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888년(고종 25년), 하동의 중터마을에 사는 ‘양기연’이라는 사람이 논을 담보로 건네고 돈을 빌리면서 한글로 각서를 작성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각서에 논 2마지기를 담보로 20냥을 빌리되 닷새 안에 갚을 것을 다짐하는 내용을 담았다. 거칠지만 힘 있는 글씨로 글을 쓰고 큼지막한 손도장을 찍은 각서에서 서민들의 소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된 뒤에도 대부분의 문서는 한자로 작성되었지만, 관청의 공식 문서가 아닌 개인과 개인이 주고받는 문서는 한글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 Writing a Written Agreement in Hangeul [The History of Hangeul through Illustrations 22] In 1888 (the 25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a man named Yang Gi-yeon from Jungteo Village in Hado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886년(고종 23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는 우리나라의 초청을 받아 육영공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고급 양반의 자식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하던 한국의 첫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는 영어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영어로 수업했다. 또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성에 감명받아 우리나라의 역사와 세종대왕의 업적을 스스로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3년 만인 1891년에 우리나라 신교육의 기초를 닦을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펴냈다. 《사민필지》는 161쪽으로 이루어졌으며, 한자가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처음의 완전한 한글 교과서다. -------------------------------------------------------------------------------------------------- Hulbert Publishes the First Hangeul-Only Textbook, Samminpilji [An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1] In 1886 (the 23rd year of King Gojong’s rei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790년(정조 14년)에 책을 읽어주는 전문 직업인인 ‘전기수’가 낫에 찔려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기수는 종로 거리 연초 가게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글 소설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던 가운데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풀 베던 낫으로 전기수를 내리찍어 죽게 했다. 사내는 전기수가 이야기를 너무 실감 나게 들려주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전기수를 악인으로 착각해서 죽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한글 소설이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실록》 1790(정조 14년) 8월 10일 참조 ---------------------------------------------------------------------------------------------------- A “Jeongi-su” is Killed by a Scythe While Reading a Hangeul Novel [The History of Hangeul Through Illustrations 20] In 1790 (the 14th year of King 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