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선생님은 의연히 슬퍼하지 않고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영력 264년(1910) 경술 8월 28일이다. 전날 밤에 지진이 일어나고 큰 안개가 가로질러 걸쳐 있었다. 곡기를 끊은 지 23일 만에 임종하셨다. 몸은 수척하고 파리해졌으며 탈구된 상태였으며 입은 건조하고 혀는 메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오히려 정신은 보존되어 있어 아직도 이불과 옷깃을 손으로 만지고 계셨다. 간혹 집안사람들을 문인으로 착각하셔서 ‘학문의 정진은 절도일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하게 되자 단식 23일 만에 순국한 의당 박세화(朴世和, 1834~1910) 선생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9월 선생은 문경에서 왜군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송치되어 구속되었다. 왜인들이 갑오년(1894) 이후로 국정을 탈취하고 때로 위압을, 때로 복덕으로 베풀어 전행하다가 이때 와서 주(州)와 군(郡)을 합치고 성인을 모신 문묘를 헐고 합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선생께서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말씀하시길 ‘나라를 합방하고 성인을 모신 문묘를 훼손하는 것은 나라와 도가 함께 망하는 것이다. 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대를 이어 자결로 항일정신을 일깨운 유도발ㆍ유신영 선생 부자를 2020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유도발(1832.6.~1910.10. 음력)ㆍ유신영(1853.6.~1919.3.) 선생 부자는 풍산이 본관인 서애 유성룡의 10세, 11세 후손이다. 두 부자는 충효를 가업으로 삼아 경술국치와 광무황제 고종의 서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아버지는 나라에 대해 의리를 실천했고 아들은 나라와 아버지에 대해 충효를 실천했다. 두 분의 자결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선 항일투쟁의 하나로, 그 죽음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이들의 항일정신을 일깨워 독립운동에 나서게 만드는 울림이 됐다. 먼저, 부친 유도발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이 체결되자, 일제의 지배에 놓인 세상을 차마 살아갈 수 없다며 1910년 11월 11일 단식에 돌입했다. “종사가 망해 장차 남의 나라의 백성이 되겠으니 남은 해가 얼마 없는데 구차하게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욕된 일이 아닌가? 이후로는 다시 음식을 나에게 권하지 말라”는 유서와 함께 명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제100돌 추모식’이 오는 30일(금) 아침 10시, 국립서울현충원(현충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 이하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것으로, 당초 선생의 순국일인 4월 7일에서 코로나19로 추모식을 연기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기념식은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최재형 선생의 4대손인 최 일리야씨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추모사, 장학증서 수여, 최재형 노래 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생계를 돕고 학교를 세웠으며, 러시아 정부가 지방정부 시장으로 추천할 만큼 한인사회의 대표적 지도자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선생은 한인 동포들에게 한량없이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로 불렸다. 이러한 까닭으로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선생기념관 1층 입구에는 ‘페치카’가 놓여 있다. 이날 추모식에 이어 ‘최재형 상(賞)’ 시상식이 이어진다. 이번 시상은 올해 첫 번째로 진행하는 것으로, 지난해 3·1문화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지금 단풍의 계절이다. 특히 이맘때면 빛깔 고운 천년고찰의 단풍 구경을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유명세를 타는 일본의 절들은 몸살을 앓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여의치가 않다. 그런 절 가운데 한 곳을 꼽으라면 시가현의 백제사(百濟寺, 햐쿠사이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당산(堂山)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 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떠서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등이 참석하였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이 절에 주석하였다.” 이는 백제사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이 절의 유래 가운데 일부다. 백제사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파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縣)에 있으며, 교토와 오사카에 면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이곳은 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하여 55건의 국보 그리고 806건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로 국보 보유로 치면 교토부, 도쿄도, 나라현, 오사카부 다음으로 많다. 에도시대에는 강남, 강서, 강동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일제하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린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제100돌 기념식’이 오는 28일(수) 아침 10시, 부산상공회의소(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경재) 주관으로 열리며, 코로나19로 참석인원이 축소된 가운데 박삼득 보훈처장을 비롯해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김원웅 광복회장 그리고 출신학교 재학생과 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 기념식은 당초 의거일(9.14)에서 코로나19로 행사를 연기해 진행하는 것으로, 올해 6월에 설립된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의거 100돌을 맞아 부산시민과 학생이 참여하는 ‘기념음악회’, ‘특별기획전’도 열어 의사의 뜻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박재혁 의사 주요 공적(공훈록 자료) □ 부산(釜山) 사람으로 부산진보통학교(釜山鎭普通學校)와 부산공립상업학교(釜山公立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부산와사전기회사 전차차장으로 있었고 왜관(倭館)에서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1917년 6월 주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안중근 의사 의거 제111주년 기념식」이 오는 26일(월) 아침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강당)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진행되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안 의사의 의거를 기억하기 위해 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외부인사 초청 없이 숭모회 임원과 안 의사 유족 등이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진행되며,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해 온라인 중계로 숭모회 누리집(www.patriot.or.kr)을 통해 비대면으로 누구나 기념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기념식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사,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안중근 의사 주요 공적 □ 안중근 의사(1879.9.2.∼1910.3.26.)는 황해도 신천 사람으로, 1905년 을사늑약 뒤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였으며,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의 ‘야후제팬’에는 <모두의 의견>이라는 꼭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날마다 다양한 주제로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방법은 온라인 투표 형식이며 실시간 투표자가 %로 표시된다. 이곳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일본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기도 하고 더러는 생소하기도 하다. 이번 일본 이야기에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 설문을 소개한다. 1) 스가 수상은 코로나 대책 본부에서 10월 이후, 해외로부터의 입국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습니다. 관광객 이외에 대해서는 검사를 한 뒤 가능한 한 왕래를 재개해 나갈 방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정부의 이러한 ‘입국제한 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77,003명 투표 중, 반대 84.2%, 찬성 13.9%, 기타 1.9% 2) 전국 각지에서 곰이 출몰하여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곰의 먹이가 되는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의 흉년 외에도 '철부지 새끼곰이 마을에 나타나 뛰어다니는 문제'로 어미곰이 출몰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야생곰과 만난 적이 있습니까? → 8,940명 투표 중, ‘만난 적이 있다’ 73.7%, ‘만난 적이 없다’ 26.3%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가을은 그렇게 물들어 가는 것이다. 코로나로 지친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물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도 올해도 또 돌아오는 해도... 그렇게 가을은 물들어 왔으며, 물들어 갈 뿐이다. 조용히,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나무가 있는 숲을 걷고 나무가 있는 공원을 걷고 푸른 하늘을 바라다 보노라면 가을이 왜 그렇게 제 빛을 뿜어 내는지 알게 되리라. - 일산 호수공원에서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내가 사는 경기도에 ‘경기도 콘텐츠진흥원’ 이란 곳이 있고 그곳에서 ‘입문반 3기, 1인 크리에이터 아카데미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가 어느새 ‘동영상’ 시대로 돌입하였고 그 매개체가 ‘유트브’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업상 거의 ‘글쓰는 일’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유트브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적인 글’ 보다도 ‘역동적인 동영상’ 시대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입문반 3기, 1인 크리에이터 아카데미 교육’(이하 ‘아카데미’로 함)’을 받아보기로 하고 신청을 했다. 아카데미 교육은 크게 입문반, 실전 역량강화, 단기 역량강화 코스가 있는데 내가 수강한 아카데미는 ‘입문반’ 이었다. 수강생 조건은 경기도 도민이어야하고, 수강료가 무료라는 점(보증금 10만원을 내고 70프로 이상 수강하면 환급 조건), 출석을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강한다는 점이 맘에 들어 얼른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합격자’ 명단에 들어야 수강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이 있었으나 다행히 ‘합격’ 하여 기뻤다. ‘음, 드디어 1인 크리에이터 길이 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마츠리(축제)의 나라 일본, 그 가운데서도 교토의 3대 마츠리는 백미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시대마츠리(時代祭)를 가리켜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지금 천년 고도 교토는 10월 22일 여는하는 시대마츠리 준비로 부산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코로나19로 올해 3대 마츠리는 모두 중지되고 말았다. 1년 내내 마츠리 준비를 하고, 마츠리로 전 세계 사람을 불러모으는 교토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수도는 도쿄(東京)이지만 고대 일본의 수도는 나라(奈良)였다. 그러다가 서기 794년 환무왕(桓武天皇)은 수도를 교토(京都)로 옮겼다. 올해로 교토 천도 1226년째다. 명치정부는 1895년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겼는데 그 기념으로 해마다 시대마츠리(時代祭)를 열었다. 시대마츠리의 특징은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행진이다. 시대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부터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까지의 복장을 갖춰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데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