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농작물의 잘되고 못된 것을 답사하여 조사할 때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 우려하고 있노라.“ 이는 《세종실록》 49권, 12년(1430년) 7월 5일의 기록입니다. 세종은 당시 벼슬아치들이 공정성을 잃어 양반과 부자만 좋게 하고 가난한 백성을 괴롭히고 있음을 꿰뚫고 있었으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백성이 싫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도자의 생각이 만능이 아님을 잘 알고 임금이라도 맘대로 정책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세종은 안건이 올라오면 마지막에는 자기가 결정하더라도 신하들이 충분히 갑론을박하게 하였습니다. 들판을 지나갈 때면 양산과 부채를 쓰지 않았으며 말을 타고 가다가 농부를 만나면 말에서 내려 걸어갔음은 물론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파 점심을 들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공법이라는 세제개혁을 시행하기에 앞서 직접 경기도 장단현 들판을 답사하기도 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위기에 강한 지도자. 흔히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떠올릴 때 위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며, 강력한 문제해결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엇갈리고 국민의 미래가 결정된다. 박은정이 쓴 책, 《병자호란, 위기에서 빛난 조선의 리더들》은 ‘병자호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1636년 조선, 조정에 있던 신하들 – 최명길,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이경석, 김상헌이 어떻게 국난에 대응했는지 살펴본다. 이들의 선택은 제각각이었다. 최명길은 화친 국서를 썼고, 김상헌은 이를 찢어버렸고, 홍익한과 윤집, 오달제는 끝까지 화친을 반대하다가 청나라 선양으로 압송당해 죽음을 맞았다. 이경석은 굴욕과 치욕을 삼키며 1,009자의 삼전도비문을 지었다. 이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착잡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신세를 진 명나라의 위세가 어마하던 시기, ‘오랑캐’라 여기던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청 황제를 찬양해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의 일원으로 책임지고 수습해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도망간 사람도 많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이 날아다니려 하고 땅 위에 터전이 없는 것들이 하늘에 집을 지으려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곤충이냐고요? 아니죠. 생각 없는 이상주의자들입니다. 권력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일시적인 굴종을 끌어낼지는 몰라도 마음이 괴리된 상태에서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무식하면서 소신이 있거나 무식하면서 근면하거나 무식하면서 요직에 있다면 재앙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산야에 칡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칡을 캐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나름대로 그들은 천국을 이루며 살고 있지요. 그러한 덩굴성 식물도 원칙을 갖고 삽니다. 칡은 오른쪽으로 감으며 자라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으며 성장합니다. 물론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 없는 더덕 같은 식물도 존재하지요. 이들 규칙은 자연의 공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효율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지요. 식물도 그러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권력에 취하여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