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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중국 동북 3성 / 조선족의 생활을 기록하다

《중국 조선족 마을의 변화양상》 조사보고서 펴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사라져가는 조선족 마을을 기록하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에서는 한민족 공동체 정체성의 이해와 전통의 유지 및 변화에 관한 조사 연구를 통한 한민족 생활문화사 집성을 목적으로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 조사를 추진해오고 있다. 2019년에는 중국 조선족이 전승해 온 전통의 지속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길림성 해란촌, 요령성 우가촌, 흑룡강성 신락촌 3개 마을을 2018년부터 2년 동안 조사하여 《중국 조선족 마을의 변화양상》 조사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조사했던 마을들을 20년 후에 재방문하여 그동안의 변화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하였다.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재이주

 

조선족이 본격적으로 동북 3성에 이주한 시기는 19세기 중엽으로 연이은 자연재해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이주였다. 이후 이 지역은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에 대항한 독립투사들의 근거지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주하였다. 만주사변 이후에는 동북 3성을 차지한 일본은 개발을 목적으로 수많은 조선 농민들을 이주시켰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조선족은 1992년에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으면서부터 새로운 이주를 시작한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두 나라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의 수요가 커졌고, 이에 많은 조선족이 고향을 떠나 한국기업이 밀집한 도시로 이주하였다. 또한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라는 이른바 ‘한국바람’이 조선족 사회에 불면서 200만 명의 조선족 가운데 70만 명이 현재 한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조선족 전통문화의 지속과 변화

 

 

 

조선족이 처음 이곳으로 이주했을 때부터 간직해 온 전통문화는 중국의 사회주의 정책과 한족 문화 영향, 그리고 조선족 인구의 감소에도 부분적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가촌 주민들은 조선의 임경업 장군을 마을신으로 모시며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청명에는 조상의 산소를 삽과 낫으로 정비한 뒤 제사를 지낸다. 해란촌 주민들은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과 부엌 사이에 정주간을 두어 겨울철 추위를 대비하는 함경도식 가옥에서 살고 있으며, 한가위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낸다. 신락촌 주민들은 무뚝뚝하지만,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유지하면서, 80년 넘게 일구어 온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이처럼 동북 3성의 조선족들은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방편으로 현지 사회변화에도 적응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곧, 임경업을 모신 사당에는 한족의 토지신과 오도산신을 함께 모시고, 산소에서 제사를 지낸 뒤에는 지전(紙錢)을 태운다. 함경도식 가옥에는 주거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싱크대와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고, 인구 감소로 부족한 노동력은 농기계와 한족 인력으로 대체한다.

 

조선족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다

 

 

 

중국 조선족 마을은 주민들의 도시 및 한국 이주로 인한 인구 감소로 인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에 해란촌과 신락촌에서는 주변의 다른 조선족 마을들과 통합하여 조선족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은 마을의 자치규약인 ‘촌민공약’에 마을의 땅을 외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여 마을 내 한족의 유입을 막고 있다.

 

주민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한국과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귀향하여 농사를 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노후를 조선족 마을에서 보내고자 하는 다른 지역 조선족의 이주도 증가하고 있다.

 

백 년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100년 이상의 세월을 중국이라는 자연환경과 체제, 그리고 문화 속에서 살아온 조선족들은 나름대로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현지의 다양한 문화와 접하면서 이질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에 이 보고서가 중국의 조선족 동포 사회를 이해하고, 한민족이 서로 화합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