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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어부들의 노래, <잦은 배따라기>, 일명 <봉죽타령>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는 선창자(先唱者)의 메기는 소리와 선인(船人) 모두의 제창(齊唱)으로 후렴구를 받는 노동요(勞動謠)로 선창자가 본절(本節)을 메기면, 나머지 모두가 후렴구를 제창하는 형태라는 점, 본절 내용은 대체로 돈이나, 재물, 술과 관련된 내용, 또는 풍랑과 무사 귀환, 만선(滿船)과 풍획(豊獲) 등이란 점, 성난 파도와 싸워가며 생업을 이어가는 어부들이 안전하게 귀가하게 된 고마움이나, 풍어(豊漁)에 관한 감사함, 그리고 뱃사공들의 소박한 꿈도 엿보게 한다는 내용들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도좌창으로 전해오는 <장한몽>을 소개한다. 장한몽(長恨夢)이란 “긴 시간 사무쳐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이수일과 심순애>라고도 하는데, 이 노래는 남녀 사이 애정문제, 결혼문제 등을 다룬 신파조(新派調) 이야기로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 주제는 젊은 남녀 당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부모 세대에게 있어서도 결혼을 통한 남녀 사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어 음미해 볼만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 대목은 이렇게 열어가고 있다. “어화 세상, 벗님네야. 이내 한 말 들어 보소. 이수일(극중 가난한 남자 주인공)을 배반하고, 김중배(돈이 많은 부유한 남자)를 따라가던 심순애를 아시는가? 금강석(金剛石)에 눈이 어두워 참사랑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돈이야 귀(貴)하구나, 돈이야 천(賤)하구나.”(가운데 줄임) “돈으로 사랑하고, 사랑으로 돈을 구해 진정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김중배는 양양불로(揚揚不老 앞날이 창창하여 늙지도 않을 듯), 심순애는 녹심처녀(綠心處女 녹색 마음을 지닌 맑고 순수한 젊은 여자) 가이 없다. 이수일이 돈 없어 사랑 잃고, 돈 없는 그 몸 되니, 금색야차(金色夜叉 일제시대의 인기 절정의 소설 이름, 돈 버는 귀신이란 의미)가 참혹하구나. 애지중지(愛之重之- 매우 사랑하고 귀하게 여김), 금지옥엽(金枝玉葉-황금가지에 달린 구슬 같은 잎사귀), 목숨같이 사랑하던 심순애는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생각사록 원통키는 대동강변 이별이라. <아래 줄임> <장한몽(長恨夢)>은 일제 강점기 《금색야차(金色夜叉)》라는 소설을 모방한 작품이다. 소설뿐 아니라, 연극, 또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예전에는 창가(唱歌) 식으로 불러오던 형태였으나 이를 서도창으로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100여 년 남짓으로 보고 있다. 일제(日帝) 강점기 때에는 금지곡으로 묶여 있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다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노래에서 남자 주인공, 이수일은 어려서 일찍 부모를 잃은 곧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고독한 신세의 소년이었는데, 이 사정을 알게 된, 심순애의 부모가 그를 데려다가 친자식같이 키웠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해서 처음에는 수일과 순애가 친남매같이 지냈지만, 차차 장성하면서 서로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 연인(戀人)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이후, 두 남녀는 혼인을 약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은 이 부분에서 돌발의 변수를 만들게 된다. 바로 심순애가 부잣집 아들인 김중배의 물질적 공세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서 이수일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웃고 말 일이지만, 100년 전 시대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혼인을 앞둔 신부가 다른 남자와 새로운 교제를 시작한다는 자체가 상상도 못했던 시대였다는 점이 문제다. 심순애가 김중배의 재력에 넘어가게 된 배경도 알고 보면, 단순하게 심순애 자신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늙어가는 부모님을 잘 모시고 싶은 자식 된 처지에서의 효도가 첫째요, 집안에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능력 있는 남편감을 만나, 남은 생애의 빈곤을 탈피하는 문제 등을 고려한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는 충분하다는 점이다. 늙은 부모님과 자신이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는 길, 그 해답은 바로 가난한 이수일을 선택하는 길보다 김중배라고 하는 돈 많은 재산가를 선택하는 길이라고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고민은 남는다. 바로 당사자인 심순애의 처지에서나 또는 부모의 처지에서 이수일과의 관계를 칼로 두부 자르듯 처리하고, 김중배를 택하는 문제가 간단한 일이 아니기에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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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바람과 함께 찾아온 추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느덧 올해도 딱 이틀 남았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은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집을 나서다 흠칫 놀라 몸을 잔뜩 웅크리신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기별종이(뉴스)를 보니 오늘 아침에 영하 8도까지 뚝 떨어진 곳이 있고 앞으로 여러 날동안 추울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춥게 만드는 건 바로, 살을 에는 듯 쌩쌩 불어오는 바람 탓일 겁니다. 한해 끝자락에서 만난 이 매서운 추위와 함께 찾아올 바람을, 흔히 쓰는 ‘강풍’라는 말 말고 우리 토박이말 '된바람'으로 불러보면 어떨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이 말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첫째로 '매섭게 부는 바람'을 뜻합니다. "갑자기 된바람이 불어와 담벼락을 무너뜨렸다."는 보기월처럼, 무언가를 무너뜨릴 듯 센 바람을 일컫지요. 여기서 '된-'은 '반죽이나 밥 따위의 물기가 적어 빡빡하다' 또는 '심하다'는 뜻을 품고 있어, 물기 없이 독하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의 됨됨(성질)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이 말은 바다 위에서 더욱 알맞게 쓰였습니다. 뱃사람들의 말로 '북풍'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강하게 불어오는 된바람 때문에 노를 젓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뱃사람들의 넋두리 속에, 차가운 북쪽 바다의 거친 숨결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낱말이 그저 느낌만 담은 게 아니라, 과학적인 잣대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된바람은 '지구 풍력 계급 6의 바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10분간의 평균 바람 속도가 초속 10.8미터에서 13.8미터에 이르는데, 이 만한 세기라면 큰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전선이 윙윙 울리며, 우산을 받고 있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언젠가 뒤집히려는 우산을 부여잡고 걸어 보신 분은 몸소 '된바람'을 겪으신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야무진 말을 우리의 나날살이에는 어떻게 부려 쓸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아침 기별종이(신문)에서 본 날씨 기별부터 다듬어 보고 싶습니다. "아침 최저 -8도, 바람까지 쌩쌩... 체감온도 '뚝'"이라는 글이름을 갈음해, "된바람까지 쌩쌩, 옷깃 단단히 여미세요"라고 바꿔 쓴다면, 추위의 세기가 훨씬 더 잘 이어지지 않을까요?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마주이야기(대화)에서도 이 말을 써보세요. 날씨가 춥다고 웅크리고 있는 동무에게 이렇게 건네는 겁니다. "오늘 밖엔 전깃줄이 울 만큼 된바람이 부네. 그래도 우리 마음만은 따뜻하게, 이 바람 씩씩하게 이겨내자!" 추위 걱정 속에 든든한 서로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겨울 바람빛(풍경)을 찍어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된바람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이 거센 바람에 나쁜 일들 모두 날려 보내고, 새해에는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라고 적어보세요. 읽는 이들의 마음속에 묵직한 울림을 줄 것입니다. 매서운 된바람은 우리를 춥게도 하지만, 얼이 번쩍 들게 하기도 합니다. 흐물흐물해지기 쉬운 해끝,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을 맞으며 마음의 끈을 다시 한번 질끈 동여매 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