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된다면 가족들과 한번 가서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7월12일개봉) 남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중심에 둘 일이라고 봅니다. 바쁠수록.................. 아래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2년 7월 2일자 기고문입니다. -------------------------------------------------------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을 아십니까? [시사회]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영화 “백자의 사람” 이윤옥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浅川巧, 1891.1.15-1931.4.2)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농상공부산림과(朝鮮総督府農商工部山林課)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24살 때인 1914년 5월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 조선 사랑의 삶을 다룬 영화 “백자의 사람”이 오는 7월 12일 개봉된다. ▲ 영화 백자의 사람 전단(왼쪽), 아사카와다쿠미의 생전 모습 날개(주) 아사카와다쿠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곰의 습격 때문에 불안한 일본 6월 25일 오전 11시 50분쯤 야마가타현(山形縣)의 한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곰이 나타나 소동이 빚어졌다는 카호쿠신보(河北新報)의 기사가 눈에 띈다. 마침 운동장에는 1학년생 14명과 담임교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곰의 출현을 보고 놀라 인근 농협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곰의 크기는 120센티 정도인데 이 곰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현관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가 문이 잠겨있자 근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부수는 등 10여 분 난동을 부리다가 인근 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곰의 출몰 기사는 일본에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한다. 그만큼 곰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곰의 습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을 말하라면 아마도 1915년 12월 9일에서 14일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곰 습격 사건일 것이다. 이날 덩치 큰 불곰(ヒグマ, 히구마)이 민가를 덮쳐 당시 개척민으로 홋카이도에 갔던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어 일본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을 소재로 요시무라아키라(1927-2006) 씨는 소설 《비람》을 써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아마도 홋카이도의 곰 습
일본인은 왜 한국 김을 좋아하나? 일본사람도 김을 먹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 구워 먹진 않는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햇김에 갓 짠 참기름(예전에는 들기름을 많이 썼지만)을 골고루 바르고 맛소금을 살짝 뿌려 석쇠에 얹어 가마솥에 불 땐 아궁이 앉아 살짝쿵 살짝쿵 구워내면 이것이야말로 밥도둑이다. 그 고소한 향내가 부엌을 넘어 마당을 쓸던 할아버지 코를 자극하여 “흠흠, 고놈 맛나겠구나”하던 기억이 새롭다. 고마아부라(胡麻油、ごまあぶら)는 우리말로 참기름이다. 이 고소한 참기름을 일본에서는 음식에 거의 쓰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참기름이 들어가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기름이 들어가는 한국 음식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김구이 말고도 참기름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은 나물이다. 날마다 밥상에 오르는 콩나물부터,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숙주, 비듬나물, 냉이, 달래, 씀바귀, 깻잎 무침 등 한국인은 들과 밭 또는 산에서 나는 식물은 못 먹는 것을 빼고는 거의 다 나물로 무쳐 먹을 정도로 나물을 좋아한다. 이러한 나물은 살짝 데쳐낸 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같은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벽파 이창배 선생은 1921년 여섯 살이 되어 한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마침 집 옆에 교회가 있어서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의 영향으로 노래를 잘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경서도 소리와 만나게 된 계기는 일본인 선생들이 일본음악을 가르치고 일본 노래를 부르라는 지시에 그것이 싫어서 조선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하지요. 어린 벽파야말로 애국자 중에서도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은 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퉁소의 명인으로 알려진 고모부로부터 퉁소며 단소 등의 관악기를 배웠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서도의 명창들이 간혹 관산융마와 같은 시창을 부를 때면 선생이 단소로 반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선생이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8세 무렵, 한양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체신국의 전기과 측량기사가 된 이후라고 생각됩니다. 이 무렵 동네 공청에는 왕십리패나 뚝섬패의 선소리 명창들이 드나들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원범산에게 경서도 잡가를 배웠으며 학강 최경식에게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학강의 <조
2012년, 6월 14(목요일) 오전 10부터 성동구 왕십리에 있는 소월 아트홀(성동문화원)에서는 벽파 이창배의 생애와 예술을 조명해 보는 학술모임과 기념공연이 한국전통음악학회 주최로 개최된다. 이 대회에서 발표될 필자의 기조강연 내용을 몇 회로 나누어서 매주 얼레빗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좌장으로부터 소개받은 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입니다. 이 행사를 주최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또한 보람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 국가를 경영하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전통음악은 소수의 특수 계층이 그 명맥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해서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전직 국회의원 한 분과 00감독원장, 기업체 회장을 지낸 분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한 분이 “거 서 교수가 쓴 책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 있잖아,” 하니까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 “추임새요? 무슨 새의 이름입니까?” 하고 되물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경기민요의 대명사 이은주 명창의 제자인 노경미 씨가 경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12좌창 전곡을 음반에 담아냈다. 좌창(坐唱)이란 글자 그대로 앉아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이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의 입창(立唱)과 구별 짓기 위한 이름이다. 입창을 순 우리말로 선소리라 부르는 것은 한자의 입(立)이 설 “입”이어서 같은 의미이지만, 좌창을 달리 잡가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여튼 좌창이나 입창, 이들은 줄곧 잡가라는 이름으로 전해 온 노래들로 상류 지식인 사회에서 즐겨 부르던 정가(正歌)의 대칭개념인 것이다. 좌창 중에서 12곡으로 선정하고 있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1) 유산가(遊山歌) 2) 적벽가(赤壁歌) 3) 제비가(燕子歌) 4) 소춘향가(小春香歌) 5) 선유가(船遊歌) 6) 집장가(執杖歌) 7) 형장가(刑杖歌) 8) 평양가(平壤歌) 9) 십장가十杖歌 10) 출인가(出引歌) 11) 방물가(房物歌) 12) 달거리(月令歌) 일반적으로 앉아서 부르는 연창형태는 적극적인 표현을 절제하는 노래들이다. 가곡이 그렇고 가사와 시조가 그렇다. 그래서 대부
무사시대의 유명한 세 명의 장수를 들라 한다면 단연코 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쿠가와이에야스를 들 수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죽여 버려라 -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의 성격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에 대한 묘사로는 예수회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의 표현을 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키가 크며, 마른 체격으로 수염이 적다. 목소리는 꽤 큰 편이며 항상 무예를 좋아해 천하고 상스럽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자신 이외의 다이묘 대부분을 경멸하고, 마치 자신의 부하 다루듯 한다. 명목상 법화종을 신앙하는 듯하지만 조물주,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한다. 사업을 빈틈없이 하는 한편 공명에 온 힘을 기울인다. 사람과 대화할 때 둘러대는 것을 싫어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실력위주의 인재등용, 상업장려, 사회, 경제기반의 안정” 등을 들기도 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지난 5월 26일(토)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풍습과 전통을 이어가고자 당산제 큰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여성 소리꾼 전옥희를 초청하여 배뱅이굿 한마당을 펼쳐 큰 관심이 쏠렸다. 이러한 전통의식이나 놀이야말로 지역민들을 화합시켜 명랑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적인 정신이요, 원동력임을 생각할 때,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 나가는 기본 질서라는 논리가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작게는 배뱅이굿을 통하여 함께 울고 웃는 재미있는 공연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웃이 하나가 되고, 그래서 지역민들의 화합과 나눔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더욱 컸다. 전옥희 한국 사람으로 배뱅이굿 한 가락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매우 유명한 서도의 창극조 소리이다.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
일본인은 1년에 약 84회 카레를 먹는다 카레 천국 일본!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손쉽게 카레를 사먹을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무려 1년에 84회나 카레를 먹는다고 한다. 일본은 카레만 파는 전문 식당도 많고 7~80살 된 노인들도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카레 역사가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간편함 때문에 즐겨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일본 전국의 12,834개 카레 식당을 소개하고 있으며 카레 조리법(레시피)을 소개하는 사진이 2,440,000 건에 이를 만큼 일본인들의 카레 사랑은 가히 폭발적이다. 재미난 것은 ‘카레’라고 하면 인도음식으로 알지만 현지 고유의 언어로 ‘카레’라는 말은 없다고 한다. 대신 드라비다어족이 푸성귀, 고기, 식사, 반찬을 통틀어 말하는 ‘카리(타밀어:kari - 아래 갈무리 참조)’라는 말을 영어로 ‘curry’로 표기한 것을 일본인들 발음에 맞게 ‘카레(kare)'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이름만 카레로 바뀐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카레라고 하면 카레라이스라는 하나의 음식으로 알고
“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淺草觀音寺)과 아사쿠사신사(淺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이토쿠(臺東區) 관광과에서는 아사쿠사 일대와 센소지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을 만들어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628년)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를 구경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와 모찌(떡) 같은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 종류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