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난 1월 14일부터 오는 4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는 뮤지컬 <아나키스트>가 열리고 있다. 독립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세 청년, 그들의 뜨거운 우정과 대담한 열정이 펼쳐진다! 뮤지컬 <아나키스트>, 대학로를 대표하는 창작진들의 새로운 도전과 안리준 작가의 강렬한 서사, 김태형 연출의 섬세한 연출력, 허수현 작곡가의 깊이 있는 음악이 만나 탄생한 뮤지컬 <아나키스트), 대학로의 새로운 감동이 시작된다. 출연진은 덕형 역에 김도빈ㆍ문태유ㆍ최호승ㆍ이진혁, 지경 역에 김지온ㆍ동현ㆍ이세헌, 무혁 역에 박준형ㆍ강유찬ㆍ홍기범이 무대에 오른다. 프로듀서 고강민, 작 안리준, 작곡ㆍ음악감독 허수현, 연출 김태형, 안무 류정아, 무대디자인 김미경, 조명디자인 박성희, 음향디자인 장기영, 의상디자인 홍문기, 소품디자인 권민희, 분장디자인 장유영, 무대감독 서윤석이 함께 하며, 주최ㆍ제작은 ㈜엠비제트컴퍼니ᅵ, 제작투자는 엔에이치엔링크, 홍보마케팅은 골든에이지컴퍼니가 맡았다. 공연 시각은 화ㆍ목ㆍ금요일 밤 8시, 수요일 저녁 4시와 밤 8시, 토요일 낮 3시와 저녁 7시, 일요일과 공휴일은 낮 2시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월 1일부터 오는 12월 14일까지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로 182. ‘수원광교박물관’에서는 광복 8돌 기림 <수원시가 발굴한 13인의 독립운동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수원은 3·1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던 곳으로 종교인, 농민과 상인들, 학생, 기생까지 전 계층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학생들과 사회지도층들은 각종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해 식민지배 체제에 끝까지 항거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애국지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직 그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분이 상당하다. 수원시는 2008년 수원박물관 개관과 함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수원 기생조합 대표로 만세운동을 펼쳤던 기생 김향화(1897~미상), 학생으로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하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려다 체포되어 순국한 이선경(1902~1921)을 발굴해 서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수원시정연구원과 함께 수원지역 독립운동가 발굴사업을 진행해 113인의 독립운동가를 찾아냈으며, 그 가운데 11명이 2020년과 2024년에 서훈을 받았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2년 전(1923년) 오늘은 김상옥 의사가 천여 명의 일제 경찰을 상대로 싸우다 순국한 날입니다. 의사는 당시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신출귀몰한 모습으로 경찰을 따돌립니다. 그 뒤 삼판동(오늘의 후암동)에서 일전을 치른 다음 또다시 포위망을 뚫고 효제동 동지의 집에 숨었습니다. 이후 의사의 은신처를 찾은 일경은 경기도 경찰부장의 지휘 아래 시내 4개 경찰서에서 차출한 사백여 명의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1월 22일 새벽 5시 반 무렵 김 의사가 숨은 집을 겹겹이 포위하였지요. 이에 김상옥 의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집들의 지붕을 타고 넘나들며 무장결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조국독립의 염원을 담은 의사의 총구는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대한 남아의 기백을 여지없이 떨친 의사에게 일경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3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10여 명의 일경을 사살하였으나 탄환이 떨어지자, 마지막 탄환이 든 권총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 순국하였지요. 당시 나이 34살이었던 김상옥 의사는 일제 경찰과 총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우리 겨레에게 일제의 패망을 예언하고 독립의 희망을 전한 아일랜드 선교사 패트릭 도슨(1999년 애국장),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1999년 애족장), 어거스틴 스위니(1999년 애족장)를 ‘2024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1930년 후반부터 1940년 중반은 일제의 계속되는 침략전쟁으로 인한 강제 동원과 수탈이 가장 심했으며, 언론을 통제하고 그들의 승전만을 과장 보도하던 시기였다. 아일랜드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인 패트릭 도슨(1905년생)과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1907년생)은 1933년, 어거스틴 스위니(1909년생)는 1935년 내한하여 제주도에서 활동했다. 패트릭 도슨은 1934년부터 제주읍 삼도리에 소재한 천주교성당에서 사제로 활동하면서 ‘손신부’로 불렸다. 그는 1941년 4월, 선교사 집회에서 “일본 신문에 따르면 일본군은 장사까지 진격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상해의 라디오에서 일본군의 패전을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 신문 보도는 거짓”라고 한 뒤 “중일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일본은 물자 부족으로 패전한다”라고 말했다. 1934년부터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천주교성당에서 사제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보훈병원 뜰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몇 안 남은 잎새가 펄럭이던 날, 오희옥 지사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병원 생활 6년 8개월 동안, 봄이 여섯 번 지나고 여름과 가을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건장한 사람도 병상 생활이 오래되면 몸과 정신이 나약해지게 마련인데 지사님은 병상에서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내셨습니다. 언제나 문병차 찾아오는 이들이 내민 손을 꼭 잡아 주시던 그 살가움과 따사로운 온기는 지금도 식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왼손에 편마비가 와서 불편한 상태지만 오른손에 펜만 쥐여 드리면 “힘내라 대한민국”, “다시 찾은 조국광복” 등 독립운동 하던 때의 소원을 흰 종이에 꾹꾹 눌러써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봄이 되면 집에 돌아가리라”라던 꿈 하나로 6년 8개월을 버티시던 지사님은 끝내 정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상에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힘드셨지만 삶의 말년을 보낸 서울중앙보훈병원은 지사님의 두 번째 보금자리였습니다. 친절한 의료진의 진료와 간호사님들의 보살핌에 이어 1남 2녀 자녀들의 극진한 사랑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를 뵙기 위해 병문안을 와 주신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2016년 김지운 감독, 송강호, 공유, 한지민, 츠루미가 출연한 영화 <밀정>이 상영되어 관객수 750만 명을 달성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 속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이 중심이 되어, 폭탄을 준비하고 일제의 주요 기지를 겨냥했던 실화에서 출발했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정태산이라는 인물은 실제 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단장을 본보기로 하고 있습니다.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김원봉의 주도 하에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였는데 의열단은 의로운 일(義)을 맹렬히(烈) 행하는 단체(團)라는 뜻입니다. 김원봉은 일본과 군대로는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암살과 파괴 투쟁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뒤 자기 뜻에 공감하는 청년들을 모아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오늘(11월 9일), 지린성 파호문 밖의 중국인 농가에 모여 의열단(義烈團)을 창립했습니다. 비밀결사 조직인 탓에 의열단원이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2010년에 기밀 해제된 영국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단원이 무려 2천여 명에 달했으며 적진인 도쿄에도 5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여름 몽골행 비행기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이 타고 있었다. 그들에게 왜 몽골에 가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필자처럼 몽골 밤하늘의 별을 보러 간다고 답을 한다고 한다. 필자도 그렇게 친구들에게 떠들었다. 그런데 정작 몽골 하늘에 진짜 우리 한국인이 별이 되어 높이 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지 못했다. 관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알았으면 일정을 잡았을 터인데 그리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무척 죄송하다. 다행히 부산에 사는 친구들이 이 한국인의 기념공원을 찾아 묘비에 헌화하고 왔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해서 이 몽골하늘의 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그의 이름은 이태준이었다. 조선왕국에 외세가 몰려오던 1883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한 이태준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고 24살인 1907년엔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해 3년 만에 졸업한 의사였다. 우리 국권이 일본에게 막 넘어가는 시기에 세브란스 의학교 재학시절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을 만난 것으로 그의 생애가 확 바뀐다. 도산은 이태준을 최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쿠바, 멕시코 같은 중남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임천택(1997년 애국장), 서병학(2021년 애족장), 박창운(2011년 애족장)을 <2024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1905년 1,000여 명의 한인들이 멕시코에 첫발을 내디디며 한국 역사상 처음 멕시코 이민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민 뒤 에네껜 농장에서 4년 동안 노동을 하고, 이후 미주 한인단체 활동과 민족교육을 통한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다. 임천택(1903년)은 어머니를 따라 멕시코로 옮겨 갔고, 18살이 되던 해 쿠바로 다시 이주했다.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재큐한족연합외교회, 재큐한족단 등 한인 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민성국어학교 교장, 진성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교육에 종사했다. 또한, 광복군 후원금을 모집하였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민족의식 확산에 이바지하였다. 서병학(1885년)은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4년 동안 노동한 뒤 1921년 쿠바로 옮겼다. 메리다지방회, 오학기나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하바나지방회 등 한인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민성국어학교 교사, 하바나 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광복절이 지났습니다. 광복은 1945년의 일이니 이제 79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에게 부끄럽게도 올해의 광복절은 정부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치렀습니다. 역사 이래로 이렇게 행사를 나뉘어서 치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치욕적인 35년의 식민 지배 세월을 보냈습니다. 식민 통치를 일본처럼 혹독하고 잔인하게, 언어까지 빼앗은 국가 말살 정책을 편 나라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많은 독립투사가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헌신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만 우리의 독립을 불러온 것은 안타깝게도 독립군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리틀보이와 팻맨으로 불리는 원자탄을 투하한 미국의 전쟁 승리 덕입니다. 그 결과로 분단과 신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친일파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지금도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삼대가 굶고 친일파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게 다가옵니다. 대체로 식민지를 겪고 독립한 나라의 지폐에는 독립투사가 한 명쯤은 표지모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독립투사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지폐의 표지에 독립투사가 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새로 임명된 독립기념관장은 본인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런데 독립유공자와 후손단체인 광복회는 뉴라이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9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1.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2.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3.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고 ‘임의단체’로 깎아내리는 자나 단체 5. 식민사관이나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 6. 일제강점기 곡물수탈을 ‘수출’이라고 미화하는 자 7. 위안부나 징용을 ‘자발적이었다’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 8.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9. 뉴라이트에 협조, 동조, 협력하는 자나 단체 이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 건국했다고 주장하는 새 독립기념관장은 뉴라이트가 분명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바탕을 이루는 헌법 전문에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1919년에 세운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