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시작은 흰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리 그림이 얼마라도 그려져 있으면 원하는 새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것이지만 새해를 맞을 때도 같은 심정이다. 그래 새해 아침에 첫눈이 오면 다들 좋아하는 것이겠지. 올해 토끼띠의 해가 밝았다. 지난해 말 칠순이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올해부터는 세는 나이가 아니라 산수로 정확히 떨어지는 나이로 칠십이다. 물론 가을에 생일이 와야 만 70이니 그때까지는 아직 칠순이지만 칠순이건 만 칠십이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그래도 그런 개념상의 나이 헤아리기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니 그렇게 따지고 사는 것이지. 아무튼 올해 나도 진정으로 칠짜 항렬로 올라간다. 진행형 '올라간다'가 아니라 사실상 현재완료형의 '올라갔다'라고 함이 맞겠다. 후배들을 만나 내가 이제 칠짜 세대로 들어갔다고 하니 놀라긴 하던데 막상 선배들은 나이 드시는 것이 습관화되어있어 그런지 내가 칠짜를 거론하면 "그래. 아직도 한창이네"라고 말해주니 그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인생에 있어서 칠십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서의 올해 칠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정성화 배우가 안중근 역으로 출연한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 지난 12월 21일 첫선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원작 뮤지컬 ‘영웅’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상영 중이다. 초등학교 5학년 진급을 앞둔 딸이 텔레비전 광고를 보더니, 뮤지컬 영화 ‘영웅’를 보러 가자고 하였다. 4학년 때부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보며 스스로 역사 공부를 하는 딸은 12월 16일 유관순 열사의 생일과 12월 22일 주시경 선생의 생일을 챙기는 열정을 보이며 독립운동가들의 행보를 찾아보고 있다. 그런 딸이 처음으로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한 영화가 안중근 의사에 관한 이야기니 나도 호기심이 생겨 예매를 서둘렀다. 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웃고 울고를 반복하였다. 오른쪽 가운데 있는 손가락의 살들이 잔뜩 뜯겨 있길래 물어보니 눈물을 삼키느라 그랬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책으로 보고 알고 있었지만, 그 거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있었을 어려움과 고뇌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지들을 잃고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어도 안중근 의사의 “조국에 대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다고 했다. 대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책에서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이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곧 인생이란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는 것이지요. 우린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일부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있어도 대부분 선택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물론 자살이라는 범죄 행위를 통하여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코 올바른 행동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값어치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순간순간의 판단이 참으로 중요하지요. 여행하다 보면 고즈넉한 공간에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습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장소가 주는 행복이 작지 않지요.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설치된 오래된 벤치에 앉아 그동안 미뤄왔던 책장을 넘기는 것도 카페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실내장식이 주는 안온함과 음악이 주는 정취에 빠져보는 것도 다 시간을 투자한 선택과 의지가 가져다준 행복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새벽잠에서 깨어난 현영감의 마음은 지푸라기 헝클어뜨린 것 같았다. 단 한 번 본 사람이 그렇게 또렷하게 꿈에 나온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비만증에다 하지정맥류로 고생하는 할멈을 부축해 오줌을 뉘고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 껍질은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기만 했다. 창에는 성에가 고사리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다시 볼 일이야 없겠지만 전화번호라도 받아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멈 몰래 빠져나와 거실을 서성이며 조반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 청소이시더. 박 씨 양반 댁이니껴?” “아,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 당부도 있고 해서 삼우가 지나면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박 씨. 야위어 보여도 단단한 구석이 느껴지던 사람.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눌러쓰는 작은 손이 맵차 보이던 사람. 얄궂은 운명이 아니었더라면 매제가 될 뻔했던, 눈꼬리가 유난히 부드러운 사람. 그가 현영감을 찾은 건 두어 달 전 가을 거두미*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 여기가 월외리가 맞습니까? 아까부터 낯선 이가 집집이 다니며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목소리가 현영감네 차례까지 온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임금이 승하한 뒤, 첫째 아들인 왕세자가 즉위한다.’ 얼핏 보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명제는 실현되지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조선 역사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세자는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만 적자이자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나마 요절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 정사를 제대로 펼친 임금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가업 승계’와 ‘후계자 양성’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 봉건시대에 ‘왕세자 책봉’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자 출신 왕자들만 많거나, 서자 출신 왕자조차 거의 없거나, 적자 왕자는 있으나 군주가 지녀야 할 자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왕통을 잇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전문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걸은 지은이 이준호는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의 비극적인 인생을 한 권의 책, 《비운의 조선 프린스》에 담았다. 물론 임금이 되지 못한 왕세자 가운데서도 천수를 누리며 잘 살다 간 이가 더러 있지만, 겉으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조선 시대 아마도 가장 무능했던 임금 가운데 선조가 뽑힐 것입니다. 그는 무려 41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했던 임금이지요.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덕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이 끝나고 발표한 공신 목록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선무공신은 18명인데 자신이 도망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그를 수행한 호성공신은 무려 86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지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의병장인 정인홍, 김면, 곽재우, 김천일, 고경명. 조헌 등은 공신 목록에서 빠졌고 의주로 피난 가는데 일조한 마부나 의관과 같은 미천하고 별 공로도 없는 사람들은 공신 책봉을 받습니다. 난리 통이라지만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것도 창피한 일인데 그 도주를 도운 사람들 86명에게 공신을 내려주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리고는 나라를 지킨 위대한 장군과 의병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힘 덕분이었다. 조선의 장수들은 그저 중국 군대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의 머리만 얻었을 뿐이다.” 이것이 목숨을 바쳐 싸운 전장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에 가족여행으로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해 저녁 식사를 하는 옆자리에 박세리 선수 일행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방송국의 기자였지만 대한민국의 골프사를 바꾼 세계적인 영웅인 박세리 선수를 가깝게 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굳이 내 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고, 이에 박세리 선수는 감사하게도 (죄송, 약간 취기가 오른) 필자는 물론 필자의 손주들과 기념사진도 찍어주는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박세리 선수와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 30여 년의 기자생활 중에 유일하게 골프 취재, 그것도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대회를 취재하였으니 바로 2001년 8월 초 런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이었고 그 때 필자는 런던특파원으로 있었다. 당시 특파원은 골프 등 스포츠는 보통 취재대상이 아니어서 그 주에 나는 여름휴가를 간다고 일요일에 출발하는 동유럽 여행팀에 돈도 다 낸 상태였다. 그런데 막판에, 그것도 토요일에야 취재지시가 내려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대회 3일째에 박세리 김미현 두 한국 선수가 1, 2위를 다투고 있어 취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휴가여행 일정은 아침 일찍 폴란드로 출발하는 것이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 국민이 책장에 한 권쯤 가지고 있을 법한 국민 베스트셀러다. 다들 주말에 시간은 많아졌으나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르던 시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답사’라는 새로운 즐길거리를 열어주었다. 다들 별 관심이 없던 문화유산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우리나라 곳곳에 참 보물 같은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책이 좀 두껍다. 아마 책장 한 편에 꽂아두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는 드물 것 같다. 관심 가는 지역을 사 보았더라도 조금씩 발췌독하다 상당한 분량에 눌려 슬그머니 책을 놓았을 수도 있다. 만화로 보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더없이 반가운 까닭이다. 《만화 문화유산 답사기》는 그 제목처럼, 유홍준 원작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누구나 쉽게 만화로 접할 수 있도록 각색한 책이다. 물론 기존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진 못했다고 해도, 각 지역의 핵심 문화유산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데다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참신한 관점도 잘 담겨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4편, ‘경주’에서도 그런 관점이 잘 녹아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평판이란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내리는 평가가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평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몇몇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성실하고 배려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 때 오랜 세월에 걸쳐 드러나게 되는 것이 평판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한 평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이니까요. 한비자는 사람을 다섯 가지 잣대로 잴 것을 권고합니다. 1.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친한가? 2. 돈이 있을 때는 어디에 쓰는가? 3. 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4.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 5. 사람을 등용할 때 누구를 선택하는가? 친한 것을 따지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과 코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과 맞는 사람과 친하게 마련이지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씀도 있으니까요. 2, 3번은 돈의 문제입니다. 씀씀이로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가늠할 수 있어요. 곧 소비 성향에 그 사람의 가치체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기에서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입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말이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그다음 날 일요일이 크리스마스다. 우리말로는 성탄절이라고 하는데 웬일인지 성탄절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고 엄숙한 것 같아 신세대들은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탄절 즈음해서 많이 듣는 말이 '할렐루야'일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그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가? 그야말로 구세주이신 신의 영광을 찬양해서 마땅한 날이기에, 할렐루야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한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기도하면서도, 또는 심지어는 거리에서 전도를 강요하는 분들에게서도 이 말은 자주 듣는다. 할렐루야(Hallelujah)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찬양하다’를 뜻하는 ‘hallel’과 유태교의 신 ‘Yahweh’의 준말인 ‘yah’가 합쳐진 말이라고 하니 글자 그대로 신을 '찬양하다', '찬양하라'의 뜻이 된다. 필자는 기독계인 대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는 한 해에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하며 그때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꼭 불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