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여수 연등동 벅수는 옛 전라좌수영성의 서문으로 통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으로, 동쪽에 있는 벅수에는 남정중(南正重), 서쪽에 있는 벅수에는 화정려(火正黎)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마을의 잡귀와 유행병을 막고 하늘과 땅을 평정하여 화마와 수마를 막고자 하는 뜻으로 보인다. -여수시 해설 인용 연등동벅수는 벅수 뒷편에 새겨진 글씨로 보아 정조12년(1788)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현재는 이순신장군의 사당인 충민사 입구에 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금은 전국적으로 찾아 보아도 매우 귀한 벅수지만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마을이 있는 곳에는 마을의 입구에는 벅수들이 세워졌었다. 벅수는 주로 나무로 만든 것이 많지만 더러는 돌로 만들어 졌는데, 마을입구에 세워놓고 마을의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벅수는 자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 존재였다. 당시 사람들은 마을마다 벅수를 세워놓고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난 신통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형상을 사람의 모습으로 새겨놓고 마을의 원로들이 앞장서서 제사를 지내고 무당을 불러 신통력을 부여하였다. 벅수 옆에는 큰 당산나무도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의 건강, 출산, 풍년 등 비손하는 제사를 지내고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이 되면 마을잔치를 하였으며,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을어른을 존경하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정신적 다짐을 하면서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벅수는 민속자료로 토속적 조형물로만 남아있는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능력을 모두 상실하였지만, 우리 조상들이 온 정성을 다하여 세우고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귀하게 여겼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벅수와 장승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이가 이 벅수와 장승을 혼동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벅수’는 주로 마을이나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었다. 특히 1600년 무렵 중국에서 발생해 조선으로 마구 밀려오는 돌림병과 잡귀들을 막아내기 위해 전설 속의 치우(蚩尤), 용, 또는 장수나 제왕의 표정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했고 가슴에는 글씨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승은 역참제도에 의해 생긴 말로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그 역할은 '여기서부터 어디 어디다'라고 하는 표지 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일하게 벅수와 장승 전문가인 황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여)장군이라는 벅수 문화를 ‘망령된 미신 문화’로 취급하며 깎아내렸고, 역참제도의 폐지로 우리 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장승을 다시 찾아내 벅수와 합치며 ‘장승’이 표준말이라고 왜곡했다. 그리고 1912년 언문철자법에 포함시켜 공표하고 교육시켰다.”라며 벅수와 장승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 사람으로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1941년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