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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국분단을 막으려 몸부림쳤던 여운형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34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해방된 조국에서 평등과 원칙이 바로 세워져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랄 뿐 피땀 흘려 이룬 광복이 어느 한 사람의 공적이던가 우리는 고생한 만큼 가질 권한이 있다. 이념과 실천이 다르고, 탄압과 폭정으로 얼룩진 무리라는 걸 눈 감은 뒤에야 알았지만, 조국의 품에 안겨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 내가 그게 바라는 소원이었다.” 이는 광복 뒤에 재빨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전국에 걸쳐 145개의 치안대 지부를 만들면서 혼란스럽던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몸부림쳤던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을 <이게 나라냐>라는 시에서 이오장 시인이 그린 것입니다. 134년 전 오늘은 그 여운형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는 이승만을 두둔하는 미군정의 피점령국 정책으로 무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중도좌파를 대표해 김규식으로 대표되는 중도우파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을 저지하고 통일정부 실현에 앞장섰지요. 하지만, 이도 미군정 당국의 교묘한 방해공작으로 좌절되었으며, 선생은 1947년 5월, 좌우합작을 위해 미소공동위원회의 성사를 지원하던 중 극우청년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에도 측근들에게 “나는 결국 죽을 거야. 그렇지만 죽더라도 분단만은 막으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선생은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운에 간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은 한때 일본 척식장관(拓殖長官)의 초청을 받고 임시정부 쪽 사람들이 말렸음에도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일본 고위인사들에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특히 대중연설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했는데 연설이 끝난 뒤 청중들이 자연스럽게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자 일본 당국은 그를 초청한 것을 후회했지만, 체포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