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 두물머리 포토존 ▲ 느티나무 두물머리라는 이름은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양수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모습은 자연의 운치를 더한다. 두물머리는 각종 영화, CF, 드라마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한겨울 두물머리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쓸쓸하다 못해 적막함을 느끼게 한다. ▲ 다리 ▲ 조형물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두물머리라는 이름은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양수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모습은 자연의 운치를 더한다. 두물머리는 각종 영화, CF, 드라마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한겨울 두물머리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쓸쓸하다 못해 적막함을 느끼게 한다.
▲ 청동좌불상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옹핑 360 이란 5.7km 길이의 케이블카(홍콩) 케이블가 탑승시간 25분 동안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란타우섬을 조망 할 수 있다. 케이블카 종착역에는 옹핑빌리지라는 테마마을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청동 좌불상은 높이 34m, 무게 220톤의 거대한 불상으로 유명하다.
▲ 옵바위 일출 1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 기자] 강원도 고성군 옵바위 일출 명소
▲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 기자]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景福宮峨嵋山-)은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된 굴뚝이다. 교태전은 왕비의 중궁전(中宮殿)으로 태조 3년(1394년)에 지어졌다. 그 후 명종 8년(1553년)에불타 1555년에 다시 지었으며,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고종 4년(1867년)에 재건되었다. 이후 고종 13년(1876년) 또 다시 불타고 고종 25년(1888년)에 복구되었다. 원래의 교태전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창덕궁으로 옮겨 현재의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이 되었고, 현재의 교태전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지만, 굴뚝은 고종 당시 경복궁을 재건할 때의 것이다. 아미산은 교태전 일곽 뒤뜰에 경회루의 연못을 판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산(假山)이다. 아미산에는 두벌대의 장대석 석축이 네 층으로 쌓였고, 그 위에 괴상하게 생긴 돌을 담은 석분(石盆)과 물을 담는 돌그릇(石池) 등 석조물이 배치되었는데, 수석 1기는 1단에, 석분석지는 1단2단3단에 있고, 굴뚝은 3단에 있다. 굴뚝 3기는 3단에 나란히 있고, 나머지 한 기는 동쪽 조금 뒤편에 있으며, 주위에는 화초들이 심어져 후원이 만
▲ 창덕궁 낙선재 앞 감나무를 바라보며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 기자] 이름: 달다는 뜻으로 한자어 감(甘)에서 우리말이 되었다. 한자명으로 시(柿) 또는 시수(柿樹)라고도 한다. 잘 익은 감은 금의옥액(金衣玉液)이라 하는데 황금빛 껍질 안에 신선이 마시는 달콤한 물이 들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곶감의 곶(串)은 열매를 꼬지로 묶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가키라고 한다. 학명은 디오수피로스 가키(Diospyros kaki)이다. 속명 디오수피로스는 신을 뜻하는 디오스와 곡물을 뜻하는 피로스의 합성어이며 과실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종명 가키는 감이라는 일본어를 스웨덴의 식물학자 툰베르그(Thunberg, 1743-1828)가 붙인 이름이다. 꽃말은 좋은 곳으로 보내다오 또는 경이(驚異)이다. 감나무 이야기: 중국 당나라의 학자 단성식(段成式,?-863)이 저술한 유양잡조(酉陽雜俎) 책에 의하면 감나무는 일곱 가지 장점(七絶)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 감나무는 수를 하여 오래 살고, 둘째 좋은 그늘을 만들며,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굼벵이 포함)가 없으며,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먹
▲ 향원정의 여름 ▲ 향원정의 가을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화보]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내의 가운데 섬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향원지의 향원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1017~1073)이 지은 애련설에서 따온 말로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와 녹산등 원림공간이 된다. 향원정은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경복궁 후원의 아름다운 풍광속에 안겨있는 상징적 대표건물이다. 육각형 초석, 육각형 평면 육각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섬세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모든 구성요소들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 비례감이 뛰어난 정자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다. 자료출처:문화재청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향원정의 사계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 광화문 ▲ 광화문 ▲ 흥례문 ▲ 흥례문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습니다. 광화문은 석축기단(石築基壇)에 3개의 홍예문(虹霓門)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우진각 지붕으로 된 목조문루를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한일병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였습니다.1968년에 전통적인 광화문의 모습을 상실한 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시켰습니다. 그나마 도로확장을 위해 위치도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2006년 12월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전통적인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으며 2010년 8월에 완공되었습니다. 1)경복궁 이름의 뜻과 유례 - 경복궁은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1395년
▲ 지광국사 현모탑 [그린경제/얼레빗=조판형기자] ㅇ 지광국사 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 현묘탑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자리해 있다. 화강암 재질에 높이가 6.1m인 현묘탑은 본래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의 법천사터 뒷편 산 기슭에 있었다고 한다. 1912년 일본인에 의해 약탈되어 일본 오사카에까지 반출되었으며, 이후 불법이 탄로되어 1915년에 되돌아 왔으나 원위치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자리하게 되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앞 부분에 가득 조각한 각양각색의 특이한 새김이 어느 석조부도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우수하고 기발하여 한국의 부도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탑신석 상단부의 소로받침이나 좌우 두공등은 목조건축을고친 것이다.
▲ 측면 ▲ 측면 ▲ 위에서 바라본 모습 ▲ 위에서 바라본 모습 ▲ 상판 ▲ 상판 [그린경제/얼레빗 = 조판형 기자] 고막천석교 / 보물 제 1372호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629 옛 길의 길목, 전남함평군과 나주시의 경계에는 고막천이 있다. 고막천석교는 이 고막천을 가로 지르고 있는 돌다리이다. 곡식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드나들었고 한다. 길이 20m 높이 2.5m 로 우리나라 돌다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똑다리 혹은 시루떡을 엎어놓은 듯한 돌다리라 하여 떡다리라고도 한다.고려 원종14년(1273년)에 무안의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하룻밤에 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 고막천이 그 동안 수차례의 범람과 수해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있는 것을 보면 정교함과 다리축조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마법의 성 ▲ 독립문 ▲ 9층 국화탑 ▲ 국화나무 ▲ 한 뿌리 [그린경제/얼레빗 = 조판형 기자] 가을의 대표 축제인 2013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지난 10월 25일 부터 11월 10까지 함평엑스포공원 일원에서 대성황을 이루고 막을 내렸다. 행사 기간동안 1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볼거리 먹거리 이색체험활동등 늦가을을 만끽 할 수 있고 아름다운 국화향에 푹 빠져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 시간이 되었다. 함평군은 국향대전이 끝난 후에도 11월 말까지 개방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