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백성욱이 떠나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자 김원주는 그를 잊기로 한다. 그렇게 결심이 선 이상 잊힐 때까지 기다릴 김원주가 아니었다. 신문사 기자인 국기열을 사귀기도 하고, 대처승 하윤실과 결혼을 하면서까지 백성욱을 잊으려 발버둥쳤으나 그의 빈자리만 커질 뿐이었다. 하윤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나자 그제서야 그녀는 백성욱의 참뜻을 이해하고 수덕사로 향한다. 하지만 불제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백성욱을 향한 불길이 쉬 꺼지질 않아 몸부림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 오다 세이조와의 관계라든가 아들 오다 마사오에 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었었다. 다만 꿈길로만 오는 아이 라는 시를 써서 모성애의 흔적을 남기긴 하였다. 김원주는 눈물범벅이 되어 달려드는 아들을 얼음장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송춘희 음반 표지 스님, 웬 남학생이 스님을 찾습니다. 일엽스님은 웬일인지 새벽부터 마음이 뒤숭숭하여 면벽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있었다. 행자승의 전언을 듣고 요사채를 나와 섬돌을 내려서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중학생이 하나 서 있었다. 일엽스님은 한 눈에 그 학생이 핏덩이 때 버린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아 차렸다. 귀족풍의 자태와 이목구비가 아버지 오다 세이조를 쏙 빼닮아 있었다. 그 학생은 목멘 소리로 어머니!하고 외치며 품으로 달려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 그리고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 품에 안겨보는 게 소원이었던 소년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품에 안기기는커녕 잠도 절 아래 여관에서 자야했다. 비구니계의 큰 별 일엽 김원주. 그녀는 1896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한 탓에 어렵사리 이화학당을 마쳤다. 졸업은 하였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친척의 중매로 스물세 살에 연희전문 교수인 이노익과 결혼하였다. 돈이 많은 이노익은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와 의족을 찬 불구의 처지인지라 아내의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영국문단에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문호(文豪)로 대접을 받는다. 전 12권으로 발간된 실낙원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따른 낙원에서의 추방, 그로 인한 끝없는 고통과 방랑, 사탄과의 사투 등을 서사시로 그리고 있다. ▲ 한대수 음반 표지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 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도 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그보다 한 세기쯤 먼저 살았던 토마스 모어는 혁명적 내용을 담은 역작 유토피아를 썼다.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없는, 부자도 빈자도 없는 나라. 재산은 공유제로 하고 식사도 공동으로 하며, 공통의복을 입고 공통된 주택에서 사는 평등한 나라를 그렸다. 홍길동이 건설했다는 율도국과 베낀 것처럼 닮아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전 내내 햇살이 봄볕 같았다. 강의가 빈틈을 이용하여 연못가 단풍나무 아래 자리 잡은 나는 장자끄 루소의 고백록을 꺼냈으나 못으로 떨어지는 단풍잎에 눈길이 갈 뿐 영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청룡상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불어온 삭풍에 은행잎이 날리어 하늘은 온통 병아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련해왔다. 대상도 없는 그 누군가가 그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수업을 빼먹기로 마음을 굳히고 상경대 강의실을 기웃거렸다. 한 동네 친구 수길이를 불러내어 막걸리 내기 당구나 치러 가자며 꼬드겼다. 우리는 땅거미가 드리우기도 전에 벌써 얼굴이 벌개져서 버스에 올랐는데 많이 본 듯한 여성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옆집 봉님이었다. 우리는 반갑다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봉님이 옆에 또 한 여성이 있었다. 봉님이가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보니 탁구선수 정현숙과 많이 닮은 아가씨였다. 포장마차에 들어간 우리는 밤늦게까지 소주잔을 부딪치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통금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술판을 근처 여인숙으로 옮겨 새벽까지 마셨다. 먼동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음반 표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당신 한 사랑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매일 아침 사랑이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 품에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건 아랑곳없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세상 끝에라도 가겠어요 검은머리를 금발로 바꾸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밤하늘의 달도 따러 가겠어요 보석을 훔쳐 오라해도 하겠어요 조국도 친구도 버리겠어요 그러다 어느 날 운명의 신이 당신을 데려가 우리를 갈라놓아도 당신 사랑만 있다면 상관없어요 나 또한 당신을 따라갈 테니까 -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가운데 보고 싶어요. 빨리 와줘요. 배는 너무 느려요. 비행기로 오세요. 이 전화통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인 사이의 마지막 대화였다. 1947년 에디뜨 피아프는 미국공연 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마르셀 세르당이라는 권투선수를 만났다. 마르셀은 미들급 세계챔피언으로 방어전을 위해 뉴욕에 왔다가 에디뜨를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첫눈에 반해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마르셀은 이미 아이 셋을 둔 기혼자였다. 그는 에디뜨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설득하려고 알제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황규현 애원 음반표지 목이 메어 불러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 사랑했던 내님은 철새 따라 가버렸네 허무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소리 그대는 아나요 무정한 내 사랑아 몸부림 쳐봐도 재회의 기약 없이 가버린 그님을 소리쳐 불러본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소식이나 전해다오 얼마 전 40년 만에 동두천을 다녀왔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모습을 잃은 건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그나마 변하지 않고 있는 개울과 역 광장을 토대로 옛 모습을 그려 보았다. 미군 제2사단이 있던 자리며 개천을 따라 늘어선 기지촌자리, 자취방이 있던 생연리. 본토음악 배우겠다고 전국의 기지촌을 떠돌던 시절, 동두천읍 보산리는 기지촌의 대명사이자 8군무대의 대명사였다. 오늘은 기지촌과 8군무대를 회상하며 얘기꽃을 피워본다. 일반적으로 기지촌에 있는 클럽과 8군무대를 같은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 둘 사이엔 엄연히 경계가 있다. 8군무대는 부대에 부속된 클럽을 지칭하는 용어로 장교들이 출입하는 officers 클럽, 하사관들을 위한 NCO 클럽, 사병들이 이용하는 EM클럽이 있었다. 8군무대에 서기 위해선 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도리스데이 Que sera sera 음반 표지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께 물었어요. 난 커서 뭐가 될까요? 예뻐질까요? 부자가 될까요? 어머니는 말했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 물었어요 뭘 하게 될까요? 그림을 그릴까요? 노래를 할까요? 선생님은 대답하셨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내가 자라서 사랑에 빠졌을 때 그이에게 물었어요 우리 앞에 무엇이 있을까? 날마다 무지개가 있을까? 그이는 말했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Que sera sera 가운데 들판은 연노랑 물감이 칠해지고 있었다. 백설보다도 하얀 뭉게구름들이 쪽빛바다를 떠다니고, 해바라기 꽃은 활짝 벌어져 가냘프게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논 위를 낮게 나는 참새 떼들은 아이들 함성에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그 어느 한 장면도 놓치기 싫어 눈(眼)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니는 메뚜기 안 잡고 뭐 하나? 급우의 채근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들 메뚜기가 가득한 병을 하나 씩 들고 있었다. 오전 수업을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 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 박양숙 어부의 노래 수록 음반 표지 새벽녘에 비가 그치기에 서둘러 묵호등대로 향했다. 걸어서 등대에 오르려면 논골담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사실 나는 언덕위에 우뚝 선 등대에서 동해바다의 광활함을 바라본다거나 동해시 전경을 감상하는 일보다 이 길을 더 사랑한다.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지에다 마추피추유적처럼 집터를 닦고, 한 뼘의 땅도 금싸라기보다 귀히 여기며 삶을 가꾸어온 뱃사람들의 내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길. 1940년대부터 오징어 따라 명태 따라 흘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이 언덕에다 집을 짓기 시작 한 게 논골 마을의 기원이라 한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야 어찌 글로 다 표현 될 수 있겠는가. 아랫마을에서 물을 지고 올라가면 이리저리 새고 흘러서 반통밖엔 남지 않았다한다. 리어카도 다닐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길이기에 명태를 지게에 지고 꼭대기에 있는 덕장으로 날랐다 한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존 레논(JohnLennon)의 Imagine 음반 표지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어렵지 않아요 우리 발밑에는 지옥이 없고 위에는 창공만 있겠죠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해 봐요 어렵지 않아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죽일 일도 죽일 필요도 없어요 종교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겠죠 나를 몽상가라할지 몰라도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도 우리와 함께해요 세계는 하나가 될테니까 재물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탐욕도 굶주림도 없겠죠 오직 인류애만 있고 세계는 하나가 될테니까 -JohnLennon Imagine 가운데 태국의 어느 난민 수용소.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조국 캄보디아를 탈출한 디스 프란과 그의 미국인 친구 시드니 쉔버그가 감격의 포옹을 한다. 그때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존 레논의 목소리가 영혼을 울리며 영화 킬링필드는 159분의 종장을 맞는다. 롤랑 조페 감독의 1985년 작 킬링필드는 전쟁과 이념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되는 집단학살과 인권 유린, 그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가치마저 짓밟히는 참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화제작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도회지의 거리를 걷다보면 행인들의 매무새가 참으로 다양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옷의 모양이나 빛깔도 그러하거니와 머리모양이나 색깔도 옷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각양각색이다. 다양, 다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은 어떤 형의 여성을 선망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소위 70, 80세대들은 갸름한 얼굴에 긴 머리가 찰랑대는 여성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남성들은 관능미보다 청순미를 선호했다. 일단 머리카락이 길면 겉보기에는 청순해 보인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특히 우리 민족에 있어서 단발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고종 32년인 1895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한 단발령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에게는 강제성이 없었기에 1922년에 가서야 모발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한남권번 기생이었던 강향란이 그 효시이다. 하지만 강향란의 단발은 굳은 의지의 표현일 뿐 미용 목적은 아니었다. 강향란의 단발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져 온다. ▲ 1926년 10월 8일 동아일보에 나온 강향란 사진 그녀는 1900년 대구에서 강석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열네 살에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수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