록빛의 고운 나뭇잎이 오월의 햇살에 반짝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카페921>에 도착한 시각은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이었다. 냉커피 한 잔을 시켜 노천 카페 테이블에서 마시는 맛은 신선한 평창의 공기와 더불어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향긋함이 느껴졌고 발아래 펼쳐진 경치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2시부터 시작되는 공연 무대에서는 한창 리허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오아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사이토 총독 저격 사건 100돌을 맞아 압록강 상류에서 국경을 시찰하던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는 등 지속해서 항일무장투쟁을 펼친 채찬(1962년 독립장), 김창균(1995년 독립장), 장창헌(1995년 애국장), 이춘화(1995년 애국장) 선생을 ‘2024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항일무장투쟁은 한말 의병항쟁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의병들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만주 각지와 연해주 등지로 피신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다는 목표 아래 서북간도를 중심으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부대(1924년 설립)인 참의부 독립군들은 사이토 총독 저격뿐만 아니라 남만주 일대의 항일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다. 수많은 무장투쟁을 통해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으며, 국경을 넘어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등 치열한 독립투쟁을 수행하였다. 충청북도 충주 출생(연도 모름)인 채찬 선생은 일찍부터 의병투쟁을 하다 만주로 이동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하였다. 이후 서로군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정부 관계와 무관하게 한국과 일본 양 국민의 감정적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신간이 있다. 출판사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이 각종 역사서와 자료를 종합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일제가 저지른 죄악 100가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 책,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를 출간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 박찬아는 일제강점기 연통제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고 돌아가신 박원혁 독립지사의 손자다. 그는 현재 한일 간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과거를 가르치지 않는 일본의 현재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사과해야 하는 자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자 모두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상호 사과와 용서를 해야만 진정한 화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힌다. 이 책은 독립유공자 딸인 할머니가 우연히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일본의 죄악상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내용으로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또한 중요한 대목마다 작가의 한마디를 덧붙여 작가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선을 독자에게 전하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예전(1919~1923)에 이 강이 범람하곤 하여 치수 작업을 할 때 한국인 특히 제주도 출신이 많이 건너왔지요. 코리아타운과 츠루하시 일대에 정착한 분들 가운데 제주도 출신이 많은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이 일대는 백제강(현재 이름은 히라노강)이 흐르던 곳으로 이곳에 놓았던 다리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였다고 일본 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 닌토쿠천황(仁德天皇)조에 나와 있으며 지금은 폐교(廢橋, 1940년) 상태로 ‘츠루노하시(鶴橋)터’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는 지난 4월 13일, 오사카 코리아타운 일대를 둘러보고 그 들머리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왕인박사노래비를 찾아서’ 기사를 쓴 뒤, 다음 날인 14일에 찾은 ‘츠루노하시(鶴橋)터’를 안내한 재일 작가 김길호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다. 일본의 정사(正史)인 《일본서기》의 완성 시기가 서기 720년인데 당시 오사카 츠루하시 일대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 백제강(百濟江, 구다라가와)이었다는 것은 이 일대에 고대 백제인들이 많이 정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를 입증하듯, “고대에 이 주변은 조선반도에서 건너온 선진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백제군 소속이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작업 중 다이너마이트 불발탄이 폭발하여 눈앞에서 죽은 사람만도 10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이 갈가리 찢겨 나갔고, 바윗돌이 가슴을 덮쳐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사체의 행방은 잘 모른다. 강제징용자들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으로 죽었다. 터널 공사 중 나온 돌덩어리를 나르는 짐차에서 떨어지거나 터널 받침목을 제대로 설치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 나가는 것을 수백 번 이상 목격했다. - 나가노 히라오카댐(長野平岡) 강제연행노동자 김창희 증언, 경북 월성 출신, 160쪽 - “내가 일본에 연행된 것은 1944년 2월의 일로, 당시 누나는 시집을 갔고, 큰형은 사망했고, 셋째 형은 만주로 갔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둘째 형과 내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내 나이 23살 때다. 어느 날 잔디를 깎고 돌아왔는데 구장이 찾아와 하는 말이 ‘이 집에는 일하는 사람이 두 명 있으니까 한 명은 2년 동안 일본에 가서 일하고 와야 한다.’라며 통달(通達, 소집통지서)을 들이댔다. 당시 이러한 통지서를 거부할 수는 없었으며 도망을 쳐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침 오늘(4월 12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 1면에 《정본 한국어강좌(定本 韓玉語講座)》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표지도 더 산뜻해졌고 특히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의 해설 부분이 들어 있어 더욱 뜻깊습니다.” 이는 지난 4월 12일(금) 낮 2시, 효고현 다카라츠카시(兵庫縣 宝塚市)에 살고 있는 김예곤(金禮坤, 91) 선생을 찾아갔을 때 선생께서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이다. 아파트 거실 너머는 탁 트인 시가지와 타카라즈카 가극단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가지 너머에는 롯코산(六甲山)과 가부토야마(甲山)가 병풍처럼 아늑하게 펼쳐진 봄날 정경이 물씬 느껴지는 곳에서 김예곤 선생 부부는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 탁자 위에 앉자, 김예곤 선생은 아침 신문이라며 아사히신문 1면 하단에 소개된 《정본 한국어강좌》 책 부분을 보여주었다. 아사히신문은 신문 1면에 책을 소개하는 신문으로 유명한데 그 소개 한가운데 《정본 한국어강좌》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1960년대 한국어 교육이 지금,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문법 입문, 불멸의 금자탑,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팝페라 가수 구미꼬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딘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느낀다. 특히 세월호 10주기 추모곡으로 부른 <이별은 차마 못했네>를 듣고 있노라면 그 슬픔은 빗물이 되어 가슴 속을 파고든다. 세월호에 꿈을 싣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꽃다운 젊은이들의 크나큰 비보를 듣고 온 국민이 통곡으로 지새우던 10년 전, 2014년 4월 16일 그날! 그날을 기억하며 팝페라가수 구미꼬김이 4월 16일 정오, 세월호 10주기 추모곡으로 <이별은 차마 못했네>라는 솔로 음원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 웃다가도 잊다가도 홀로 고요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 이별 없는 내 사랑 / 안녕 없는 내 사랑 “ - 박노해 <이별은 차마 못했네> 가운데- 이번에 음반으로 만든 <이별은 차마 못했네>는 박노해 시인의 '이별은 차마 못했네'라는 시를 주세페김이 작곡한 노래다. 노래를 부른 구미꼬김과 작곡을 한 주세페김은 부부 팝페라가수로 이태리에서 유학한 정상급 가수이자 작곡가다. K팝페라그룹 듀오
[우리문화신문=오사카 이윤옥 기자] “이 지역은 이카이노(猪飼野)라고 불리어 고대로부터 일본과 조선반도의 사람들이 교류해 왔습니다. 약 1600년 전 미유키모리신사(御幸森神社)의 제신(祭神)인 닌토쿠왕(仁德天皇)의 즉위를 축하하여 백제(百濟)에서 도래한 왕인박사(王仁博士)가 ‘나니와즈노우타(오사카의 노래)’란 와카(和歌: 일본 시)를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일본과 조선의 선린·우호의 사절단인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12회(오사카에는 11회) 왔습니다. 이 통신사의 방문을 축하하여 쓰시마번의 통역관인 운메이(雲明)가 고대 왕인박사가 쓴 ‘나니와즈(오사카)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매화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지은 시를 한글로 써서 조선통신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 자료는 1994년 조선통신사 연구가 신기수(辛基秀)에 의해 효고현 다츠시의 구가(舊家) 야세가(八瀬家)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조선과의 우호·공생시대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이 가비(歌碑)를 오사카 이카이노 땅에 건립합니다.” -2009년 (평성 21년) 10월 길일, 왕인박사 ‘나니와즈(오사카)의 노래’, 일본어·한글 노래비 건립위원회- 이는 오사카 츠루하시 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가 이회영ㆍ이은숙 부부의 삶과 한국광복군의 이야기 등을 주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만나는 이야기 공연이 비대면과 대면으로 진행된다.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올해 임시정부수립 기념일과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임시정부의 역사를 일반 국민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 공연(대중강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난다’를 연다. 먼저, 제105주년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맞아 오는 14일(일) 낮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 첫 번째 이야기 공연 ‘역사의 조각을 줍는 사람들’은 독립운동가 이회영ㆍ이은숙 부부의 삶을 그린 ‘통인동 128번지’ 공연을 통해 독립을 향한 두 부부의 헌신적인 삶과 그 이면의 생활을 관객들과 함께 나눈다. 또한, ‘독립’이라는 글자가 담겨 있는 각종 수집품에 담긴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는 시간도 갖는다. * 낭독극 통인동 128 :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의 부인 이은숙 여사가 전 재산을 처분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로서 생활했던 고단한 삶의 여정을 낭독음악극의 형태로 만든 공연 * 이회영(1962년 독립장) : 중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