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서울시 도봉구 방학로 17길 46호 132-8541476(성종 7)∼1506(중종 1). 조선의 제10대 왕./재위 1494∼1506.◓ 장소 서울 창동역에서 우이동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채 10분도 안 돼 방학로 쪽으로 들어서면 ‘연산군 묘’라는 교통표지판 글씨가 보인다. 바로 방학로 17길 옆 야산에 조선시대 10대왕으로 가장 포악했던 비운의 임금, 한글 탄압의 악명을 떨친 연산군 무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세종대왕의 한글 연구를 도왔던 한글 공로자인 정의공주 무덤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어 한 지역에 한글 공로자와 탄압자가 같이 있는 셈이다.또한 도봉구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일제 말기에 기적적으로 소장하여 고이 보관해 온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무덤이 있는 야산 옆은 원당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비운의 왕, 포악스런 왕의 무덤이라 그런지 무덤 자체는 쓸쓸해 보인다.왕족의 무덤은 크게 능과 원과 묘로 구분한다. 능은 왕과 왕후의 무덤이며 원은 세자, 세지빈 또는 왕을 낳은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묻힌 곳을 가리킨다. 묘는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을 말하는데 연산군은 쫓겨난 임금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울산 중구 병영12길 15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 울산 중구에는 2009년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이 생겼다. 물론 생가터는 기념관 옆에 있다. 그 주변은 한글마을로 지정이 돼 기념관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다면 울산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울산역에서 내리면 5003번 리무진 버스를 타고 기념관이 있는 병영사거리까지 30여분을 달리면 된다. 버스를 내려서 골목길을 천여 미터 올라가면 한글마을답게 한글 관련 각종 글맵시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울산은 대표적인 공업 도시이지만 많은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빼어난 국어학자이자 올곧은 겨레 얼을 지키고 가꿔온 외솔 최현배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나 울산의 역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이 한글 마을로 지정된 건 2014년이다. 현재까지 한글 마을 조성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더욱이 한글 마을 가까운 곳에 2015년 8월에 시작한 한옥 마을이 조성될 예정이어서 한글 마을은 더욱 다함께 즐기는 마을이 될 것이다. 외솔 기념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저서, 유품 등을 전시하는 전시관과 다목적 강당, 한글교실, 영상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1417년 8월 2일(음력 6월 20일) ~ 1475년 7월 23일(음력 6월 21일) 태어난 곳: 전라남도 나주 한글마을 무덤이 있는 곳: 경기도 의정부 고산동 산 53-7 올해는 보한재 신숙주 선생 탄신 600돌이 되는 해다. 훈민정음 반포와 보급, 국방, 외교 등 그가 남긴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세조 집권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빛나는 업적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장소 ------------------------------------------------------------------ 신숙주는 훈민정음 반포와 보급에 절대적인 업적을 남긴 조선 전기의 학자요 관리였다. 43번 국도를 따라 의정부에서 남양주 방향으로 가다 교도소 입구 건너편 고산동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로 들어서면 ‘신숙주 선생묘’라는 길안내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가다 고산초등학교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그 왼쪽 산 중턱에 바로 보한재 신숙주 무덤과 한글 공적비가 있다. 이 묘소는 신숙주의 무덤과 신도비, 사적비가 있는 곳으로 고령 신씨 문중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무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 1월 21일. 한파가 몰아친, 눈발이 날린 토요일,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아카데미 초중고 학생들 37명을 데리고 한글가온길 답사를 했다. 마지막 답사지인 세종로공원의 한글글자마당에서 한글가온길의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들 한글만세를 외쳤다. 세종대왕 동상을 뒤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길 건너 정부종합청사 쪽으로 오게 되면 세종로 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2011년도에 먼저 조성된 글자 마당과 2013년도에 조성된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이 있다. 글자마당은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긍심을 높이기 위하여 한글 첫소리(19자), 가운뎃소리(21자), 끝소리(27자) 글자로 조합 가능한 11,172자를 재외동포, 다문화가정, 국내거주 외국인, 새터민 등을 포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11,172명이 각각 한 글자씩 직접 쓴 글씨를 돌에 새겼다. 마침 이때 공모하여 자신의 글씨가 뽑힌 박정애 세종연수원 대표가 참가하여 공모 경위와 글맵시를 설명해 참석자들의 손뼉을 받았다. ‘릱’이란 글자인데 ‘ㄹ’자를 태극 모양으로 하여 천지자연의 조화를 담은 한글의 가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11,17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장소 조선 성종 임금이 다스리던 1485년(성종 16년)에 한글 관련 큰 사건이 벌어졌다. 종로 시장 상인들 가운데 한글을 아는 이들이 오늘날 장관격인 호조 판서 이덕량의 동생 집에 한글로 그들을 비판하는 투서를 몰래 전달했다. 영의정부터 판서까지 고위 관리들이 종로의 도로 정비 사업을 한다며 제 잇속을 챙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내용이었다. 이덕량은 그것을 읽고 곧바로 성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성종은 판내시부사 안중경과 한성부 평시서 제조 등을 보내 상인들의 요구 사항을 듣게 했지만 끝내 한글을 아는 자들을 처벌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하층민에 속한 상인들도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으며,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종로는 1호선인 종로 2가역, 3가역이 있는 서울의 중심지다. 종로 3가는 3호선과 5호선도 서는 명실상부한 중심지로 조선 시대 때도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이 있었던 자리다. 서울시는 옛날 시장터에 시전행랑을 복원해 놓았다. 사건 연보 1485/07/17(성종 16) : 호조 판서 이덕량 등이 시장 사람들의 언문 투서(익명서) 두 장을 바치다 1485/08/02(성종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