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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손님의 틈새를 파고든 여리꾼(주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광통방(廣通坊, 현재 중구 서린동 근처) 부근에 있던 큰 다리 대광통교(大廣通橋)를 건너면 육주비전(六注比廛)이라 하여 나라로부터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나라가 필요로 하는 수요품을 조달하던 시전(市廛)이 있었습니다. 이 육주비전에는 “여리꾼(列立軍)” 곧 거간꾼들이 있었는데 “여리꾼”이란 “남는 이익(餘利)을 얻는다는 뜻”과 함께 종로 거리에 열 지어 서 있다가 손님이 나타나면 흥정을 붙인다는 뜻의 열립꾼(列立軍)인데 요즘 말로 하면 호객꾼이고, 일본말에 뿌리를 둔 삐끼라고 쓰는 사람도 있지요. 토박이말로는 '주릅'이라고도 합니다. 당시 조선시대 시전상인은 대개 한 평 남짓한 좁은 터에 최소한의 상품을 진열한 데다가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은 간판도 없었고, 심지어 값도 써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이때 상인과 손님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여리꾼인 것입니다. 여리꾼은 값을 비싸게 부른 다음 흥정을 붙이고 값을 조정한 뒤 상인이 원했던 것보다 높은 값을 받아서 그 차액을 챙겼던 것이지요. 이 여리꾼 가운데는 쌀 거래를 하는 감고(監考)가 있었고, 집이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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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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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복, 일꾼을 위한 척서단 내려준 정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곳에서 감독하고 일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사람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사람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약을 지어 내려보내니,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알 또는 반 알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위는 《정조실록》 18년(1794) 6월 28일의 기록으로 정조 임금이 화성을 쌓는 공사장의 일꾼들이 더위에 지쳐 몸이 상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더위를 씻어준다는 ‘척서단(滌暑丹)’ 4천 정을 지어 내려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삼복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난 지 이틀이 되었고,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가 보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혹독한 불볕더위가 온 지구촌을 뒤흔들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 못 들게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복지경(伏地境, 더위가 한창인 때)엔 자칫하면 열사병이

항일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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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훈 독립운동가 '230명' 찾아내 포상신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수형자카드)에 남아있는 독립운동가들의 흑백사진을 보고 있을라치면 울컥 목이 메인다. 일제침략이 없었더라면 감옥에 갇혀 굴곡진 삶을 살아갈 까닭이 없었던 선열들의 인생노정은 그래서 더욱 가슴아프고 애절하기 조차하다. 통탄스러운 일은 온몸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했지만 아직도 이분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사실이다. 필자 역시 아침부터 밤까지 미서훈자들의 발굴 작업에 매달리면서 매순간 '미서훈자들포상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현실의 벽'에 아득함을 느낀다. 올해는 일제 침략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조국의 빛을 찾은지 80돌이 되는 해로 나라 안팎에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즐비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독립운동가 미서훈자를 발굴하는 작업' 만큼 값어치가 있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제(27) 낮 2시, 서울시청 3층 회의실에서는 조촐하지만 아주 의미깊은 행사가 있었다. 바로 미서훈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여 이들을 세상에 알리는 행사였다. 행사 이름은 ‘제14차 독립유공자 230명 포상신청설명회’로 광복회(회장 이종찬)ㆍ국립인천대학교(총장 이인재)ㆍ서울특별시(시장 오세훈)가 공동주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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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김옥균을 제거하라”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혁명가 김옥균을 제거하려는 조선 정부의 노력은 집요하고 절박했다. 그만큼 김옥균이 그가 처한 위험은 가팔랐다. 이번 글에서는 그 대목의 첫머리를 들추어 보려 한다. 1884년 12월 초 혁명에 실패한 김옥균 일행은 제물포(인천)로 황망히 몸을 피한다. 항구엔 치도세마루라는 일본 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본배. 천신만고 끝에 배에 도착했지만, 동행한 일본인들이 김옥균 일행의 승선을 가로막는다. 당장에라도 조선의 체포조가 들이닥칠지 모른다. 피가 마르는 상황이다. 그 순간 구원의 손길을 뻗힌 이는 일본배의 선장 쓰지 쇼사부로. 김옥균 일행을 밤중에 몰래 승선시켜 선창에 숨겨 준 것이다. 다음날 12월 9일 영의정 심순택의 지시로 묄렌도르프(독일인으로 외교부 차관격이었지만, 실제로는 전반적인 외교업무를 관장)가 이끄는 조선군이 제물포항에 들이닥친다. 묄렌도르프는 일본 공사 다께조에게 반역자들을 당장 넘겨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께조에는 김옥균과 한양에서 같이 도망하여 승선해 있는 상태다. 말하자면 구명선을 같이 탄 처지다. 김옥균 일행은 설마 다케조에가 자신들을 조선군에게 넘겨주리라고는 상상하지
젊은 사람들이 쓰는 “쪽 팔린다”에서의 ‘쪽’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요즘 젊은 사람들이 ‘쪽 팔린다’라는 말을 널리 쓴다. 귀여겨들어 보니 ‘부끄럽고 쑥스럽다’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었다. 누가 맨 처음 그랬는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니 아주 재미있는 말이다. 이때 ‘쪽’은 반드시 ‘얼굴’을 뜻하는 것일 듯하니, 한자 ‘면(面)’을 ‘얼굴 면’이라고도 하고 ‘쪽 면’이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팔린다’는 말은 값을 받고 넘긴다는 뜻이니, 남의 손으로 넘어가 버려서 제가 어찌해 볼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쪽 팔린다’라는 말은 ‘얼굴을 어찌해 볼 길이 없다’라는 뜻이다. ‘얼굴을 못 든다’라거나 ‘낯 깎인다’라거나 ‘낯 뜨겁다’라거나 하는 말들이 일찍이 있었는데, 이제 새로 ‘쪽 팔린다’는 말이 나타나서 우리말의 쓰임새를 더욱 푸짐하게 만들었다. 우리말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쪽’이 있다. ‘무엇이 쪼개진 조각의 하나’라는 뜻으로 “그 사과 한 쪽 먹어 보자.” 하고, ‘시집간 여자가 땋아서 틀어 올린 머리’라는 뜻으로 “쪽을 찌고 비녀를 꽂으니 예쁘구나!” 하고, ‘여뀟과에 드는 한해살이풀의 하나’로 “쪽빛 물감이 참으로 예쁘다.” 하고, ‘책이나 공책 따위의 한 바닥’이라는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