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신문에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를 연재중인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는 새해를 맞아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여주의 영릉을 찾았다. 새해를 맞아 김광옥 명예교수와 ‘세종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편집자말) - 최근에 《세종 이도의 철학》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현재 세종 연구는 논문과 책 합쳐 대략 2,000여 편인데 ‘철학’이 들어간 글은 8편 정도다. 그리고 세종 연구에는 나름으로의 흐름이 있는데 정치철학이고 세종사상이라 할 철학서는 없다. 이번에 세종의 사상을 철학적 차원에서 보려고 세종이 말씀하신 용어 곧 개념어가 될 만한 말들을 전부 찾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생생의 길’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람은 늘 자기 하는 일에 업의식 곧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워지는 변화를 가져야만 한다. 사람은 거듭나야 참사람이 되는 생민이고, 사물은 새로 나야 변역(變易)이 된다. 한 비유를 들면 유교 정치철학에서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군주제에서는 신민(臣民, 신하와 백성)관계가 된다. 백성은 신하이거나 평민이다. 이후 사회가 발전하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일주일에 한번 쓰는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오늘, 새해 첫날로 400회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재미도 없는 잡문의 이야기를 관심있게 읽어 주고, 격려를 해 주신 우리문화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지난주는 김월하 명인으로부터 여창가곡의 실력을 인정받은 황숙경 가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녀의 노래는 청아한 울림 가운데, 꿋꿋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역동성이 돋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독자 여러분이 2019 기해년 전통가곡과 친해지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가곡의 역사와 그 음악적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곡이 불리기 시작한 때는 대략 언제쯤일까? 확실치는 않으나, 늦어도 16세기 말은 분명하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1580년, 조선 선조 때에 안상(安瑺)이란 가객이 《금합자보(琴合字譜)》를 펴냈는데, 이 악보 속에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慢大葉)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래 가사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함께 관악기, 현악기 등 반주악기들의 선율이 구음(口音)과 함께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가곡의 총보라 할 것이다. 그러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여류가객, 황숙경을 소개하였다. 정가(正歌)란 아정하고 바른 노래여서 부르는 가객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바로 높은 기품과 바르고 당당한 태도가 요구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미동(微動)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 황숙경은 고교 시절 여창 가곡의 대모로 알려진 김월하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소리에 매료되었고, 그의 가르침으로 가곡 발표회를 꾸준히 열어왔으며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되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여창가곡이라는 말과 남창가곡이란 말은 각각 악곡이 정해져 있기에 남창가곡에 속해 있는 악곡을 여성이 불러도 이 노래는 남창가곡이고, 반대로 여창가곡에 속해 있는 악곡들을 남성이 불러도 여창가곡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김월하 명인으로부터 여창가곡을 전수받기 시작하면서 황숙경의 노래는 하루하루가 달라져 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예능교육은 더더욱 명인의 지도를 받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김 명인에게 공부하기 시작한 세월이 얼마쯤 지났을 무렵, 스승은 황숙경의 노래를 듣고 흡족해 하면서 “그래, 이제 됐구나.”라고 인정을 해 주었다고 한다. 스승의 짧은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지금의 황숙경을 있게 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노래와 반주와의 관계, 남녀창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의 반주는 관현악 편성이지만, 가사나 시조창은 관악기와 장고, 혹은 장고만으로 부를 수 있으며 그 역할도 수성(隨聲, 소리를 따라 하는 것)반주라는 점, 이에 반해 가곡의 반주악기들은 대여음과 중여음이 존재하며, 대여음의 역할은 악곡의 음높이, 속도, 분위기 등을 제시해 준다는 점, 그 반주선율 역시 노래와 반진행, 또는 4도~5도의 상, 하행이며 기타 잔가락이 삽입된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의 절정 부분은 제4장 "우리도" 부분이란 점, 시상(詩想)의 전환이나 고음의 출현, 한 음으로 12박자를 뻗으며 유-무-유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부분이란 점, 남창과 여창의 차이는 가사를 붙이는 자리가 조금씩 다르며 여창은 잔가락과 가성의 창법을 쓴다는 점이 특징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여창 가객으로서 노래 자체도 일품이지만, 특히 노래하는 자태가 고운 정통파 여류 가객, 황숙경의 정가 인생을 소개해 보도록 한다. 원래 정가(正歌)란 아정하고 바른 노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아정(雅正)이라는 표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두 번째 서울인 지안[集安]에 세워져 있습니다. 비는 높이 6.39m, 폭 1.35m~2m로, 채석(採石)하고 난 몸돌을 적당히 여기저기 다듬었을 뿐 네모반듯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글자를 새긴 비면조차 판판하게 다듬지 않았습니다. 비의 4면에 모두 글자를 새겼는데, 각 면에는 비문이 들어갈 윤곽을 긋고 그 안에 다시 세로로 길게 선을 그어 각 행을 구분하였습니다. 4면에 걸쳐 1,775자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구려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碑)의 현재 상태는 원래 모습 그대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건립된 지 천수백 년이 지나면서 자연 마모된 것에 더하여, 19세기 말 재발견된 뒤 표면에 가득 낀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렀기 때문에 비면(碑面)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이후 비면에 석회를 바른데다가, 탁본을 거듭하며 훼손이 계속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비면에 대한 화학적 보존처리는 비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때문에 현재는 비면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본래의 글자[字劃]를 알아보기 힘든 곳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비문의 본래 글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 한 바탕의 마지막 곡으로 남녀가 동일한 가사를 부르는 태평가(太平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태평가의 빠르기는 매우 느리다는 점, 영산회상이나 산조음악은 <만(慢)-중(中)-삭(數)>의 형식이나 가곡은 느리게 되돌아와 끝맺는 <만-중-삭-만>의 형식이란 점, 곡명에 있어서도 00대엽(大葉), 0롱(弄), 0락(樂), 0편(編)과 달리, 가(歌)를 붙이는 이유는 원 이름 <대(臺)>보다는 노래말의 시작으로 통하던 <태평>이 굳어졌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가곡 반주에서는 장고가 채편의 변죽을 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로 <편락(編樂)>이나 <태평가> 등에서는 부분적으로 복판을 친다는 점, 노래말 <우리도>를 부르는 4장의 분위기는 노래와 반주 악기들간의 조화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일음(林)을 뻗어 내릴 때, 유(有)-무(無)-유(有)의 생명력 넘치는 표현법이 절정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노래와 반주 관계, 남녀창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비롯하여 세피리, 대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018년도 풍류산방을 시작하며 박문규의 남창가곡 <언락>과 황숙경의 여창가곡, <우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을 감상하기 전에, 전인근의 대금독주로 <상령산>과 <청성잦은한잎>을 감상하였는데, 고요한 산 중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원음 그대로 듣는 젓대의 소리야말로 도심에 찌든 모두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는 이야기, 대금은 <젓대> 또는 <저>라고도 불렀고, 《삼국사기》에는 “근심 걱정을 종식시키는 피리”라는 의미로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여창 가곡에 나타나는 가성(假聲)의 창법은 매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창법이라는 점과 가곡의 형식은 가사가 길고 짧던 간에 모두가 5장 형식이고, 노래를 안내하는 대여음(大餘音)과, 3장과 4장 사이의 중여음이 포함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 한 바탕을 마무리하는 태평가(太平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태평가는 남녀가 동일한 가사를 함께 부르는 노래로 그 빠르기는 매우 느려서 그 앞에 부르는 편수대엽(編數大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갈이 만난 둘째 배달문화는 일본 도쿄의 김경자 일본조선족예술단장이다. 김 단장은 연변 조선족 동포로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연변을 뒤흔들어 놓은 유명가수였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한동안 잠잠 했었는데 2007년, “쉼터 제1회 일본조선족노래자랑대잔치”에 초대가수로 초청받고 다시 무대에 섰다. 이후 다시 가수로 명성을 날렸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더하여 우리문화신문 일본 도쿄지사장에 취임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려내는 일에 새롭게 뛰어드는 것이다. 김단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만나보았다. - 가수로서 일본ㆍ중국ㆍ한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가수가 되었나? “동네방네에서 유행가시조인 가수 “백년설”이 살아서 돌아온 분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던 아버지의 DNA를 타고 났던지 대학시절 대학가요제에 나가 노래하면서 노래 잘한다는 소문이 났었다. 내가 직접 작사하고,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의 리정이란 학생이 작곡해준 노래 ”소녀의 사랑은“도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래가 하고픈 나머지 대학생 때인 1985년 연변방송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방송국 음악편집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무계원에서는 올 2018년에도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풍류산방이 시작된다. 풍류(風流)란 음악이고 노래이고 춤이며 넓은 의미로는 다양한 놀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산방(山房)이란 산에 지어 놓은 집이다. 그러니 산방에서 국악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소리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는 방중(房中)악회가 바로 풍류산방이 겠다. 올 2018년도에도 종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종로구청이 후원하여 4회에 걸쳐 열리는데, 첫회는 11월 24(토)이고 이로부터 12월 1일, 8일, 15일 등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첫 회는 엊그제 첫 눈이 내리던 11월 24일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남녀창 가곡과 가야금 연주를 필자의 해설로 감상하였다. 가곡감상에 앞서 먼저 대금독주곡으로 <상령산>을 전인근의 연주로 소개하였다. 대금 연주자, 전인근은 국악의 명문 중-고-대학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정통파 연주자이다. 그는 낮으막한 소리로 평조회상의 상령산을 불기 시작하더니 곧 <청성잦은한잎>으로 옮겨서 청소리를 쩡쩡 내며 고음으로 치닫는 연주를 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갈(김영조)은 배달겨레 문화인들을 만납니다. 올곧게 얼넋을 다하여 우리 겨레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인들의 마음을 열어볼까 합니다. 그 첫 번 순서로 중국 연변 동포 석화 시인을 만납니다. 석화 시인은 연변에서 대학 때부터 문학활동을 해온 문학인으로 널리 알려졌고, 방송인과 출판인으로서도 큰 일을 해왔습니다. 석화 시인의 시에는 민족이 고스란히 담겼으며,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고 있음은 물론 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를 합니다. - 연변은 우리 동포들이 민족주체성을 지키고 살아온 어쩌면 나라밖 유일한 곳이다. 남의 땅에 발을 붙이며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연변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 이름은 내가 원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이름은 “중국조선족”이다. 이는 우리가 원해서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그저 조선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경계를 넘어서게 되자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