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한꽃 기자] 지난 21일 일본은 참의원 선거를 치렀다. 마침 일이 있어 교토에 가 있던 기자는 숙소에서 그날 밤 밤새 개표방송으로 도배된 티브이 방송을 지켜보며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선자 이름에 빨간 꽃이 하나둘 늘어가더니 자민당 전광판은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였고 함박웃음으로 아베신조 수상은 연신 싱글벙글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전국의 개표소에서는 자민당 소속의 당선인들의 만세 삼창 소리가 일본 땅을 들썩 거렸다. ▲ 일본 참의원 밤샘 개표 현황 티브이 보도 자민당 소속 당선자 화면(22일 아침 5시 27분 현재) 그런데 오늘 아침 미국 LA발 기사 한토막이 지난 21일 참의원 선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LA주재 일본총영사가 21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일본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역사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끝냈다며 독일이 나치범죄에 대한 배상을 하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는 궤변을 늘어놓아 파문이 일고 있다. 는 뉴욕 뉴시스 노창현 특파원의 글이 그것이다. ▲ 빨간색이 자민당 득표 현황(23일 5시현재) 노 기자는 지난 7월 14일 LA타임스에 게재된 복수의 독자 투고문 '일본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부인(Letters: J
[그린경제=정석현 기자]광주학생독립운동 백지동맹 사건의 주역이었던 최순덕 애국지사가 22일 오전 10시경올해 103살로 세상을 떴다. ▲ 103살로 세상을 뜨신 최순덕 애국지사, 광주학생운동 때 백지동맹을 이끌며 항일투쟁을 했다. 1911년에 태어난 최순덕 애국지사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광주여고보(현재의 전남여고) 백지동맹 투쟁 사건의 주역이다. 그때 3학년 재학 중으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최순덕 애국지사는 11월3일 광주역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시가전이 벌어지자 동료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 치마폭에 돌을 나르며 남학생들의 시위대에 전달하는 등 반일시위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그때의 시가전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나주 통학열차에서 일본 학생들이 조선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 것이 도화선이 돼 일어난 것이다. 최 여사는 이날 대규모의 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 학생들이 체포구속되자, 이에 반발해 11월10일부터 치러질 예정이었던 중간고사를 전면 거부하는 백지동맹으로 일제에 온 몸으로 항거했다. 최 애국지사는 전날 밤 동급생과 함께 구속학생 석방과 조선 독립을 위해 답안지에 한 글자도 쓰지 말고 연필도 들지 말자는 내용의 백지동맹 호소
[그린경제=진용옥 교수] (1)찰방제 조선시대에 각 도(道)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6품의 외관직(外官職)으로 찰반제도가 있었다. 마관(馬官)우관(郵官)이라고도 불렸다. 고려시대까지도 역의 운영은 역장(驛長)과 역리(驛吏)가 했고 중앙에서 가끔 관리를 파견하여 순시했다. 이런 관리의 종류로는 역순관(驛巡官)제도관역사(諸道館驛使)정역소복별감(程驛蘇復別監) 등이 있었다. 태종 때부터 역참의 일정한 지역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정역(程驛) 찰방이 다시 등장했다.《경국대전》에 보면 조선 초기 전국에 23명의 찰방과 18명의 역승(驛丞;종9품)을 두어 총 537역을 관장케 했는데, 1535년(중종 30)에는 역승을 없애고 전국의 큰 역에 40명의 찰방을 두고 이를 찰방역이라 하였다. 작은 역에는 역장을 두어 찰방이 이를 관장하였는데, 중요한 요소에는 겸(兼)찰방 12명을 두어 찰방의 비행을 감시하게 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이르는 중요한 도로에 마필(馬匹)과 관명(官員)을 두어, 공문서(公文書)를 전달하고 공용여행자(公用旅行者)에게 숙소제공‧마필공급 등 편리를 도모하는 기관(機關)을 역참이라 하였는데, 약간의 역참(驛站)을 1구(區)로 하여 이를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 4천년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 남의 노예가 될 수는 없다라고 외쳐 댔던 만해 한용운. 그는 1919년 3월 11일 만세운동 주동자로 잡혀가 왜경에게 심문을 받을 때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계속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중 월조가, 조선에는 중 한용운이 있을 것이다."라며 당당히 말했다. 흔히 만해를 가리켜 불교개혁자, 민족운동가, 근대 시성(詩聖)이라 일컫지만 만해만큼 주체성이 강한 애국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잡지 별건곤 기자가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거침없이 3.1만세운동 때 명월관에서 한 연설한 일이라고 했다. 그 내용을 보자. 오늘의 우리 모임은 곧 독립만세를 높이 불러 외침으로써 독립을 쟁취하자는 취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장서고 민중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명을 바쳐 자주독립국이 될 것을 기약하고자 여기 모인 것이니 정정당당히 최후의 1인까지 독립쟁취를 위해 싸웁
[그린경제=한성훈 기자]친일파들의 낯부끄러운 땅찾기 소송이 아직도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민영은(閔泳殷) 후손들의 토지 소송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15일 청주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는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는 청주시의 대표 거리와 통근통학로를 강탈하려는 민영은 후손들의 소송은 독도 문제와 더불어 역사에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확대돼 가고 있다며 청주시민은 이런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법원의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뿔난 청주 시민들이 서명에 나섰다 (박한용 사진 제공) 민영은은 1905년 6월 충주농공은행 설립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13년 5월부터 6년간 충북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친일 활동에 나선 대표적 인물이다. 민영은 후손은 2011년 3월 청주 도심인 청주중학교와 서문대교, 성안길 부근에 있는 12필지(총 1894.8㎡)의 도로를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며 소송을 냈으며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민영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시민대책위는 민영은이 일제강점기 내내 친일 반민족적 활동에 적극 가담한 우리지역의 대
[그린경제=진용옥 교수] 우역과 파발에서 근대 우편으로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경희대 진용옥 명예 교수가 쓴 것으로 진용옥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 얘기 합니다. 봉수와 파발은 현대 정보통신(ICT)의 원형이다. 대동여지도에는 각각 횃불과 원에 사선을 그은 기호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학자료센터에서는 디지털지도를 만들고 현재 위치를 표시하였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위키매피아에서 위경도 정보를 알아내고, 구글위성지도에 빨간 표시를 하여 새로운 21세기 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 지도에 봉수와 파발망을 통합하고 남북을 아우르면서 현대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통합하여 고산자식 환경지리부도를 완성코자 한다. 진 교수는 이 글을 부산MBC의 남발 프로그램 자문을 위해 작성한 것으로 옛 것을 단순히 따져보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보다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를 시도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관점에서 썼다고 말합니다, 이제 진용옥 교수의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통합한 새로운 지식에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 주) 00. 들어가며(고산자식 환경지리부도 만든다) 10. 우역과 촬방 제도 20. 교통과 우정의
[그린경제=정석현기자] 14일 교도통신 보도를 보면, 다니가키 사다카즈 법무상, 하야시 요시마사 농림수산상, 네모토 다쿠미 부흥상, 이나다 도모미 행정개혁담당상이 13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야스쿠니신사의 미타마 마쓰리(조상의 혼령이나 곡식을 지키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행사)를 맞아 등을 신사에 봉납했다. 봉납은 영령에 대한 감사와 평화로운 세상 실현에 대한 희망을 염원하는 의미를 갖는데, 야스쿠니신사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때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사에 봉납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는 한겨레신문 7월 14일 치 보도이다. ▲ 남산에 세웠던 조선신궁 해마다 이 때쯤되면 야스쿠니와 관련된 문제로 시끄럽다. 일본에 8만여개에 달하는 신사가운데 유독 야스쿠니신사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사람들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곳이 다른 많은 신사와는 성격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들 그것도 에이급 전범자들을 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범이란 전쟁범죄자들을 가리킨다. 가해국인 일본의 공직자들이피해국가를 의식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야스쿠니를 참배하느라 드나 드는 것은밝은 해 아래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을 비
[그린경제=이규봉 기자] 2013년 3월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감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밀감식팀은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목이 손상돼서 즉사 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비록 민간 발표이나 이로써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약사봉에서 실족해 죽었다는 정부의 공식보도를 38년 만에 부정하는 것으로,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진상을 규명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로 인정된다면,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해 한 몸을 다 바친 광복군 대위가 해방 후에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조선인 출신 일본군 중위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독립투사 중에 독립투사이며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통 보수주의자가 해방 정국에 기회주의자인 친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당시 대통령에게는 군부정권 시절임에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장준하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혹독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의 강제징용의 역사는 그다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큐슈의 탄광, 야하타 등의 제철소, 교토의 비행장 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조선인들의 정확한 숫자 조차도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여운택(90)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는 10일자 서울고법 민사19부(부장 윤성근)의 판결은 의미가 깊다. ▲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 직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신일본제철의 손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 원고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원들(사진제공 민족문제연구소 김진영 연구원) 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며 침략전쟁은 국제질서와 대한민국 헌법뿐 아니라 현재 일본 헌법에도 반하는 행위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이어 피고들이 한일청구권협정이나 소멸시효 등을 주장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질서에 반한
▲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13억 중국인을 뒤흔든 정율성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팔로군이란 중국국민혁명군 제8로군의 약칭으로 중국의 항일전쟁 때 최전선을 담당한 부대이다. 팔로군은 적극적인 항일전을 펼쳤고, 민심을 보살폈으며 중일전쟁 기간 동안 중국공산당 발전을 크게 이바지한 중국공산당 부대로 훗날 인민해방군의 전신이다. 중국 서안 팔로군기념관[八路軍西安辨事處紀念館]을 찾은 것은 폭염이 내리쬐던 6월 25일 오후였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서안의 무더위 속에서 팔로군 기념관을 찾은 것은 일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더욱 특별한 것은 이곳 서안의 팔로군기념관에는 조선인으로 중국의 공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자취가 있기 때문이다. 팔로군기념관은 원래 팔로군의 본부이자 공산당 혁명의 근거지로 이 건물은 《중국의 붉은 별》저자 에드가스노의 아내인 헬렌포스터의 소유였다. 헬렌은 건물의 외관을 병원으로 위장하여 팔로군에세 활동공간을 제공하였는데 내부는 당시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회의실, 침실, 훈련실 따위를 재현해 놓았다. 기념관 첫방에는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으며 각 방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