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 나 기 - 송낙현 쨍쨍쨍 땡볕의 여름 한낮 아내가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마실 나간 사이 후드득후드득 빗방울 떨어져 화다닥 뛰어나가 재빨리 걷어 왔는데 언제 나왔는지 해가 마알갛게 웃고 있다 재미나 죽겠다는 것처럼.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청순하고 깨끗한 사랑을 담은 황순원(黃順元)의 단편소설 <소나기>. 1953년 5월 《신문학(新文學)》지에 발표되었다. 시골 소년은 개울가에서 며칠째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보고 있다. 그러다 소녀는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지고 달아난다. 소년은 그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고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시작되는 황순원의 <소나기>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접해봤던 소설이다. 이렇게 순박한 소년과 소녀와의 만남, 소녀의 죽음, 조약돌과 분홍 스웨터로 은유 되는 소년과 소녀의 아름다운 사랑이 소묘된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는 소설 <소나기>를 기리는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이 조성됐다. 작품의 절정이자 전환점인 소나기는 두 사람을 끈끈하게 묶어주지만, 결국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꿉친구 분이 - 허홍구 기억 더듬어 찾은 이름 일곱여덟 살쯤에 옆집 살던 분이!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할매가 되었더라 옛 동무가 생각났다는 듯 날 보고 무심히 던지는 말 “옛날에는 니가 내 신랑했다 아이가” 이칸다. 찌르르한 전류가 흐르더라. *이칸다= 이렇게 말하더라(경상도 방언) 한 블로그에는 “57년 전 헤어진 뒤 반세기 만에 ‘깨복쟁이’와 통화했다.”라는 얘기가 보인다. 여기서 ‘깨복쟁이’란 “옷을 다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께 놀며 자란 허물없는 친구”를 뜻한다. ‘깨복쟁이’와 비슷한 말로는 불알친구ㆍ소꿉동무 등이 있고 한자성어로는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벗 곧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를 뜻하는 ‘죽마고우(竹馬故友)도 있다.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그리고 옷을 벗고도 부끄럽지도 않던 소꿉친구와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모래 집짓기 따위를 하며 놀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늘 빼먹지 않았던 것은 소꿉놀이였다. 현대에 오면서 소꿉놀이도 발전하여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소꿉놀이 꾸러미를 쉽게 살 수 있지만, 예전엔 그저 풀이나 흙이 먹거리를 대신했고, 그릇이나 솥은 조개껍데기가 대신했다. 그리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 지 매 - 김태영 아무리 어리버리 해도 애기 하나 낳아 봐라 그러면 아지매가 되는겨. 니들이 아무리 젊어도 아지매 만큼 빠르지 않더라 밥하고 청소하고 얘기보고 이거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아지매 되기 쉬운 것이 아녀 밤새 젖 물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입술이 부르터지고 비몽사몽 해도 애기 울음소리는 기똥차게 듣지 아지매가 되어야 그렇게 용감해지는 겨. ‘아줌마’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성인 여자를 친근하게 또는 낮추어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라고 풀이한다. 곧 '아줌마'라 하면 친근함도 있지만, 부정적인 정서가 더 강한데 실제 모습은 어떻든지 똥똥한 몸매에 파마머리를 하고 화려한 몸뻬를 입은 모습이 연상된다. 그것뿐이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뛰어가며 자리 잡기, 대형마트에 가면 시식 마당을 헤집고 다니는 억척스러움도 담겨 있다. 흔히 촌스럽다고 표현할 정도의 행동거지에 긍정적인 것이 있다면 강한 생활력이 포함되는 정도다. ‘아저씨’가 그저 나이가 들고 혼인한 남성이라는 평범한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인 것이다. 최근 미국 한인 아줌마들의 '아줌마 이엑스피(Ajumma EXP)'의 춤 공연이 화제다. 미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때 - 황경연 언제부터였을까? 꽃집의 저 화려한 장미보다 개천가에 멋대로 피어난 애기똥풀이 더 예쁘게 느껴지기 시작한 때는 양귀비과에 속하는 ‘애기똥풀’은 젖풀, 까치다리, 씨아똥이라고도 부른다. 애기똥풀은 들판이나 길가, 빈터 등 마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두해살이풀 들꽃으로,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더더구나 ‘애기똥풀’은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노란색의 유액 때문에 애기똥풀이라고 불렀단다. 이 애기똥풀은 독이 있는 식물로 벌레가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 즙을 짠 다음 물과 섞어서 뿌리면 진딧물을 없앨 수 있고 천연 농약으로 쓰기도 한다. 줄기를 자를 때 나오는 노란색의 유액에 살균효과가 있어서 피부병이나 무좀 치료로도 쓰고 천연염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애기똥풀은 독성이 강해 함부로 먹으면 안 되지만, 봄에 어린 순을 충분히 물에 우려낸 다음 나물로 먹을 수도 있다. 또 한약재로도 쓰여 관절염, 신경통, 삔 데, 몸이 피곤한 증세, 타박상, 습진, 종기 등에 효과가 있다.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 ‘애기똥풀’에서 “나 서른다섯 될 때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풀에게 - 방우달 힘든데 살아줘서 감사하다 꽃까지 피워줘서 고맙다 향기까지 나눠줘서 미안하다 씨앗까지 남겨줘서 위대하다 늘 곁에 있어 줘서 이쁘다 넓은 의미로는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 가운데 나무가 아닌 것은 모두 풀이라고 한다. 겨울에 땅 위에 나 있는 것은 완전히 말라버렸다가 해마다 새로운 싹이 터 자라는 식물이다. 풀은 곡식 생산과 토양 형성기능 덕분에 모든 식물 가운데 경제효용 값어치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개체수도 가장 많다. 풀은 소, 말, 양 등 초식동물 나아가 사람의 먹거리로 쓰이는 것은 물론, 야생동물의 둥지 또는 은신처도 되고,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집을 짓는 데도 쓰인다. 원예용으로 심어 가꾸는 종류도 있으며 잔디밭에도 쓰고, 흙이 깍이는 것을 막는 풀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풀은 이처럼 생각 밖으로 쓰임새가 많다. “앗! 몇 주 안 갔더니 고추밭이 온통 풀밭이 되어버렸네” 주말농장을 하는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사람들이 길러 먹거리로 먹는 풀 종류의 푸성귀들은 농사짓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몇 주를 안 갔으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림자 - 윤향기 친구도 애인도 모두 떠나고 오랜 직장까지 날 외면해도 병든 소나무를 버리지 않는 건 오직 하나 너 ‘그림자’의 일반적인 풀이는 “빛이 물체를 비출 때 빛을 가려 반대편에 나타나는 검은 형상”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안고 다닌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빛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요. 빛이 없다면 그림자는 없다. 그리고 그 빛이 강할 때 그림자도 선명해지고, 빛이 약하면 그림자가 보이는 듯 마는 듯하기도 하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지며, 개인의 의식 생활에서 구현이 적을수록, 그것은 검어지고 어두워진다."라고 말했다.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쓰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가 작곡하여 1919년 초연한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이 있다. 어둠 속에서 영혼 세계의 사자가 나타나 황후에게 3일 안에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황제가 돌이 된다고 알려주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이 오페라의 중심이다. 그녀는 인간 세계로 내려가 바라크의 아내에게 그림자를 팔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꼬드긴다. 바라크의 아내가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들 꽃 - 김윤자 들꽃의 눈과 귀를 보셨나요 말없이 다문 입술을 보셨나요 가자, 우리 아파트로 가자, 하여도 들녘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이 풀잎이 다칠까, 저 풀잎이 다칠까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바람과 비에 떨며 하늘하늘 웃고 서 있는 들꽃 작은 눈과 작은 귀로 온 세상을 밝히는 환희 들꽃 앞에 서면 어머니의 향기가 전율로 흐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 <풀꽃>에서 노래한다. 여기서 나태주 시인이 말한 “너”는 바로 들판에 수줍은 듯 키를 낮춰 피어있는 들꽃들을 말함이다. 특히 들꽃 가운데 ‘쥐꼬리망초’ 같은 꽃들은 크기가 겨우 2~3mm밖에 되지 않는 작은 꽃이어서 앙증맞고 귀여울뿐더러 아주 작은 꽃이기에 보는 이가 스스로 키를 낮추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그저 조용히 맞고 있는 들꽃들. 그들은 나만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아니 “모르는 척 / 못 본 척 / 스쳐 가는 바람처럼 지나가세요 / 나도 바람이 불어왔다 간 듯이 / 당신의 눈빛을 잊겠어요”라는 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유월, 장미가 피면 - 임보선 해마다 6월이 오면 장미는 말없이 피고 있다 그날의 비극 장미 가시여! 우리 조국의 산하를 온통 찔러댄다 피보다 더 진한 젊음들이 비바람에 못다 핀 채 져 버린 장미 꽃잎처럼 뚝뚝 떨어져 가슴에 가슴에 흥건히 젖어 누워 있다 6월을 향한 절절한 향수 장미뿐이랴 찢겨진 내 혈육 장미보다 피보다 더 붉은 이 슬픔 이 분노 죽어도 삭이지 못하는데 장미는 올해도 말없이 피고 있다. 해마다 6월이 오면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의 날이 온다. 그때의 비극으로 남북한의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많은 전쟁고아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또 공장과 같은 산업 시설과 학교, 주택, 도로, 다리 등이 파괴되어, 이후 몇 년 동안 남북한 모두 전쟁복구에 온 힘을 쏟아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430년 전에는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가 되고 수많은 백성이 끌려가고 죽어야만 했다. 그 비극이 또 지금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인구 약 4,400만 명 가운데 약 700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러시아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늘 - 황여정 입에 발린 말 가식을 빼고 나니 너무 깡말라 여유가 없구먼 그래도 올곧기는 제일이라 콕 찌르듯 한 땀이 지나간 자리 툭 터진 곳도 스윽 봉합이 되고, 조각조각 맞추니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도 되고 치마저고리 바지 적삼까지 또박또박 지어내는 일침의 미덕 뒤끝, 참 깔끔하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위는 조선 순조 때 유씨(兪氏) 부인이 지은 수필 <조침문(弔針文)>에 나오는 바늘 부분 일부다. 겨울에는 솜을 두둑이 대고 누비옷을 만들어 자식들이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고 겨우내 식구들이 덮을 이부자리를 손보느라 가을철이 되면 낮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밤까지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을 이제는 구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산행 (山行) - 박지원(朴趾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이랴 저랴 소몰이 소리 흰 구름 속에 들리고 危嶂鱗塍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하늘 찌른 푸른 봉우리엔 비늘 같은 밭골 즐비하네 牛女何須烏鵲渡(우녀하수오작도) 견우직녀 왜 구태여 까막까치 기다리나?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 가에 걸린 달이 배와 같은데 이 시는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산행(山行)>이라는 한시로 지은이가 산길을 가면서 아름다운 정경을 동화처럼 노래한 것이다. 연암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에 사신단의 한 사람으로 따라가 열하(熱河, 청나라 황제의 별궁)의 문인들, 연경(燕京, 북경의 옛 이름)의 명사들과 사귀며 그곳 문물제도를 보고 배운 것을 기록한 여행기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다. 정조 등극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장장 5달 동안 사신단은 애초 목적지인 청나라 서울 연경(북경)까지 2,300여 리를 한여름 무더위와 폭우 뒤 무섭게 흐르는 강물과 싸우며 가고 또 간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연경에 황제는 없다. 그래서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