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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한국문화 권위자 김달수 100주년전

[맛있는 일본이야기 58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저는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전쟁 중에 강제로 신사참배를 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군국주의의 맹호를 떨치게 한 곳이 신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후(戰後, 1945년)에 알고 보니 일본 각지에 조선에 없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3국 이름이 들어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 백제신사(百濟神社), 신라신사(新羅神社)가 많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은 고대 조선의 신라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이는 재일조선인 작가 김달수 씨의 《고대조선과 일본문화》(일본 강담사, 1987) 26쪽에 나오는 말이다. 김달수 씨를 작가라고 부르기보다는 역사학자라고 불러야 좋을 만큼 그는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를 평생 찾아낸 사람으로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알려진 작가다.

 

 

지금 일본의 가나가와현에 있는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는 12월 12일부터 김달수(1920~1997)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달수 씨의 면모를 보면,

 

“김달수 씨는 조선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작품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계속 물었던 작가였습니다. 한일강제병합 때 조선 경남에서 태어나 열 살에 일본으로 건너온 김달수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도우며 문학에 뜻을 두고 전후(戰後) 《현해탄》, 《태백산맥》 등을 발표, 재일조선인 작가의 선봉에 섰습니다. 또한, 전후(戰後) 약 10년 동안 요코스카에서 살았기에 가나가와현(神奈川県)과 인연이 깊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생의 후반부에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 속의 조선문화'로 결실을 맺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는 김달수 씨의 자료를 2003년에 마련하여 <김달수문고>로 보존해 오고 있다. 2020년, 김달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인과 한국인의 상호 이해를 위한 그의 작품들을 <김달수문고>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김달수 씨의 작품을 접해오면서 “일본 속의 한국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40여 년 동안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해박한 한일 고대 관련 지식과 풍부한 역사인식에 대해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새해에는 코로나가 사라져서 그가 발로 뛰어 찾아낸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지를 다시 찾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