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양병완 기자]판소리라는 말은 판놀음에서 부르는 소리(노래)를 말한다. 옛날 문헌에는 이러한 의미의 판소리를 잡가(雜歌), 타령(打令), 창가(唱歌), 극가(劇歌), 본사가(本事歌)등으로 표현하였다. 판놀음이란 원래 넓은 마당을 놀이판으로 하여 판을 짜서 놀이를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판놀음에는 판소리, 풍물굿, 줄타기, 소고놀이, 춤, 염불 등인데 판놀음으로 놀 때는 판자(字)를 붙여서 판소리, 판굿, 판줄, 판소고, 판춤, 판염불이라고 불렀다. 판소리는 원래 창우(唱優), 광대(廣大)등으로 부르던 소리와 재담(才談)과 춤과 곡예를 연희(演戱)하던 노릇바치가 부르는 소리에서 나온 말이다. 노릇바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광대 역시 그 솜씨에 따라서 소리광대, 대광대, 줄광대, 어릿광대 등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판소리는 여기에서 소리광대를 가리킨다. 본래 광대(廣大)는 첩리(帖裏)에 초립(草笠)을 쓰나 소리광대는 두루마기에 갓을 썼고 명창으로 뽑히게 되면 판소리 창(唱)옷에 통영갓을 쓰기도 하였다. 판소리는 가객(歌客) 한 사람이 긴 서사적(敍事的)인 사설을 아니리(대화체의 말), 소리(판소리), 발림(몸짓)으로 연출하는 극적인
[그린경제‧얼레빗=양병완 기자] ▲ 김세종 명창 생가 (아니리) 이도령 : 좋다. 좋다. / 정원이 청결하고 / 송죽이 울밀허니 / 여기지 절개로다 / 얘 ! 방자야 / 책실로 돌아가자 / 도련님이 책실로 돌아와 글을 읽되 / 혼은 벌써 춘향집으로 건너가고 / 등신만 앉아 놀이글로/ 띄엄띄엄 띄어 읽겄다 / 이도령 : 맹자견 양혜왕 허신디 / 왕왈쑤 불원천리 허시니 / 역장 유 이리 오 국호이까 / 이글도 못 읽겄다 / 대학(大學)을 들여라 /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허며 / 재신민허며 재 지어지선 이니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난 신부로다 / 홍도 어찌 신부되리 / 우리 춘향이 신부 되지 / 태고라 천황 씨는 이 숙떡으로 왕했겄다/ 방자 곁에 섰다 : 아 여보시오 도련님/ 태고라 천황씨가 / 이 목덕으로 왕했단 말은 들었으 나 / 이 쑥떡으로 왕했단말은 금시 초문이요/ 이도령: 니가 모르는 말이로다 / 태고라 천황씨 때에는/ 선비들의 이가 단단하야 / 목떡을 자셨거니와/ 지금 선비야 어찌 / 목떡을 자실 수 있겄느냐 / 그러기에 공자님이 후세를 위하야 /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교일허고 / 명륜당에다 현몽하셨느니라. 방 자 : 원 도련님도 / 하나님이
[그린경제=양병완 기자] 판소리는 소리꾼 혼자서서 몸짓을 해가며 소리와 언어로 판소리 12바탕을 적벽가(화용도), 수궁가(별주부가, 토끼 타령), 춘향전(성춘향가), 흥부가(박타령), 심청가(심봉사타령), 변강쇠 타령(가루지기 타령), 배비장 타령(애랑가), 옹고집가(옹고집 타령), 장끼타령(까투리 타령), 강릉 매화가(강릉 매화타령), 무숙이 타령(왈자 타령), 가짜 신선가(가짜 신선타령)를 이야기로 엮어나가는 대한민국 전통(傳統) 음악의 한 갈래이다. 판소리라는 어원(語源)은 판을 짠다하여 소리, 춤, 놀이 등을 짜서 벌이는 판놀음에서 연유(緣由)된 언어(言語)이다. 판소리를 하는 창자(唱者)를 옛날에는 창우, 가객, 소리꾼이라고 불렀다. 득음(得音)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을 명창(名唱)이라고 부른다. 나라에서 인정을 받으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판소리꾼 옆에 앉아서 소리 북을 치면서 추임새를 해주는 사람을 고수(鼓手)라고 한다. 소리꾼이 노래하는 것을 소리, 사설조(辭說調)로 말을 하는 것을 아니리, 부채를 들고 사설의 내용을 표현하는 몸짓을 발림이라고 하여 이러한 세 가지를 판소리 3요소(要素)라고 한다. 판소리가 벌어지는 대목을 소리판이라고 하였으
[그린경제=양병완 기자]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양사보 종택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귀중한 보물 7점(보물 725호 고려시대 홍패2점, 조선시대홍패4점, 백패 1점)이 전한다. 물론 도둑이 들어 훔치려한 사건이 있은 뒤로 이 보물들은 모두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현재 영인본을 전시중이다. 보물 7점을 구체적으로 소개해본다. 1. 보물 725-1호. 고려(高麗)시대 공민왕(恭愍王) 4년(1355년) 정(正) 15년 2월 왕명(王命) 합격증(지금으로부터 658년 전) 성균양정재생(成均養正齋生) 양이시(楊以時) 지정 15년, 홍패 ▲ 보물 725-1호, 고려(高麗)시대 공민왕(恭愍王) 4년(1355년) 정(正) 15년 2월 왕 명(王命) 합격증(지금으로부터 658년 전)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4년(1355년), 성균양정재생(成均養正齋生) 양이시(楊以時)에게 내린 진사(進士)에 급제한 합격 증서이다. 고시위원장(考試委員長)에 해당하는 지공거(知貢擧)는 좌우사사(左右司事)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 이공수(李公遂)이고, 동지공거(同知貢擧)는 보문각대제학동지춘추관사(寶文閣大提學同知春秋館事) 상호군(上護軍) 안보(安輔)로 되어 있다.《고려사(
[그린경제=양병완 기자] 조선 후기에는 전문적인 소리꾼에 의하여 공연되는 무대가 많이 나타났다. 소리 광대에 의하여 흥행되어지는 판소리가 그 중에서 대표되는 것이었다.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 1574≫에 따르면 18세기에 이미 춘향가(春香歌)가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 19세기 중반≫에 따르면 19세기 중엽에 춘향가 심청가 박 타령 토끼 타령 적벽가 배비장전 강릉매화 타령 옹고집전 변강쇠 타령 장끼타령 무숙이 타령 가짜 신선타령등 열 두 마당의 판소리가 형성되어 공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판소리는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판소리의 삼 요소를 제대로 갖춘 완성도가 높은 판소리만 여섯 마당이 전해 오고 있다. 이것을 가인(歌人) 신재효 선생께서 판소리 사설(辭說)을 정리하여 이론적으로 확립시켜 놓았다. 판소리는 18세기의 영조, 정조시대에 우춘대 명창, 하한담 명창, 최선달 명창이 적극적으로 활동 하였다. 19세기 전에는 권삼득 명창, 모흥갑 명창, 송흥록 명창 등 여러 명창이 새롭게 나타나서 기존의 판소리에 새로운 내용(內容)의 사설(辭說)과 판소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노랫말과 가락을 새롭게 짜고 구성하여 부른
[그린경제=양병완 기자] 순창에는 조선시대를 풍미하였던 판소리 명창이 네 사람이나 있다. 그러나 어떤 명창을 막론하고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헌종, 철종, 고종 때 판소리 명창의 귀중한 흔적을 찾아서 대한민국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승화 시켜야만 할 것이다. 먼저 순창에는 김세종(金世宗) 명창이 너무나도 유명(有名)하다. 그 김세종 명창을 백과사전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전북 남원시 운봉면 야지당 터의 만석꾼 별장 운악정(1928년 6월 12일) 전경 모습. 운봉 운악정은 지리산 동편제 판소리의 산실이었다. 아래에 서 있는 네 사람은 운악정 뜰에 있는 자그마한 둠벙에서 송만갑 명창이 소리꾼들과 여유롭게 뱃놀이하는 모습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동서문화 출판사 발행) 11권 2692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김세종(金世宗) 조선 후기 명창. 전라북도 순창(淳昌) 출생. 신재효(申在孝)의 제자. 동편제 소리를 이어받은 판소리의 명창으로 창극(唱劇)에 대한 이론과 비평에 일가견을 가졌으며 판소리의 이론가(理論家)의 제일인자(第一人者)였다. 춘향가(春香歌)중 천자 뒷풀이가 가장 뛰어 났다. ≪국어대사전≫ (1991 금성출판사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