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걷기 열풍이다. 그것도 맨발로 걷는 게 바람을 일으켜 높지 않은 산길이나 잘 가꿔진 공원길에서도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걷는 길로 가장 좋은 곳이라는 문경새재 관문길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걷고 싶은 길 1위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늘 마음에 달고 있었다가 드디어는 걸어보기로 작심하고 도전해본다. 전날 밤을 새재 입구의 ‘국민여가캠핑장’에서 묵어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눈앞의 주흘산에서 안개가 걷히는 광경을 눈으로 맛보고는 우리는 걸음을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관도(官道)로서 영남지방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서울로 가는 가장 큰 이다. 옛날 지역 수령으로 임명받은 신임관찰사가 구관찰사와 교대하는 곳,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의 흔적이 남아있고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세 개의 관문이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길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걷기 좋은 길로 소문이 나 있다. 이곳 바로 옆 주흘산 동쪽 계곡이 고향인 필자로서는, 문경새재 이야기만 나오면 속으로 켕긴 것이, 실제로 문경 새재길을 다 걸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이 사실상 마감되고 더위가 시작된다고 호들갑 비슷하게 떨던 게 보름 전, 그때 24절기 소만을 지났다고 했는데 다시 보름이 지나니 이젠 소만 다음의 절기인 망종이란다. 망종? 어감상으로는 망둥이 같은 종자... 뭐 이런 뜻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은 한자로 ‘亡種’이고, 지금 이야기하는 절기상의 망종은 ‘芒種’이다. 앞의 ‘亡’은 망할 망이니 별로 전망도 없는 개망나니 같은 종자라는 뜻이라 생각되는데, 뒤의 ‘芒’은 작물의 수염 부분을 뜻하는 글자이니 곧 벼나 보리의 이삭 부분에 나오는 까칠까칠한 까끄라기(난 까시랭이로 들었지만 이게 표준어인듯)를 말함이렸다. 우리들이 도회지에 살다 보면 벼건 보리건 다 껍질을 벗기는 도정작업을 해서 매끈한 속 알곡만 보는데 우리 어릴 때는 시골에서 크다 보니 까끄라기들을 보는 것은 물론 여름에 보리 타작, 가을에 벼 타작한다고 탈곡기나 도리깨로 털어내는 과정에서 끼끄라기들이 공중으로 날아들어 목덜미가 근질근질한 경험이 다 있는데 우리야 그렇지만 우리 애들, 손주들은 이런 경험도, 이런 말도 모를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 세상 식물의 생장에 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구는 돈다. 세상은 움직인다. 우리들 모두도 움직이며 뭔가가 만들려고 분주하다. 이때 변하지 않고 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는 방법은 시간을 세우는 것이다. 아니 시간을 보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멈추어야 시간이 가는 것을, 지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 씹어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문득 나는 시간을 세우고 바라보는 드문 기회를 맛보았다. 보통 때 늘 고민하는 글쓰기를 이날 오후만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 마침 광화문 광장이다. 초여름이라고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의 포말들이 포장된 지표면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가운데 눈에는 저 멀리 광화문과 그 뒤의 근정전이 들어오는데, 핸드폰(우리 편집장님은 손말틀이란다)은 거기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텅빈 광화문은 요즘 바빠진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게 분주함과 시끄러움을 밀어내주고 조용하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내 발길은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갈아타야 할 버스를 한 번에 타려면 서대문쪽으로 가면 되기에 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 하루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인데 요즘 하루하루 초록이 녹색으로 짙어지면서 그 푸르름을 보면 온종일 컴퓨터다, 손말틀(휴대폰)이다, 책이다, 무언가를 읽느라고 피곤해진 두 눈에 시원한 청량제를 받는 듯 상쾌하다. 나뭇잎이 무성해지면서 그 사이로 새들이 예전보다 더 자주 나오고 노래도 부른다. 꿩도 나와서 인사를 하고 한동안 못 보던 뻐꾸기가 아파트 근처까지 날아와 길게 우는 소리로 귀도 흥겨워졌다. 청설모는 아예 사람이 다가가도 떠날줄을 모른다. 며칠 전부터 부쩍 날도 더워져 어느덧 초여름인데 가만히 보니 24절기 상으로 소만(小滿)을 지났음을 알겠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는 봄이 오니 안 오니 하면서 입춘과 우수 경칩을 열심히 찾곤 하였는데 그만 봄이 오고 나면 24절기를 잘 찾지 않으니 소만이라고 하니 뭔가 갑자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이름 같은 생경함이 있는 것 같다. 절기상으로 보면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온다는 정도는 알지만, 이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고 산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책하는 집 뒤의 북한산 둘레길에는 좁은 골짜기에 큰비가 올 때 물 흐름을 줄여주는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는데 아침마다 여기를 지나면서 우리 부부는 늘 연못을 꼭 보며 지나간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어 근처의 풀과 나무들은 다 푸르른 생명의 옷을 입고 되살아났는데 한가지 안되는 것이 이곳에 자주 올라와 놀던 오리들이다. 전에는 암놈, 수놈 두 마리가 늘 정겹게 있다가 여름이 지나면 새끼들이 태어나서 같이 자라곤 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한참을 오리들이 안 오다가, 겨우 수컷만 한 마리만 오더니, 곧 두 마리가 오기는 하는데 두 마리 다 수컷이다. 이제 무슨 일일까? 온갖 추측을 다 해본다. 두 마리 다 암컷과 이혼했나? 홀아비가 되었나?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동성애(?)를 하는가? 전에 새싹이 나기 전에 연못 비탈진 곳에서 알을 까서 새끼들과 함께 내려와 노는 오리 가족이 다시 생각이 나지만 올해는 정말 독신(솔로) 혹은 더블 솔로인 오리만 보인다. 오리들에게도 우리 한국사회에 몰아닥친 가정의 위기가 닥친 것인가? 새끼도 없고 암컷도 없이 수컷 둘만이 있는 연못은, 주위의 식물들이 신록으로 생명의 기쁨을 누린 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하늘재를 아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아,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연결하는 고개인데, 거 왜 수안보에서 미륵불 있는 데로 해서 넘어가는 곳이요" 이렇게 말해 주면 "아, 거기요, 그게 이름이 하늘재입니까?"라며 비로소 어디인 줄 대충 파악하는 눈치다. 다시 묻는다. "하늘재를 올라가 보셨나요?" 이 질문을 들은 사람 열이면 열은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사실 고향이 문경인 나도 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에 도자기를 하는 도예가 차를 타고 문경 쪽에서 차로 올라가 충북 쪽에서 올라오는 길을 본 적이 있지만, 차로 간 만큼 올라갔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예전 주소로는 문경군 문경읍 관음리이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용흥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쪽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올라가는 것인데 길옆에 띄엄띄엄 집도 있고 깨어진 돌탑도 있고 해서 옛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걷는 고생이 없어서 고개를 오른다는 느낌이 약했기 때문인 듯, 가본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고개(峙)건 재(嶺)건 올라가는 길은 반드시 두 개 이상이 있을 터인즉 경북과 충북 사이에 놓인 이 하늘재도 올라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67년 내가 살던 충주의 거리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가쓰므>라는 영화 광고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뭔가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 배경이고 70밀리 대형 스크린이라 하니 궁금하기는 했지만, 당시 영화를 마음 놓고 볼 형편이 안 돼 아쉬운 영화로만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직장인 KBS에서 런던주재특파원을 하면서 영국인들의 세계진출 과정을 들여다보다가 찰스 조지 고든(1833~1885)이란 장군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은 곳이 수단의 하르툼(Khartoum)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보니 이게 그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가쓰므>가 아닌가? 어떻게 하르툼을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기하였는지 씁쓸한 적이 있었다. (더욱 우스운 것은 3년 뒤 비디오테이프로 다시 나왔을 때는 제목이 '카슘공방전'이었음을 언론인 임철순 씨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엉뚱하기는 이 제목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의 T가 SH로 표기된 것을 처음 본다) 1967년 국내 개봉된 이 작품은 이집트(배후에 영국이 있지만)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의 독립투쟁을 다룬 70mm 대작 전쟁영화다. "총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퇴계 친필로 된 묘갈문 비석이 있어요” 파주 쪽 아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퇴계는 경북 안동 사람이어서 고향 쪽에는 많은 글씨를 남기셨지만, 퇴계의 친필 묘갈문이 파주땅에 비석으로 있다니. 부쩍 궁금증이 일어나서 어디에 있냐고 하니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에 있단다. “거기에 왜 있지요?” 하고 다시 물으니, “아 묘갈이 있는 곳은 성수침이란 분의 묘소이고, 그분은 성혼의 아버지인데 그 옆에 나란히 묘소가 있어요”라고 한다. 성혼(成渾)이라면 호를 우계(牛溪)라고 하는 유명한 성리학자이신데 그 아버지가 성수침(成守琛)이구나. 그런데 거기에 퇴계가 쓴 친필 묘갈이 비석으로 있단 말인가? 곧 가서 보자고 하니 저녁 무렵에 안내를 해준다. 과연, 향양리라는 곳, 약간의 야산을 끼고 언덕을 따라서 조성된 꽤 넓은 묘역에 들어가니 비각이 눈에 들어온다. 비각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성혼의 신도비(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이 있는 근처의 길가에 세우던 비석)고, 왼쪽의 것이 성수침 선생의 묘갈비이다. 팔작지붕형의 가첨석(加檐石, 빗돌 위에 덮어 얹는 지붕 모양으로 된 돌), 비신(碑身),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락가락 멈칫멈칫하다가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우리 주위 전역에 초록의 옷을 입은 봄의 아가씨들이 벌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퇴계가 이런 정경을 묘사한다. 霧捲春山錦繡明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珍禽相和百般鳴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幽居更喜無來客 그윽한 곳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다 보니 碧草中庭滿意生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구나 1565년 봄 퇴계 이황은 4년 전 완공된 서당에서 봄을 맞으며 서당 앞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이 머물며 수양과 교육에 진력할 좋은 땅을 구해 5년여 공사기간 끝에 마련한 도산서당의 앞뜰에 봄이 왔음을 시(詩)로 표현해 본 것이다. 퇴계는 봄날의 아침 풍경에 이어 한 낮을 묘사하는 시도 지었다. 庭宇新晴麗景遲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花香拍拍襲人衣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如何四子俱言志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아침이 한낮으로 바뀌면서 살짝 비가 온 마당에 햇빛이 서서히 들고 있고, 비에 씻긴 풀과 꽃향기가 옷자락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앞 두 줄은 그런 뜻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