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다시 살아난 수원의 잔 다르크 이선경 이윤옥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홀로 죽어 간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홀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외롭고 슬픈 일입니다 열아홉 값진 목숨 모진 고문으로 숨 거두어 쓸쓸히 떠났건만 오래도록 찾지 않은 그의 무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 91년 째 그의 의로움 그의 조국에 대한 열정 마침내 만천하에 드러나던 2012년 삼월 하늘가 그곳에서 수원의 잔 다르크 살며시 미소 짓습니다. ▲ 이선경 애국지사 판결문 이선경(李善卿,1902. 5. 25~1921. 4. 21)애국지사가 그간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유관순 열사가 1920년 10월 독립운동의 제단 위에 거룩하게 바쳐지고 난 지 6개월만인 1921년 4월 21일 이선경 열사가 꽃다운 나이에 또 다시 순국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수원이 낳은 이선경 열사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이화학당 교사 미쓰 월터 선생이 시신을 받았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에 견주어, 이선경 애국지사는 경기여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조선여성의 애국사상을 일깨운 개성의 꽃 권애라 이윤옥 죽치(竹稚), 휠지언정 꺾이지 않는 대나무를 닮은 임이시어 국경의 칼바람 눈보라 살을 에는 혹한의 만주 땅 칠흑같이 어두운 밤 쫓기며 맹수들 두려워 않고 찾아간 독립운동의 성지 동삼성 지하 항일운동 앞장서다 잡혀 악랄한 비밀감옥 모진 고문 지치기도 하련만 끝내 이겨내고 돌아온 조국에서 잠자는 조선여성 일 깨워 광복의 두 글자 가슴에 깊이 새겨준 이여 오늘 조국은 임의 이름 잊었지만 역사는 질긴 날실과 씨실로 임의 이름 석 자 새길 것이외다. *죽치(竹稚)는 권애라 애국지사의 호이며 어린 싹인 죽순(竹筍)과 달리 어려도 심지가 곧음을 나타내며 이러한 호는 권애라 애국지사의 삶을 잘 나타낸다. ▲ 1925.10.11 동아일보 권애라 기사 권애라(權愛羅 1897. 2. 2 ~ 1973. 9.26)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태어나 1919년 3월 1일 충교(忠橋) 예배당의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면서 어윤희(漁允熙)애국지사와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 날 호수돈여자보통학교(好壽敦女子普通學校)로부터 전달 받은 독립선언서 80여장을 들고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일경에 잡혀 5월
[그린경제 =이윤옥 기자] 광복군 뒷바라지한 만주의 어머니 정현숙 이윤옥 죽능골 어린 신부 봉숭아 물들이며 뛰어 놀던 앞마당 뒤로하고 붉은 꽃 가슴에 새기고 떠난 만주길 물설고 낯선 곳에 마음 둘 곳은 내동포 내형제 지키는 일 그것뿐이라 하루에도 열두 가마솥 뜨신 밥해서 광복군 주린 배 채우며 다독이던 몸 왜놈에 쫓기어 뿔뿔이 흩어진 가족 부평초처럼 떠돌던 임시정부시절 토교에 천막치고 거친 밥 먹을지언정 광복의 끈 놓은 적 없어 고이 키운 어린 딸 손잡고 함께 부른 광복의 노래 그 누가 있어 해주오 씨 문중에 출중한 여장부 며느리 기억해줄까? ▲ 정현숙(일명 정정산) 애국지사 정현숙(鄭賢淑, 정정산, 1900. 3.13 ~ 1992. 8. 3) 토교에서 정씨(정현숙 애국지사)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 날이 없었고 백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중략) 영걸어머니(정현숙 애국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열걸 어머니에 정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 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어머니는 만주에서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황해도 평산의 의병 어머니 이석담 이윤옥 맑은 물 수려한 풍광 황해도 땅 아홉 구비 휘몰아치는 석담구곡 정기 받아 율곡의 12대손 귀한 따님 일찍이 임진난 난리에 순절한 정경부인 노 씨 할머니 삶 배우더니 평산 신 씨 스무 살 남편 죽고 시어른 지극정성 봉양할 때 꺼져가는 등불 앞에 놓인 나라 소식 듣고 대대손손 이어 오던 전답 팔아 의병들 뒷바라지 앞장서니 석담부인 의로운 일 해주 개성 장단까지 알려져서 몰려든 독립투사 문전성시 이루었네 즈믄해를 이어오는 석담구곡(石潭九曲) 세찬 물줄기처럼 가없는 석담부인 의병사랑 세세손손 흐를레라. ▲ 이석담 애국지사 이석담(李石潭,1859. ~ 1930. 5.) 황해도 고산면 석담리는 율곡 이이가 지내던 곳으로 그 후손이 대대로 살았다. 이곳은 계곡이 깊고 맑은 물과 풍광이 수련한 곳으로 계곡물이 아홉 번 굽이친다고 해서 율곡 선생이 석담구곡(石潭九曲)이라 이름 지었다. 이곳에서 율곡의 11대 손인 이한영의 일곱 자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난 이석담 애국지사는장성하면서 사물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고 모든 일에 소신을 굽히지 않으니 그 누구도 어린아이로 낮춰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부른 광복의 노래 강원신 이윤옥 제물포항의 긴 뱃 고동소리 형제자매 잠든 고향산천 뒤로하고 떠나가던 날 오뉴월 뜨거운 태양은 갑판 위로 녹아내리고 알몸뚱이 홀로 버려진 사탕수수밭 가죽채찍 맞으며 받아든 피멍든 동전 모아 조국의 독립에 기꺼이 보내노라 다시 태어나도 조국을 위해서라면 떠나올 수 있으리 다시 태어나도 광복을 위해서라면 하와이 사탕수수밭 그 검은 태양을 견뎌내리라. 강원신(康元信, 1887 ~ 1977) 평남 평양(平壤)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되던 해인 1905년 5월 남편과 함께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하였다. 하와이 도착 뒤, 가파올라 사탕농장과 에와 사탕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남편의 학업을 뒷바라지하였으며, 1913년 무렵 남편이 미국 본토 시카고로 건너가 법학박사과정을 밟게 됨에 따라 시누이 강혜원(康蕙園)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뉴바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후 포도농장에서 시간당 15센트의 노임을 받으며 남편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면서 여성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강원신 애국지사의 자세한 이야기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 참조 ** 이 윤 옥 시인 : 시집으로
[그린경제 =이한꽃 기자] 늠름한 대한의 여자광복군 김효숙 이윤옥 세도가의 폭정과 민중의 탄압에 항거한 홍경래의 고장 평남 용강의 어여쁜 딸 여섯 살 코흘리개 어머니 손잡고 상해 임시정부 아버지 찾아 나선 길 인성학교 훈장이던 아버지 뒤를 이어 꽝쩌우 중산대학 나온 엘리트 여성 코흘리개 모아다가 가갸거겨 글을 통해 민족혼 심어주고 여자의 몸으로 광복군 지원하여 종횡무진 뛰어 온 수십 해 성상 광복 후엔 패잔병 활개치는 중국땅서 믿음직한 여군으로 동포의 무탈한 귀국을 도운이여! 독립투사 남자들 활동에 묻혀 듣고 보도 못한 여자광복군 활약 그대들 들어보았는가! 늠름한 대한의 김효숙 여자광복군을! *김효숙 애국지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 57쪽 참조 ** 이 윤 옥 시인 : 시집으로 친일문학인 풍자 시집《 사쿠라불나방》1,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123, 시화집《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영문판 시집 《41 Heroines: Flowers of the Morning Calm 》을 미국createspace 출판사에서펴냈다. 그 밖에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걸러내는 책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 늠름한 여자 광복군 1호 신정숙 이윤옥 물 설고 낯선 망명의 땅 전투공작대원 시절 망국노라 놀리던 중국장교 흠씬 두들겨 패준 여걸 상덕 수용소 포로 되어 갇혔어도 절망치 않아 생명의 은인 백범 만나 뛰어든 여자광복군 군번 1호 거친 옷 거친 밥에 지치기도 하련만 솟구치는 그 열정은 하늘이 내린 천성!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데 남녀 구별 있을 수 없어 총 메고 거침없이 뛴 세월 광복으로 보답했네. ▲ 신정숙 한 줄기 희망 여자광복군 1호 시화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신정숙(申貞淑, 申鳳彬1910. 5.12 ~ 1997.7.8) 한국독립당 제8구당 집행위원을 맡으며 정보수집, 대적방송공작, 선전활동 등을 하며 전투 공작대원으로 용맹스럽게 투쟁을 하였으므로 중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1942년 장개석은 한 명의 한국 여인이 1천 명의 중국 장병보다 더 우수하다고 극찬하였다. 1942년 10월 광복군 제2지대 3구대 3분대에 편성된 이후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활동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 참조 ** 이 윤 옥 시인 : 시집으로 친일문학인 풍자 시집《 사쿠라불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3․1운동의 꽃 해주기생 문재민 이 윤 옥 조선기생 샤미센에 게이샤 흉내 낸다고 기무라 씨 빈정대지 마소 붉은 입술 꽃단장에 해주 처녀 술 따르고 노래한다고 기무라 씨 흉보지 마소 오늘도 웃음 파는 해주기생 영혼의 창에 드리운 해맑은 햇살 우국충정 일편단심 분홍저고리 남치마 속 깊이 감춘 광복의 꿈 뉘라서 알랴! ▲ 3․1운동의 꽃 해주기생 문재민 * 일제강점기 조선에 와서 기방(妓房)을 찾은 기무라(木村一朗)는 일본기생이 연주하는 샤미센을 조선기생이 연주한다면서 조선기생 답지 않다고 훈수하고 있다. 문재민(文載敏, 香姬, 馨姬 1903. 7.14 ~ 1925.12.) 해주 사람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문재민(향희) 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를 말할 때는 반드시 과거 조선천지를 뒤흔들던 독립만세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문제민은 해주군 송림면 수압리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문성관은 생계가 막막하자 13살 난 어린 딸을 해주읍내로 데리고 나와 기생 중매쟁이인 안산이(安山伊)라는 여자에게 2백원(당시 집 한 채)을 주고 팔아넘겼다. 13살 때까지 집 밖에도 나가 보지 않던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광주 3.1운동의 발원지 수피아의 자존심 박애순 이윤옥 빛고을에 어둠 드리워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매 흰 옥양목 치마 찢어 남몰래 그린 태극기 높이 들고 수피아의 어린학생 이끌어 밀물처럼 장터로 뛰쳐나갔네 쌀장수는 됫박 들고 엿장수는 가위 들고 부둥켜안고 외친 광복에의 절규 무등산 너머 백두대간으로 뻗쳐올랐네 피 끓는 그 함성 넘치던 기개 태고의 강렬한 빛으로 뭉쳐 활화산처럼 타올랐어라 그 불씨 당긴 수피아여! 그 이름 영원히 기억하라! ▲ 박애순 애국지사 ▲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부르며 달려 나오던 서문통 골목 박애순 (朴愛順,1896.12.23 ~ 1969. 6.12) 매일신보 1919년 4월 17일 치에는 광주지역 3.1운동 관련자 공판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31독립운동관련자 김복현, 김강, 최한영, 서정희, 박길상, 박애순등 80여 명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독립만세운동 혐의로 광주관헌(光州官憲)에 검거 된 자는 3월 11일 이후 99명에 달하였고 관련자 김복현은 나주에서 왔으며 기타는 광주예수교학교(光州耶蘇敎學校)졸업자이고 박애순(朴愛順)은 예수교학교 여교사이다.
[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압록강 너머 군자금 나르던 임시정부 안주인 '정정화' 이윤옥 장강의 물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 강물 위에 배 띄워 노래하지만 물의 근원을 캐는 사람은 없다0 혈혈단신 여자의 몸 압록강 너머 빼앗긴 조국 땅 오가며 군자금 나르던 가냘픈 새댁 그가 흘린 눈물 장강을 채우고 넘친다 돌부리에 채이면서 몇 번인가 죽을 고비 맞으며 수십 성상 국경 넘나든 세월 거친 주름 되어 골마다 패어있다 바닥난 뒤주 긁어 배고픈 독립투사 다독이며 가난한 임시정부 살림 살던 나날 훈장 타려 했었겠나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뛰어온 구국의 일념 압록의 푸른 물 너는 기억하겠지. ▲ 시화 이무성 한국화가 정정화(鄭靖和, 1900.8.3~1991.11.2) 26년이라는 전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임시정부와 같이 살았다. 백범의 말대로 거지나 다름없는 상해 시절 어느 때는 이동녕, 차리석, 이시영 같은 분들과 시장 뒷골목에서 동전 한 닢짜리 중국 국수 찌꺼기를 달게 사먹기도 했고 등 뒤로 왜놈의 기관총 쏘는 소리를 들으며 임정의 피난 짐보퉁이를 싸기도 했다. 이동녕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때나 백범 부인 최준례 여사의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