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일본인의 평균 결혼 비용은 얼마일까? 주식회사 리크루트 마케팅 파트너인 ‘젝시결혼트렌드’ 조사에 따르면(2018년 10월) 평균 357.5만 엔(한화 약 3,900만 원)으로 밝혀졌다. 이 금액은 결혼식, 피로연 파티를 모두 포함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식 비용은 2012년 조사 때 보다는 13만 7천 엔(한화 149만 원)이 증가한 금액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결혼 비용의 증가에 반비례하게 초대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에 견주면 평균 69명이 줄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결혼식 관련 업계 소조(SoZo) 대표인 아츠미유리카 씨는 ‘드레스 비용과 음식’이 결혼 비용을 늘어나게 한 원인이라고 한다. “신부될 사람들이 SNS라든가 친구의 결혼식 등에서 결혼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좋은 드레스라든가 좀 더 좋은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전체 비용을 늘어나게 하는 요소”라고 한다. 신랑될 사람도 드레스 비용이 비싸더라도 신부가 기뻐한다면 문제없다는 의식이 깔린데다가 피로연의 음식의 경우 음식이 너무 초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기에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그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산타령 정례발표회를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에서 열고 있는 배경도 왕십리패가 부르던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의 고향이 성동구라는 점, 이와 함께 무형문화재 종목은 개인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연례적인 공개발표회를 통해서 전승 의지나 실태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 발표자들을 따라 산타령을 함께 제창하는 청중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제 산타령은 대중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등을 앞에서 이야기 하였다. 문화원 대극장에서 산타령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사회자(방영기 전수조교)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 산타령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즉석 도움말을 하게 되었다. 평소 경기소리나 산타령에 관한 생각의 일단을 가감 없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이 비인기 종목을 붙들고,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여러분과 우리 사회가 보내는 진정어린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범한 직업인들이라는 점과,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여건을 뒤로 하고, 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장마철이라지만 푹푹 찌는 된더위로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7월도 중순으로 들어서고 보니 이제 꼼짝없이 된더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셈이다. 이러한 된더위에 일본인들은 안부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쓴다. 쇼츄미마이는 대개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헤엄치는 금붕어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게 배려한 것들이 많다. 그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보내는 때는 보통 장마가 갠 뒤 소서(小暑)부터 대서(大暑) 사이에 많이 보내는데 반드시 이때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입추까지 보내면 무난하며 이때까지는 안부 편지 앞머리에 ‘맹서(猛暑, 된더위)’라는 말을 쓴다. 바쁜 일이 있어 이때 못 보내고 이 이후에 보내면 ‘잔서(殘暑, 한풀 꺾인 더위)’라는 말을 앞머리에 넣는다. 이것을 “잔쇼미마이(殘暑見舞い)”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쇼츄미마이는 여름 된더위가 시작되어 끝나가는 날까지 보내는 풍습인 셈이다. 안부편지는 나름의 어여쁜 편지지를 골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아오이마츠리 (567년), 기온마츠리(863년), 지다이마츠리(1895년) 순이지만 가장 화려하고 볼만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기온마츠리(祇園祭)다.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전염병이 확산 되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의례에서 생겨났다.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교토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당시 66개의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기온마츠리는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사노미코토가 신라의 우두신이란 기록이 있다. 《교토 속의 조선(京都の中の朝鮮)》을 쓴 박종명 씨는 서기 656년 가라쿠니(韓國)의 대사 이리지사주(伊利之使主)가 일본에 건너올 때 신라국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성동구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열린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소개와 함께 선소리와 앉은소리, 곧 입창과 좌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을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라는 점, 노래를 서서 부르거나 또는 앉아서 부르는 연행 형태는 해당 음악의 특징적 표출 방법이 다르다는 점, 좌창은 대부분이 감정을 절제하는 형태이나 입창은 상대적으로 손이나 발, 또는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는 점, 입창의 형태로 부를 것인가, 좌창의 형태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라, 음악적 성격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산타령은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한 단체 종목이다. 1969년에 지정되었으니 벌써 50년이 흘렀다. 최초에는 김태봉, 유개동,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 5인이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었는데, 이처럼 한 종목에 5인의 예능보유자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여 향후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대했던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곳곳에는 빨강, 보라, 분홍, 연노랑, 연보라 등 색색 깔의 수국이 활짝 펴서 계절이 한여름으로 들어섰음을 알린다. 이 꽃을 일본에서는 ‘아지사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여름의 대표적인 꽃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특히 이 무렵이 되면 일본에서는 앞 다투어 전국 ‘아지사이(수국)꽃 명소’를 소개하느라 부산하다. 자란뉴스(https://www.jalan.net/news)에서는 ‘2019 전국 아지사이꽃 명소 30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운 꽃들이 빛깔 고운 자태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몇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후쿠오카 시모다공원(下田公園)은 시모다항을 마주한 언덕에 호조씨(北条氏) 별장이 있던 곳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300만 송이의 아지사이꽃이 공원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지사이꽃으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한 곳이 교토의 미모로토지(三室戸寺)이다. 미무로토지는 아지사이꽃절로 유명하며 이 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6월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가하면 역시 교토의 마이즈루자연문화원(舞鶴自然文化園)도 빼놓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 도령과 이별하고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서로 거울과 옥지환을 이별의 정표로 나누었지만, 정작 이별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며 주저앉는다는 이야기, 떠나가는 이 도령의 모습이 이만큼으로 시작해서-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현상을 그림처럼 그리는 대목도 재미있다는 이야기,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이제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춘향의 서글픈 심경은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나뭇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비가 내려도 임의 생각, 밥 못먹고,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임 그리운 탓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던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와 함께 연창의 형태를 의미하는 입창과 좌창의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이 난에 소개한 바도 있거니와, <산타령>은 선소리, 곧 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주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3.1절은 지났지만 저희는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은 한국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6월 24일까지 현재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3.1절 특집 전시를 하고 있는 중이라 그동안에 서울에 올 틈을 내지 못했지요.” 이는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의 전 이사장인 하라다 쿄코(原田京子) 씨의 말이다. 어제(18일) 오후, 하라다 이사장과 고려박물관 이사로 있는 도다 미츠코(戶田光子) 씨를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만났다. “하라다 쿄코 씨는 여러 번 이곳에 왔다고 들었지만 저는 처음입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기념관에 와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새삼 그의 애국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다 미츠코 이사는 기념관을 돌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모두 3층으로 꾸며진 기념관을 꼼꼼하게 다 둘러보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한정된 시간이지만 알차게 기념관을 설명해준 사람은 이혜균 사무국장이었다. 이 사무국장은 유창한 일본말로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사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3층 전시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붓글씨로 직접 쓴 심금을 울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고하는 <와상 대목>을 소개하였고, 이 도령이 춘향에게 들려주는 ‘소통국 모자의 이별’,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부부이별’, ‘초패왕과 우 부인의 이별’, ‘왕 소군의 한궁 이별’ 등 이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연인들에게 있어 이별이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슬픔이고 아픔이란 점, 춘향가는 남녀가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극적인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헤어짐의 정표로 거울과 옥지환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이 도령과 헤어져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조로 표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도령은 떠나기 앞서 석경(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당부하였고, 춘향 역시 끼고 있던 옥지환을 빼 주며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이별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