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동대문에서 종로 방면, 도로 굴삭 공사로 밀립니다. 요즘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굴삭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굴삭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굴착(掘鑿), 굴착기(掘鑿機)라고 써야 합니다. 掘鑿을 掘削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ㄷ사와 ㅅ사 등 재벌계열 회사들이 일본에서 굴착기를 수입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기계 몸체에 掘削機라고 쓴 것을 지우지도 않고 그대로 수입해 팔아먹었거든요. 그때야 우리 것은 어디 명함도 못 내밀고 미제, 일제가 품질을 보증하던 시절이었으니, 돈벌이에 바쁜 그들로서야 굳이 지워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삭이 착이 된 까닭은 일본에서는 뚫을 착(鑿) 자와 깎을 삭(削) 자의 발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자인 가나는 음절문자라서 동음이의어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한자를 섞어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한정 섞어 쓸 수도 없기에 상용한자라는 것을 3000자 가까이 정해 놓고 가능하면 그 범위 안에서 쓰도록 하고 있지요. 그런데 착(鑿) 자는 획수가 많고 어려워 상용한자에서 빠져 있기에 그 대신 뜻이 비슷하고 획이 간단하며 상용한자에 포함되어 있는 削 자를 쓴 겁니다.
[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백묵(白墨), 흑판(黑板)... 이런 말을 무심코들 쓰시지요? 오늘은 이걸 한번 따져봅시다. 분필은 하양뿐 아니라 빨강 파랑 등 여러 가지 색이 있습니다. 이를 빨간 백묵, 파란 백묵이라고 쓰자니 정말 어색합니다. 백묵이란 말에 이미 빛깔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청묵', '홍묵' 하는 것도 우습고... 또, 요즘 교실 앞뒤의 칠판은 거의 다 초록색이지요? 이 또한 '흑판'이라고 하자니 안 맞고, 그렇다고 녹판(綠板)이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 우리가 칠판, 분필하던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흑판, 백묵으로 바뀌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사실 이런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들입니다. 흑판, 백묵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분필(粉筆)과 칠판(漆板)이라고 썼습니다. 이는 각각 가루로 만든 붓, 칠을 한 판자라는 뜻이니, 애당초 어떤 색이든 상관없습니다.(漆은 원래 옻칠을 뜻하는 한자이지만, 굳이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로 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일본 사
[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막상 정확한 뜻을 따져 보자면 알쏭달쏭한 것이 제법 있습니다. 오늘 얘기하려는 나절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흔히 한나절, 반나절, 아침나절, 저녁나절 등으로 쓰지요. 이런 말들은 아예 한 단어가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띄어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나절은 도대체 얼마쯤 되는 시간일까요? 반나절은? 보통 나절은 낮 시간의 절반 정도를 뜻하니까 낮의 절반이 줄어든 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중 낮이 12시간이라면 한나절은 6시간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름에는 이보다 좀 길어지고 겨울에는 짧아지기 때문에 정확히 몇 시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 한나절 동안 갈 수 있을 정도 넓이의 밭이나 논을 나절갈이라 한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러나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던(日出而作 日入而息) 농경사회에서는 시간의 단위로 유용했을 겁니다. 나절갈이 같은 말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나절갈이란 한나절 동안 갈 수 있을 정도 넓이의 밭이나 논을 뜻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나절을 쓸 자
[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에 있어서는 일본말에서 자주 쓰는 ~について(또는 ~にとって、~において)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옛 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개화기 이후, 특히 일제 강점기 이후 쓴 글에서 많이 볼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각종 교과서에서도 거리낌 없이 쓰고 있습니다. 보통 강조하는 뜻이 있다고 여겨 별 생각 없이 이 말을 쓰는 것 같은데, 원래 우리말에는 없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문맥에 따라 얼마든지 빼거나 다른 표현으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 ~에 있어서는 일본말 ~について를 그대로 옮긴 말이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아래 보기들을 한번 보세요.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는 ~ 한국의 민주주의는(한국에서 ~ ) * 그에게 있어서 학교는 ~ 그에게 학교는(그로서 학교는 ~ ) * 그는 나에게 있어서도 ~ 그는 나에게도(그는 나로서도) ~ *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 사람을 사랑할 때 ~ 아울러 ~에 의(依)하여 같은 표현도 ~으로라든가 ~ 때문에, ~에(을) 따라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또, ~에 관(關)하여, ~에 대(對)하여 등 한문 표현에
[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김효곤 기자는 현재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평소 우리말 사랑을 실천하고 교육하는 교사로서 우리말에 대한 지식과 잘못된 말글살이에 대한 분명한 쓴소리를 독자들에게 전할 계획이다. 김효곤 기자를 통해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올바른 말글살이를 가꿔나갔으면 좋겠다.(편집자말)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한동안 서바이벌 동거동락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사람들이 원말인 동고동락(同苦同樂) 대신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고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동거(同居)가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떠오르면서 동거동락을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합니다. 인터넷 신문들은 대부분 그렇게 쓰고, 몇몇 중앙 일간지들조차 잘못 쓴 것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까짓것 좀 바꾸어 쓰면 어떠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두 글자 살짝 바꿈으로써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여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고생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동고동락의 본뜻을 생각하면, 고생은 쏙 빼놓고 즐거움만 누리자는 쾌락주의 세태가 말에서도 드러나는 듯싶어 씁쓸합니다. 이러다 보면 아이들은 어쩌면 동고동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