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합천하면 먼저 떠오르는 절, 해인사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절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영암사터를 찾아본다. 합천 영암사는 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매산의 신령스러운 영험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아래 절을 지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꾸어오던 절은 언제인지 모르게 퇴락하였고, 지금은 절안에 돌로된 기단과 석축과 삼층석탑과 귀한 모습의 쌍사자석등 등 돌로된 유물들만 남겨놓은 채 사라지고 말았다. 영암사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있어 그 창건 연대도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국사로 추앙 받던 한 스님의 탑비의 탁본으로 적연국사라는 스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적연국사가 고려 현종 5년(1014) 83살로 입적하여 영암사 서본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영암사에는 당시에 적연국사의 비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부만 남고, 비신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적연국사의 부도가 영암사에서 1.5km 지점의 산 중턱에 현존하고 있어 비문의 내용을 그나마 알수 있다. 영암사터는 영암(영험스러운 바위)인 황매산 바위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지형이 평탄치 못하여 금당을 세운 곳에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리산 법계사는 한국에서는 해발 1,400m 로 가장 높은 고지대에 있는 절이다. 법계사는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해발 1,915m)의 동쪽 중턱에 있는 절로 그 창건은 신라 진흥왕 5년(54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연기조사는 인도의 스님으로 한국에 들어와 지리산 이곳 저곳 명당에 터를 잡아 절을 창건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절찰은 구례 화엄사다. 이렇게 세워진 유서 깊은 절인 법계사지만, 많은 전란과 조선시대 억불숭유 영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막지나고 터진 한국전쟁의 말기에는 지리산으로 들어온 빨치산의 소굴이 되어 그 소탕작전 과정에서 법계사는 바위토굴을 제외하고는 모든 전각이 불타고 말았다. 이런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전각들을 세워 오늘에 이른 것이다. 법계사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는데, 이 탑은 법계사의 중심지 커다란 바위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이 탑 바로 아래에는 불상이 없는 전각(적멸보궁)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대웅전 등에는 불상을 모시지만,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은 그 자체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별도로 불상은 두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