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 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가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하는 가수가 있는 반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가수가 훨씬 더 많다. 거기에서도 정상의 꿀맛을 본 가수는 극소수이고, 그들 중에서도 인기와 존경을 함께 얻은 가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오늘은 그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레이 찰스를 추억한다.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범죄자가 자의식에 눈을 뜨고 점차 자아를 완성해나가는 인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한 현상이 유독 심한 우리나라는 전과자라면 무조건 백안시했다. 필자 역시 그러한 편향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다. 하지만 문턱이 닳도록 교도소를 드나들던 사람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순화하고 마침내는 훌륭한 인격체를 이루어낸 사례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레이 찰스, 자니 캐시, 멀 해거드로 필자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이다. 특히 레이는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이끌며 존경을 받았다. 2004년 6월 10일 세상을 뜬 레이 찰스는 1930년 조지아주 노동자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공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아 보였다. 어느 청년 기업가의 성공 신화가 입 바람을 타고 떠돌았으나 귀 밖에 머물렀다. 바다 건너에서 전해지는 올림픽 승전보에도 환호하지 못했다. 동물적 투쟁본능의 잔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우중(愚衆)으로만 보였다. 승자와 패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분구도 현실은 더욱 경멸스러웠다.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을 구하다 무력감을 감당치 못해 자학에 빠져 있었다. 유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친구 화실을 찾았다. 좁은 공간에서 풍기는 테레핀 냄새가 화실 밖까지 진동했다. 가난뱅이 딴따라와 환쟁이. 그래도 우린 신기하리만치 밥은 굶어도 술은 안 굶었다. 루핑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릴 들으며 소주잔에 허무를 타서 마셨다. 진아(眞我)라는 명제로 논쟁을 하다 아메바와 에테르를 들먹이기도 하고, 생명의 기원을 찾느라 우주도래설을 논하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선언했다. “나 오늘 유서 썼다. 술 마시다 죽던가, 참된 나를 찾아 떠나던가!” 그리고 다음날 나는 산사 행 버스에 몸을 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부부의 연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 연인들 가운데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한 채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쌍들도 많다. 사실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각기 다르게 형성된 성격을 맞추어 간다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기에 헤어짐도 어려웠지만, 요즘은 만나기가 쉬워진 탓인지 헤어짐도 쉬운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剛愎)해진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사고와 가치관이 자신과 다르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자신만이 옳다고 우기고 융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기와 독선이 남녀관계라고 다를 바 없어 상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는 결별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 차이로 헤어지는 경우에는 그래도 마음에 상처가 덜 남는다. 둘 사이의 마음이 잘 맞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라 할지라도, 부부의 연이 닿질 않아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연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런 경우엔 평생 쓰라림을 달래며 살아가야 한다. 전생에서 수백 번의 인연을 쌓아야 부부가 된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기억 하나요? 한 섬 들목의 바다 새라는 커피숍을. 창문엔 늘 두툼한 커튼 자락이 반쯤 내려져 있고, 희뿌연 전구들이 바닷바람에 한들한들 졸고 있는 그 커피숍을. 손님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든 그 적막한 커피숍을 지나면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산책길이 시작되지요. 오른쪽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져 있고 왼쪽 언덕에는 해송들이 빼곡한 길. 그 길을 걸으면 비릿한 미역냄새가 나기도 하고 풋풋한 들풀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냄새가. 인적 없는 숲길은 간밤에 내린 겨울비로 처녀림 같은 신비감마저 돌고, 마른 잎 몇이 나뭇가지 끝에서 풍경처럼 간당입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수없이 많은 대화를 눈빛으로 나누었고, 대화의 마지막은 늘 이런 약속이었지요.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 내자는. 한순간도 떨어지지 말자는. 같은 날 같은 배를 타고 영원의 항해를 떠나자는. 알고 있나요? 그때 그 길은 지금 나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을. 밀리는 파도도, 세찬 비바람도 씻어내지 못한 당신과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되짚으며 걷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떠나간 지 어느 덧 다섯 해가 흘렀네요.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현경과 영애 음반 표지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가지엔 눈꽃이 폈네요 참 예쁘네요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가지엔 눈꽃이 폈네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모두 다 즐거운 노래를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참 예쁘네요 가운데서 강원도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예전에는 더욱 그랬다. 동짓달이면 벌써 외부세계와 왕래가 단절되는 마을이 수두룩하였다. 강원도의 눈은 내렸다하면 한 길이 넘기가 일쑤였다. 이듬해 봄까지 꼼짝없이 마을 안에 갇혀 겨울을 나야 했다. 남정네들은 새끼를 꼬거나 돗자리 짜기, 소쿠리 만들기로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무리지어 나가는 사냥은 비길 데 없이 재미있는 놀이였다. 아낙네들은 엿을 고거나 콩나물을 기르며 명절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단조로운 산골마을에 어쩌다 이야기꾼이라도 찾아들면 마을사람들은 반색으로 모셨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이야기꾼의 존재는 오늘날로 치면 저널리스트요, 만능 엔터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Neil Sedaka의 음반 표지 나는, 나는 내 캘린더걸을 사랑 합니다. 매일 매일 일 년 내내 January 한 해를 멋지게 시작해요 February 당신은 나의 발렌타인 March 복도를 함께 행진해요 April 당신이 웃으면 부활절 토끼 May 아마 그대 부모님께 여쭈어 본다면 June 댄스 파티에 함께 가는 걸 허락할 거예요 왜 하필이면 한 해 가운데 가장 추운 이맘때를 첫 번째 달로 정했을까? 오랫동안 필자가 품어온 궁금증이다. 음력 정월이야 입춘이 들어 있으니 일리가 있는 것 같으나, 차라리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가 기지개를 켜는 3월이 합당하지 않을까? 고대 로마인들은 기껏 3월을 첫째 달로 사용해 오다가 2대 왕 누마는 무슨 생각으로 책력을 고쳐 3월 앞에 두 달을 배치했을까? 율리우스력도 그레고리우스력도 그렇게 사용하는 걸보니 그만한 과학적 이유가 있을 듯 한데, 필자가 과문한 탓으로 그저 천문학과 지중해적 기후와 관련이 있나보다 추측할 따름이다. 영어의 1월 January는 라틴어 Ianuarius에서 파생되었다. 로마의 수많은 신 가운데 야누스 신이 신들의 공회 장소에 가장 먼저 입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요즘은 지방 소도시에서도 배낭을 둘러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에서도 여행을 많이 오고 우리도 해외로 많이 떠난다. 이제는 시골 노인들도 중국이나 동남아 몇 개국 정도는 다녀오는 세상이 되었다. 나라밖이라고는 강화도밖엔 가본 적이 없다며 농반진반으로 너스레를 떨던 필자도 단 한번 해외여행을 경험하였다. 첫 여행지 치고는 제법 먼 나라인 스페인을 다녀왔는데, 다행히 패키지관광이 아니라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뒤질 수 있어 좋았다. 라틴문화와 아라비아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먹을거리가 문제였다. 음식이 얼마나 짠지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대도시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어 라면이나 김치 맛을 볼 수 있지만 길을 나서면 늘 파스타로 때워야했다. 스페인 전 지역의 음식이 대부분 짜지만 안달루시아 지방이 유독 짜다한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염전이 없어 소금이 귀하기 때문에 반가운 손님에게는 소금 한 줌을 더 쳐주는 풍습이 있었던 탓이다. 그 영향으로 음식이 그렇게 짜졌다는 민박집 주인의 설명을 떠올리며 외국에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조동진 겨울비 수록 음반 표지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 두고 내가 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위에 차거운 빗방울이 어제 오후부터 시작한 겨울비가 오늘 아침나절까지도 내린다. 그동안 바람이 매섭다며 꼭꼭 닫아 놓았던 베란다 창을 열어젖히고 액자 속 그림 감상하듯 비에 젖은 겨울을 내다본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추위가 온다 하고 이미 고개 너머 세상은 폭설이 내린다니 어쩌면 갑오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비 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가 또 내게서 떠나는구나!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결국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 역시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인생무상의 허탈감을 만끽하려고 밤늦도록 음악과 함께 주(酒)서방과 씨름한 결과가 고통스런 속 쓰림으로 돌아온다. 죽이라도 끓여 먹이려는 아내가 뒤주를 여니 습도 탓인지 유난히 쌀 향기가 진하게 퍼진다. 그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지난해 이맘때쯤 북한의 한 실세 정치인이 실각을 하였다하여 언론매체가 연일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혹시 전쟁이 나지는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625라는 골육상쟁의 참극을 겪은 우리로선 괜한 걱정이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저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들으며 625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되짚어 보기로 한다. 작사가 반야월(가수 진방남)은 동란이 일어날 즈음 미아리에 살았다. 전쟁 하루 전까지도 전쟁이 나리라곤 상상도 못한 채 콩쿠르 준비에 골몰하다가 새벽녘에 들려오는 포성소리를 듣고서야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자유당정부는 북괴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며 거짓으로 국민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적 치하에서의 생활이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붉은 완장 찬 사람들이 가가호호 뒤지고 다녔고 밤마다 인민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예술인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살기위해서 각 공산단체에 자발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이다.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흘겨보아 백안시(白眼視)하였고, 자기 마음에 들면 눈에서 푸른 광채가 나며 청안시(靑眼視)하였다 한다. 완적이야 그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아서 그렇다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나에게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데도 예쁜 사람이 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현상은 각자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 때문이라 한다. 에너지 파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반대일 경우엔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오늘은 그 에너지 파가 아주 잘 맞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러브 스토리를 추억해본다. ▲ 영화 러브스토리 OST 음반 표지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 비틀즈를 좋아했고 나를 사랑했죠.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눈 내리는 공원 한 모퉁이에 쓸쓸히 앉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는, 1970년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로 에릭시걸의 소설을 필름으로 담아낸 영상미학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